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예영(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한의무석사과정 2학년)
[한의신문] 지난 8월10일 태국 매 솟(Mae Sot)의 매타오 클리닉(Mae Tao Clinic·MTC)에서 제3회 침의 날(Acupuncture Day) 행사가 개최됐다. '알코올 중독 치료와 예방에서 침구의학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오유나 교수와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가 연자로 나섰고, 메딕 (medic·클리닉이 자체 양성한 현지 의료 인력)과 간호사 등 매타오 클리닉 의료진이 참여했다. 난민 진료의 최전선에 선 클리닉에서 침구의학의 성과와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경의 의료 사각지대, 매타오 클리닉
매 솟은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약500km 떨어진 태국-미얀마 국경 도시다. 공항에서 차로5분이면 미얀마 국경에 닿는다. 이곳은 오랜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과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산다. 상당수는 합법적 신분증 없이 살아가기에 병원을 오가는 도중 신분증 검사에 걸리면 체포되어 미얀마로 추방될 수 있다. 아픈 몸을 돌보는 일 자체가 추방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 의료 사각지대를 37년째 지켜온 곳이 매타오 클리닉이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을 피해 국경을 넘은 카렌족 여성 의사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 박사가 1989년 주택 한 귀퉁이에서 진료를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 현재 의료진과 교직원 500여 명이 일하며 하루 평균 200~300명의 환자를 무료로 진료한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출생증명이 발급되는데,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에게 이 문서는 훗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삶의 근간이 된다.

난민들과 18년을 함께 한 침구과
매타오 클리닉의 침구과는2009년 독일인 의사 울리(Uli) 박사가 개설했고, 2015년부터는 한국의 박강호 과장이 합류해 현지 의료 인력을 교육해 왔다. 처음에는 클리닉 내부에서도 "저 부서가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효과였다. 클리닉 스태프들을 치료하며 효과를 보여주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침구과는 통합 진료 파트로 자리 잡았다.
성장세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침구과는 매일 17~18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연간 진료 건수는2024년 2,835건에서 2025년 3,252건으로 약 15% 증가했다. 훈련받은 인력들이 난민촌과 미얀마 소수민족 지역에 클리닉을 열고 활동하는 단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모든 치료 내역을 'acupuncture logbook'에 기록하고 이를 컴퓨터로 옮겨 전산화하고 있다. 이 기록은 침구과의 성장을 수치로 증명하는 근거이자, 기록이 부족한 영역을 짚어 다음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임상 기반이 되고 있었다.
Acupuncture Day, 알코올 중독을 말하다
이번 워크숍 주제가 알코올 중독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경 지역 공동체에서 술은 유흥보다 고통을 견디는 수단에 가깝다. 고된 저임금 노동에 지친 몸과 미얀마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불면으로 이어지고, 잠들기 위해 마시는 술이 중독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중독은 다시 가정과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오유나 교수는 "WHO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260만 명이 알코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하지만, 알코올 중독 환자 중 치료를 받는 비율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며 "이러한 치료 격차는 매 솟처럼 보건의료 수준이 낙후된 지역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NADA 이침 프로토콜과 신문혈(HT7)·축빈혈(KI9) 등 알코올 중독과 금단증상 완화에 대해 연구되어 온 혈위를 소개하며 "침구치료는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표준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저비용의 안전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음주 문화 변화와 국가 정책 그리고 20대 여성의 음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최근 경향도 함께 소개해 현지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여해 WHO가 침 치료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효과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나아가 전통의학을 각국 보건의료체계에 통합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매타오 클리닉 침구과의 진료가 국제 보건의 언어로는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신뢰가 연 다음 무대, 응급실
침구과가 10년간 쌓아온 신뢰는 새로 문을 연 응급실로 이어졌다. 이튿날인 11일 오전, 오유나 교수는 응급실에서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급성 통증 관리를 위한 침구의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침 진통의 기전과 급성 요통·발목 염좌·복통에 대한 임상 근거, 질환별 상용 혈위를 소개하되, 위험 신호(red flag)를 감별해 필요한 경우 즉시 의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했다. 강의 후에는 응급 현장에서의 이침 활용과 자락요법 등 실제 적용 가능성을 두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써보니 좋더라"는 경험담을 넘어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된 자리였다.
한의학의 역할과 가능성
매타오 클리닉에서 침구과는 인도주의적 상황(분쟁·재난·난민 위기 등)에서 한의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경험은 우리 한의계에 세 가지를 남긴다. 첫째, 국제 협력의 출발점은 '무엇을 전할 것인가'보다 '현지 실정에 무엇이 맞는가'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일회성 진료보다 현지 인력이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남겨야 한다. 셋째, 축적된 진료 기록을 분석 가능한 자료로 다듬어 인도주의적 상황에서의 침 치료 근거를 수립하고, 이를 비슷한 처지의 다른 현장과 공유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국경의 진료소에서 이미 기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교류가 행사를 넘어 현지 교육과 공동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문의 수치와 기관 연혁은 매타오 클리닉 공개자료와 현지 관계자의 설명, 연자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