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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6일 (일)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③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③

獨蔘湯에 깃든 우애와 제망매가(祭亡妹歌)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타고난 허약증을 개선시키려 活血湯 처방

학질 후 원기잃어…獨蔘湯 달여 입에 넣어줘

『제문록』임에도 형제자매 깊은 우의 엿보여



C2185-36



연전에 우연히 『제문록(祭文錄)』이란 표제의 필사본을 뒤적이다가 홀연히 찾아온 가을바람처럼 처량한 감회를 떨칠 수 없어 사연을 적어보기로 한다. 『제문록』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 집안의 제사에 올릴 제문을 짓고 그 글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의 성명은 기재돼 있지 않고 다만 아호인 듯 ‘죽천장(竹川藏)’이라고 적어 소장자만 표시해 놓았다. 작성 시기는 표지에 ‘융희기원후갑술단양일장(隆熙紀元後甲戌端陽日粧)’이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1934년 단오날에 표지를 입혀 책으로 묶은 것이다. 첫머리에 주작인 ‘유인진양하씨제문(孺人晉陽河氏祭文) 신미(辛未)’라고 했으며, 또 다른 제문에는 ‘임신십이월이십일(壬申十二月二十日)’이라 적었으니 제문은 대략 일제강점기 중반인 1931∼1932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이 제문록을 새삼 들춰본 또 다른 이유는 한글로 적은 제문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내용보다도 제문을 한글로 지은 경우가 드물고, 특히 문집이나 이렇게 책으로 모아둔 경우는 더욱 희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문에 비해 훨씬 쉬이 읽히는 제문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뜻밖에 치병기록이 담겨져 있어 단숨에 눈길을 끌어당겼다. 본문의 일부를 그대로 적어본다.

“중형 순도가 망매 유인 안동권실의 영(靈) …… 너의 최질(체질)이 약함은 염여(염려)하여 활혈탕(活血湯)이란 약방문은 나도 모르게 심지어 부모동기도 모르게 널(너)를 먹이던 그 화제(和劑)난 언제던지 백씨의 슈중(手中)에 노칠 적이 업섯다. 너의 이십년 성장함은 전연이 백씨의 졍역이 태산과 같앗다 ….”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남매간에 맏이는 늘 부모를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여기서도 손위 오빠가 어린 누이의 선천적인 허약증을 돌보기 위해 부모나 형제 몰래 활혈탕(活血湯)이란 약방문을 장만해 두고 수시로 체질 개선, 즉 타고난 허약증을 회복시키려 남몰래 노력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집안에는 약탕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약방을 운영했거나 적어도 약방 화제를 다룰 만큼 다소간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나 보다. 이런 노력 끝에 어른으로 성장하여 출가시켰으니 부모역할을 대신하느라 오죽 애쓴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엔 이렇게 장남, 장손이 집안의 어른 노릇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허약증에 만만찮은 시집살이를 견뎌내지 못했던 듯, 결국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또 다른 제문은 순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먼저 간 누이의 영전에 바치는 글이다. 거기에도 젊은 누이가 갑자기 병이 들어 “…토사절립(吐瀉絶粒), 급병미진(急病未診), 학후원기치손(瘧後元氣致損)…급전삼음(急煎蔘飮), 이시적구(以匙滴口)”라 했으니 위로는 구토하고 아래로는 대변 설사가 계속되는 급한 증상이 나타나 미음도 들지 못하고 미처 진료를 받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했으니 대략 학질을 앓은 후에 원기가 급격하게 허손된 까닭이라고 자신의 견해까지 덧붙여 놓았다.



또 작자는 상당한 의약지식을 갖추고 있었던지 급히 독삼탕(獨蔘湯)을 달여 수저로 떠서 입속에 흘려 넣어 주었다고 적고 있다. 이런 방법은 원기폭탈(元氣暴脫)에 쓰는 최후의 수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재빨리 환자의 생명을 회생시키는 전통적인 대처법이다. 대개 죽어가는 사람도 되살려 내는 공효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작자도 진단했듯이 급증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오랫 동안 학질을 앓으면서 몸 안의 원기가 모두 고갈된 상태였는지 끝내 회생되지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여기 실린 3편의 글은 모두 작자보다 어린 누이들에게 바친 제문으로 한 나무에서 자라난 가지처럼 동기로 성장한 친 남매간이었지만 아직 이른 나이에 급병을 앓아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심정을 다소 격하게 노정하고 있다.



제문이라 하면 집안마다 돌아가신 선조들의 제사에 읽는 축문이나 차례 모신 후 소지(燒紙)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제문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삼국유사(三國遺어事)』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신라의 고승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이 제문 역시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속세의 연을 차마 끊지 못해 먼저 돌아간 누이의 애달픈 운명을 노래하는 스님이 모습이 처연하게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음에 넌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

의약을 다소 익힌 작자였음에도 몸이 약한 어린 누이를 위해 평생 활혈탕을 지어먹이고, 학질을 앓다가 병석에 누운 누이에게 독삼탕을 끓여 바쳐도 끝내 가녀린 육신을 살려낼 수 없었다는 자책에 밀려오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어느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먼저 간 사람을 잠시 그리워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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