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日本 모르고 있는 日本人(2)

C2173-38-1

일본을 가장 모르면서,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는?

“일본인은 어찌하여 국가에 순종적인가?
그것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상명하복의 피가 철저하게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에게 있어서 선악(善惡)의 기준은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즉 강한 것이 선한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친절하다, 깨끗하다, 예의 바르다, 철저하다, 이중적이다, 우유부단하다, 애매하다, 심지어는 얍삽하다 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도 ‘일본은 없다’ 내지는 ‘일본은 있다’라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얄팍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 한국과 일본이 스포츠 경기에 맞대결이라도 할라치면 다른 나라에는 지더라도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는 오기(?)가 자연스럽게 발동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건만 단언컨대 일본을 가장 모르면서,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가 우리가 아닐까 싶다. 알면서 무시한다면 괜찮은데 문제는 모르면서 막연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지난 박근혜정부는 ‘일제에 강제 징용됐던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고 보상하라’며 3년여 세월 동안 밀고 당기기를 했지만 결국은 사과다운 사과, 보상다운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오히려 ‘다시는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라는 서약서에 도장까지 찍어주는 치욕을 겪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말이 났을까? 결론은 우리가 일본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들은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척 하는가?
지혜 있는 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아둔한 자는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다. 먼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의 평화를 짓밟으며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던 세계 2차 대전의 전범국 독일과 일본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1952년부터 피해자 보상만 80조원과 유대인 600여만명에 추가 개별 보상을 했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가간 배상은 다 끝났다고 선언했다. 더구나 개인피해 청구권, 강제수탈, 강제징용 등에 있어서는 완전 모르쇠다.
독일은 총리를 비롯하여 일반 국민들까지도 피해국과 피해자 수용소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며 추모하지만 일본은 총리, 정치인, 국민 할 것 없이 우린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고 전쟁도 우리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던가?
또 빌리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게토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던 장면은 어떠했던가? 빌리브란트 수상의 이 상징적인 사죄행위는 주변국들의 신뢰를 회복시켜 주었고, 종내에는 독일 통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할 줄 모를까?
이에 반해 일본은 전범들이 정계와 재계로 들어가 중추세력을 형성하며 활동하고, 교과서 왜곡과 함께 전쟁의 주체인 일왕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산물인 전범(戰犯)들을 국가의 신으로 모셔 야스쿠니에 합사하고 대표로 추모하지 않던가?
전범기나 나치들이 쓰던 용어를 철저히 규제하는 독일에 비해 침략의 상징인 전범기의 공식 사용을 추진하고 전쟁 할 수 있는 군대로 전환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며 그것도 모자라 오늘 이 순간까지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국제사회에 주장하는 일본.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은 독일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할 줄 모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일본이 보이지 않을까? 감히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필자는 일본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데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일본은 선사시대부터 고유의 무력 집단을 보유하고 부족 단위로 싸워 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에 의한 통일 이전, 수백 년 동안 수십 개의 봉건국가로 분할되어 각 봉건국의 영주를 중심으로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통치되어 왔고, 사무라이들은 영주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하지만 일반 서민에게는 생사여탈권마저 가질 정도로 군림하는 지배계층이었다.
‘사무라이’라는 말은 우리 말 ‘싸울 아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는 설(說)도 있지만, 어쨌든 사무라이는 명예나 체면을 가치의 최고봉으로 여겨 주군(主君)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쳤으며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 또한 명예로운 충성으로 여기고 또 일반 서민대중도 이를 동경하며 이에 갈채를 보낸다.

C2176-38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앙 집권화를 이루면서 군사 집단의 통합도 함께 이루지만, 일본은 메이지 전까지만 해도 사무라이 막부였다. 막부란 중앙에 장군이 일왕을 대신해서 정치권을 쥐고 있고 각 지방을 관할하는 번주(藩主)라는 자들이 따로 있는 시스템이었다.
각 번(藩)은 무력 집단을 각기 독립적으로 갖고 있으며 번주는 번 안에서는 일국의 왕과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그 당시에는 탈번죄(脫藩罪)라는 것이 있었는데 번의 허가를 얻지 않고 번 밖으로 나가면 큰 죄가 된다.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료마전을 보면 그도 탈번죄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러했던 무력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가? 당연히 힘에 의한 상하 관계이다보니 상명하복은 당연한 논리다. 일본인은 어찌하여 이토록 국가에 순종적인가? 그것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상명하복의 피가 철저하게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에게 있어서 선악(善惡)의 기준은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즉 강한 것이 선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도덕적 윤리를 내세운 비난이 왜 씨알도 먹히지 않는가? 입에 발린 형식적인 사과는 할지언정 진정성 있는 사과는 결코 할 수도,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서 후손들이 대신 사과하는 것은 주군(조상)의 명예를 욕보이는 대단한 불충(不忠)이기 때문이다.
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한 이후 맥아더 장군 앞에서 보여 주었던,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했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 일본인은 아직도 민주주의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민족일지도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필자에게도 지난(至難)한 일이다.

<한의신문(www.akom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