우리가 알고 있는 日本 모르고 있는 日本人(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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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하나에도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간

“일본인들의 실용적인 정신이 한의사제도는 없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한방 제약회사를 가지게 된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4년,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귀한 대접을 한다며 긴자의 낡은 작은 건물 지하에 있는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로 초대했다. 자리라고는 의자 열 개, 화장실도 건물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작은 곳인데 이런 곳에서 미국과 일본 정상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긴자에는 비싸고 고급스런 스시집들이 많고,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우리나라 재벌 회장이 즐겨 찾는다는 한 끼에 4만엔 이상 하는 스시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그곳으로 초대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 스키야바시 지로 창업자인 오노 지로씨의 장인 정신 스토리일 것이다. 필자가 즐겨 찾는 도쿄 신바시(新橋)에 이탈리아풍 건물이 많아 이탈리아街로 불리는 곳에 위치한 작은 스시집이 있다. 그곳의 주인은 도쿄에서 스시로 5인방 안에 드는 실력자라고 한다. 그런데도 규모는 전체 좌석 8개가 전부이고 종업원 없이 부부가 운영한다. 재료는 예약받은 인원에 맞추어 준비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갓 잡은 생선으로 만든 사시미나 스시를 최고로 생각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일정 기간 숙성시켜 스시를 만든다. 일본의 고급 스시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주문은 손님이 직접 할 수가 없다. 주방장이 주는 대로 먹는 ‘오마카세’ 방식이다. 주인장이 오늘의 최고 물고기를 고르기 위해 이른 새벽 쯔끼지 시장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심, 저녁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마무리 할 때까지 하루 하루의 생활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잠은 하루 3시간도 채 못 잔다고 한다. 스시 종류를 달리 해가며 한점 한점 손님의 접시에 올려 주는 정성은 먹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장인의 모습 그 자체다.

오바마 대통령, “이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초밥이다”
메구로역 주변에 있는 돈까스 전문점 돈키는 오후 4시부터 10시 45분까지 영업하는데 오픈 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밤 9시가 되어도 줄을 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형제로 보이는 족히 90세는 되어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 몇 분이 젊은 보조자들과 굽은 허리로 돈까스를 튀기고 썰고 계신다. 칼질을 하는 모습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듯 그 손길이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언제나 몇 십명의 손님이 대기하고 있기에 빨리빨리 할 법도 한데 신중함 그 자체다. 1939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오로지 돈까스 한 품목만을 고집하고 심지어는 손님에게 제공할 돼지도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키운다고 한다.
필자가 생활하던 와세다대학 본부 근처의 소바집 산죠안(三朝庵)은 일본에서 카레우동, 카레소바, 카츠동의 원조이기도 한데 350년 이상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카운터에서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며 손님을 맞이하는 퉁퉁한 주인장 할머니는 내가 갈 때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문선명 통일교 교주를 비롯한 한국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 주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일본의 그 어느 곳보다 담백한 소바의 맛도 맛이거니와 암울했던 식민 시절, 이곳 2층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모여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만든 곳이라는 의미가 더 해져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와세다역 주변에 300년이 넘은 장어덮밥집은 그날의 재료가 떨어지면 곧바로 문을 닫는다. 한국에서 와세다 대학으로 연수를 온 검사, 판사들과 일부러 북적이는 시간을 피하고자 1시 무렵 찾아갔다가 준비한 재료가 떨어졌다며 냉정하게 영업 종료 팻말을 걸고 돌아서는 주인의 뒷모습에 어찌 그리도 융통성이 없을까 싶어 서운하기도 했지만 바로 이것이 일본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은 뒤로, 문화의 차이는 절감하기도 했다.

식사 후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나는 하와이에서 태어났고 많은 초밥을 먹었지만 이것은 내 생애 최고의 초밥이다”라고 말했다는 긴자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는 일본 스시의 국보라고도 불리며 ‘Jiro Dreams of Sushi’라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 개봉되고, 2007년 이후 미슐랭에 별 세 개를 매년 획득했는데 이 정도 유명세라면 크고 근사한 장소에서 많은 손님을 받을 수도 있으련만 “나의 눈길이 갈 수 없는 곳에 손님이 있으면 제대로 모실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하지 않던가.
여자 손님에게는 먹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남자 손님의 것보다 작게 내고, 또 손님이 왼손잡이라면 초밥 놓는 방향도 다르게 하는 세심함. 그는 음식의 맛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창업 때부터 외출할 때는 항상 장갑을 낀단다. 손이 요리사의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선이나 밥 상태를 살필 때 손가락 안쪽의 감각이 중요한데 트거나 상처가 난 손으로 손님 앞에서 스시를 쥐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각을 잃을까봐 자극이 강한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는단다.
스시는 이미 50여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즐겨 먹는 고급 음식이 되었다. 일본의 식문화인 와쇼쿠(和食)는 이미 유네스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던가? 스시는 미국의 햄버거, 이탈리아의 피자, 파스타처럼 세계화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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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하나에도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간이 있는 일본 사람들은 미·일 정상의 스시만찬을 전 세계에 자신들의 장인 정신을 홍보하는데 최적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한식의 세계화’에 많은 예산을 들여 지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비빔밥, 떡볶이, 김치, 잡채 등을 외국인들에게 먹여본다고 세계화가 되는 것일까?
우리가 일본 토종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 중에 라멘은 중국에서 온 것이고, 덴푸라는 포르투칼의 튀김 요리를 보고 배웠다고 하고, 일본 돈까스 역시 유럽의 돼지고기 튀김을 가져다 튀김옷을 더 두껍게 해서 개발하고, 일본카레도 인도카레를 가져다가 동양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발한 것 아니던가? 1960년대에 LA에 살고 있는 일본인 요리사가 스시를 변형해 아보카도와 게로 캘리포니아롤을 만들고, 브라질에서는 아보카도 대신 망고를 넣은 캘리포니아롤을 만들고,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카레롤이 등장했고, 하와이에서는 스팸으로 스시를 만들어 철저히 현지화 하면서 스시를 알린 것이다.

일본 음식을 정의하면 한마디로 차용과 융합이다
현지화 된 아류 스시에 맛을 들이다보면 본고장의 정통 스시도 찾게 되지는 않을까? 때로는 이런 얍삽함(?)이 밉살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이런 실용적인 정신이 한의사제도는 없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한방 제약회사를 가지게 된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한마디로 차용과 융합이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요즘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소도시를 가더라도 일본식 이자까야와 라멘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일본식 식당이 붐인 듯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한집 건너 이자까야 등이 걸려 있다. 그런데 정작 영업의 형태나 서비스 정신은 찾기가 쉽지 않다. 무늬만 일본식인 셈이다.

오노 지로씨는 1925년생으로 아홉 살의 어린 나이부터 90세가 넘은 지금도 현역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있다. 그는 말한다. “어느 직업을 가질지 결정을 내렸다면 그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에 반해야 합니다. 이게 안 돼, 저게 안 돼 하면 평생을 한들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기술을 익히겠다고 생각하면 평생 노력하며 기술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게 성공의 비결입니다. 또한 길이길이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비결입니다”라고…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니 가을이 깊어간다. 곳곳에 단풍의 물결이 춤을 춘다. 이번 주말에는 칠순의 신약 개발 전문가 이또 박사와 방위의과대학 쿠로가와 교수와 모처럼 스시에 사케를 곁들이며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대하여, 또 한국과 일본의 의료에 대하여 격의 없는 대화나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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