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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4일 (금)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3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3

교육에도 망설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더 빠르게 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그 답에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담을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한상윤 교수님(새 사진).jpg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매년 4월에는 중간고사가 있어서 캠퍼스의 활기찬 봄기운도 잠시 숨을 죽인다. 도서관은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강의실과 열람실에는 책과 노트를 펼쳐둔 학생들이 자리를 지킨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 곁에는 이제 두꺼운 교재만이 아니라 노트북과 패드, 스마트폰이 함께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혼자서만 공부하지 않는다. 궁금한 개념이 생기면 곧바로 AI에 질문을 던지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며, 시험 대비 예상 문제까지 만들어 본다. 어떤 학생은 긴 강의 내용을 요약해달라고 하고,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의 답안을 첨삭 받는다. 시험 준비의 풍경 속에 인공지능은 이미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AI와 인간과의 차이점은 ‘망설임’의 유무


  이러한 변화는 학습의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고민해야 했다면, 이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학습의 속도는 분명 빨라졌고, 효율성 또한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더 나은 학습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최근 한 TV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애란 소설가는 전전긍긍과 자문자답의 과정 속에 작가로서 글쓰기 근육이 늘었다고 자평하면서, AI와 인간과의 차이점을 ‘망설임’의 유무라 하였다. 망설임 없이 유려하고 빠른 AI의 대답보다 무언가를 위해 주저하거나 말을 삼키는 투박한 인간의 침묵이 더 위로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속도와 효율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 교육에도 망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활자보다 영상이, 긴 글보다 짧은 콘텐츠가 더 익숙한 시대에 있다. 특히 ‘쇼츠’와 같은 짧은 영상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에만 길들여진 사람은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점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든다. 학습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길게 읽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보다, 핵심만 빠르게 파악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성장을 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편리함과 속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교육에서 더 중요한 어떤 것들이 점점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한상윤 교수님2.jpg


“빠르게 얻은 이해는 쉽게 무너질 수 있어” 


  실제로 한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작년 12월 동의생리병리학회지에 게재된 ‘한의과대학 학생의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현황과 교육적 요구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학년별 인식 차이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보면, 학생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학습을 위한 주요 도구로 인식하고 있으며, 과제 수행이나 정보 탐색 등 다양한 학습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학년 학생들은 AI를 보고서 작성과 같은 기본적인 학습 보조에 많이 활용하는 반면, 임상실습을 경험한 고학년 학생들은 임상 사례 분석이나 진단 연습과 같은 보다 실제적인 상황에서 활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 점차 임상적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 또한 매우 높았다. 많은 학생들이 인공지능이 최신 의학 정보를 탐색하고, 임상 문헌을 해석하며, 근거 기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이미 인공지능을 단순한 ‘답을 주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존재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매끄럽게 정리된 문장을 옮기는 것과, 스스로 생각해 도달한 문장은 분명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일수록, 그 이면의 사고 과정은 간과하기 쉽다. 특히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은 ‘이해했다’는 감각이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잘 정리된 설명을 읽고 나면 마치 스스로 충분히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려고 하면 쉽게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사고의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얻은 이해는 종종 얕고, 쉽게 무너진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교육”


  임상 현장에서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도 그 사람의 상태와 맥락에 따라 접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빠른 정답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임상에서는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판단이 환자에게 더 적절한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며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빠르게 답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망설여본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


  쉽게 답을 내리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머무르는 망설임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안에는 단순한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진심이 담긴 깊은 이해가 만들어진다.


  AI 시대의 학생들에게 AI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더 빠르게 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그 답에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담을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중간고사 답안을 채점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담스럽고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채점이 더 힘들고 귀찮아 진다할지라도 서술형의 문항으로 학생들의 생각과 이해 정도를 점검해 보고 싶다. 그래야 AI에 의존하지 않고 정말 보조 도구로 잘 활용하는, 실력 있는 의료인이 배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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