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철 원장
(구미시 우리경희한의원)
[편집자주]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이용 심사 시 한의사의 진단서를 배제하는 규정에 대해 ‘차별’이라는 결정과 함께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했다. 이번 사건의 진정인이자, 한의사의 권익과 환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앞장선 서정철 원장(구미시 우리경희한의원)으로부터 이번 인권위 권고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Q.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게 된 경위는?
A. 저는 경북 구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지역 어르신들과 장애인,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많이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 5월경 한 환자분이 ‘부름콜’이라고 불리는 지방자치단체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진단서 발급을 요청하셨다.
이에 저는 의료법에 따른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단서를 발급했으나, 그 진단서가 심사 과정에서 ‘한의원 진단서’라는 이유만으로 아예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것이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의사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라고 판단해 진정을 결심했다.
Q.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단체 규정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나?
A.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 심사에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는 보행상 장애가 명시된 의학적 진단서’를 요구하면서, 시행내규에 “의료법 제3조에 따름(한의원 및 한방병원 제외)”이라고 못 박고 있다.
겉으로는 의료법을 근거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료법 어디에도 한의원·한방병원의 진단서를 배제하라는 규정은 없다.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의사의 진단서만 인정하고 한의사의 진단서는 모두 배제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Q. 진정에서 특히 강조한 법적·의학적 쟁점은 무엇인가?
A. 핵심은 진단서의 동일성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9조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발급하는 진단서에 대해 동일한 서식과 기재사항, 그리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즉 한의사의 진단서도 병명 기재 방식, 질병분류코드, 서식 구조에서 의사의 진단서와 법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충족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가 행정 편의나 수요 관리라는 이유로 한의사 진단서의 효력을 일률적으로 배제한 것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진 의료인들 사이에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Q.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인력 문제, 보행장애 판정 기준 등을 이유로 들었다.
A. 피진정인인 지방자치단체 측 주장을 보면, 부름콜과 바우처 택시 이용 수요가 급증해 운영상 제한이 필요하다는 점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정도판정기준에 한의사에 대한 명시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장애정도판정기준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등록’이라는 전혀 다른 제도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일시적인 교통약자의 이동 지원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심사에 그대로 가져와 의료기관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적용 범위를 벗어난 해석이다.
더구나 예산과 인력 문제는 이용 횟수 조정이나 우선순위 설정 등 다양한 정책 수단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특정 직역의 진단서를 통째로 무효화할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Q.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판단했다. 결정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A. 인권위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모두 의료인으로 규정하는 의료법 체계와 이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다는 헌법재판소의 기존 판례를 종합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 위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의사의 진단서만 인정하고 한의원·한방병원 진단서를 전면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한의사를 불리하게 취급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근무하는 기관만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형식만 보고 내용을 보지 않는 조치라고 지적한 대목은 향후 다른 지자체의 제도 설계에도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Q. 이번 결정이 교통약자, 특히 일시적 교통약자에게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A. 지금까지는 무릎 수술 후 일정 기간 휠체어를 타야 한다거나 급성 요통·골절 등으로 버스나 지하철 이용이 어려운 분들이 한의원에 꾸준히 내원하면서도 한의사 진단서만으로는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위 권고대로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면 환자들이 자신이 지속적으로 진료받던 한의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만으로도 부름콜·바우처 택시 등 교통약자 이동 지원 서비스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직역 문제를 넘어 실제로 몸이 불편한 시민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곧장 연결돼 있다.
Q. 한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이 직역 간 관계나 제도 개선 논의에 던지는 메시지는?
A. 저는 이번 결정을 통해 ‘한의사는 의료법상 명백한 의료인이고, 그가 작성한 진단서 역시 정당한 의료행위의 결과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본다.
특정 제도를 설계할 때 직역 간 이해관계나 기존 관행 때문에 한의사의 법적 지위를 축소하거나 배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런 조례·내규 수준의 차별적 규정들은 이제 하나씩 개선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선택권과 접근성을 중심에 두고 한·양방이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공적 제도 안에서 공정하게 평가받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Q. 진정을 제기한 한의사로서 개인적인 소회도 들려 달라.
A. 처음 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환자분께 ‘진단서를 드리면 부름콜 이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다가 나중에 ‘한의원 진단서라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가장 가까이 만나는 사람으로서 그 순간 느꼈던 미안함과 무력감이 진정을 결심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 결정이 단지 제 한의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불편을 겪는 환자와 한의사들에게 작은 희망의 신호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Q. 앞으로의 계획과 한의계와 지자체·정부에 바라는 점은?
A.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위 권고를 존중해 관련 내규를 조속히 개정하고, 실제 현장에서 한의사 진단서가 차별 없이 수용되는지 꼼꼼히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의계 역시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교통약자 이동권, 각종 복지 서비스 등에서 한의사의 진단과 소견이 정당하게 반영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법·제도 개선을 이어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유사한 차별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침과 표준안을 마련해 어느 지역에 살든 환자와 의료인이 동일한 기준 안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