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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3일 (화)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데요”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데요”

정우열교수



 



 



 

정우열 명예교수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환경이 좋네요, 강물도 있고…”

“그래서 집사람 때문에 일부로 이곳을 찾아 온 거야. 그런데 저렇게 누워 있으니…”




디리링~ 디리링~ 현관문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저 명이예요” 아침 9시, 막 조반상을 물리고 있을 때, 멀리 부산 기장에 사는 제자 서명(徐明)이 찾아왔다. 그의 호는 화송(華松)이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멀리서 이렇게…” 나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현재 부산의 기장에서 화송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찾아 온 건 정말 뜻밖이다. 물론 며칠 전 그의 전화를 받긴 했다. “교수님, 사모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날씨도 더운데…” “지난번 기흉으로 입원했다 퇴원한 뒤론 더 기력을 잃었는지 힘들어해” “그러세요. 교수님이 힘드시겠네요. 그럼, 제가 한번 올라가 뵙겠습니다. 8월 초에 가겠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오리란 생각은 못했다. “조반 어떻게 했어요?” “먹고 왔어요. 걱정마세요” 뜻밖에 남편 제자의 방문을 받은 아내(한솔)는 어쩔 줄 몰라했다. “쿨룩 쿨룩…” 기침소리를 들은 서 원장은 “기침이 심하시네요. 제가 뵙기엔 사모님 체질이 소양인(少陽人) 같아요” 하면서 오링테스트를 했다. “이것 보세요. 소양인이 틀림없죠” 서 원장은 내 교실에서 병리학을 전공하고 따로 사상체질의학을 공부했다. 그뒤 체질의학을 임상에 응용해 환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고 있는 명의다. “서 원장, 자네가 한 번 진찰하고 처방내봐!”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앉아계세요. 제가 찾아 마실게요”




“아이구, 그 먼데서 이렇게 오셨는데…” 한솔의 말에 그는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데요. 그동안 결단을 못냈어요”하며 오히려 일찍 방문하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했다. “서 원장, 조반은 먹었다니 더 권하지 않겠네. 이왕 왔으니 나하고 한강변 걸으면서 이야기 하다 점심 먹고 저녁 비행기로 내려가게, 음료수 뭐 줄까?” “그냥 생수나 한 잔 주세요” 내가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갈 때 “교수님, 앉아계세요. 제가 찾아 마실게요”하면서 마치 자기집 마냥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곤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사람 놔둬…” “괜찮습니다. 집에서도 제가 하는걸요. 교수님 세대 땐 엄마들이 못하게 했죠” 그렇다. 난 그동안 밥이며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의지해 살았다. 막상 아내가 저렇게 고생을 하니 아내도 아내려니와 나 또한 힘들다. 아내에게 몹시 미안했다. 한편 내 자신이 무능하고 초라해 보였다. “어허~ 참” “화송, 올해 몇인가?” “예순 셋요” “벌써 그렇게 됐군” 화송은 재학 당시 동급생 전주출신 이지영과 결혼했다. 졸업 후 고향 울산 근처인 기장으로 내려가 ‘화성한의원’이란 간판을 걸고 개업을 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두었으며 모두 출가해 지금은 손주까지 봤다.


큰 아들은 목사로 현재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둘째는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로서 현재 아버지와 함께 기장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부자한의원(父子韓醫院)이다.

“집사람 때문에 일부로 이곳을 찾아 온거야”




“이젠 아들한테 맡겨. 그리고 하나씩 내려놔. 그러니 오늘은 나하고 얘기나 하세”  나는 그와 함께 나의 집 ‘여안당’(與雁堂)을 나와 에코센터 쪽으로 갔다. 뜨거운 햇살이 내려 쬐었다. “저기 보이는 저 곳이 생태공원이야. 높이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에코센터지” “환경이 좋네요, 강물도 있고…” “그래서 집사람 때문에 일부로 이곳을 찾아 온거야. 그런데 저렇게 누워 있으니…”에코 전망대로 올라갔다. 강 건너 자유로, 차들이 연락부절(連絡不絶)로 달린다. 멀리 심학산(尋鶴山)이 보이고 그 위로 흰구름이 뭉게 뭉게 일고 있다. “저 산 뒤가 교하(交河)야. 임진강물과 한강물이 서로 교차해서 부쳐진 이름이라네. 옛날에 율곡 아버지 이원수(李元秀, 1501~1561)가  배를 몰고 여주 지역을 오갔던 길도 바로 이 강 길이요,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이 낙향하던 길 또한 이 강 길이며, 개화기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이 월사매(月沙梅)를 이삿짐에 얹고 서호를 떠나 강화 사기실로 간 길도 모두 이 길이라네. 옛날엔 이 강물이 주요 교통로였으니까… 지금은 윗쪽에 보를 막아 위험하지. 저것 보게 물이 많이 찼지? 바닷물이 들어 온 거야”

그 마음 먹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다. 한강물은 이곳 하류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서로 만난다. 어판장이 있는 전류리(轉流里)란 지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렇게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을 ‘기수역’(汽水域, brackish water eria)이라 한다.  옛날엔 이곳에서 잡히는 웅어가 진상품이었다. 정말 오랫만에 제자와 만나 한가롭게 이야기 했다. “자네가 내 이야기 들을 수 있는 날도 이젠 얼마 안될거야” 우리는 공원을 나와 맞은편 모담산(茅潭山)밑 원삼국시대 사람들의 무덤터로 갔다. 김포시의 보호수인 3백년 된 향나무를 본 후 아트홀을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갔다. 12시 30분, 점심 시간이 다 됐다. 전통음식점 ‘모담’으로 들어가 정식을 시켰다. 점심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 식사로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은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났다.  “서 원장, 차 왔어, 어서 타고 가, 고마웠네” 차는 김포공항을 향해 달렸다. 제자는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집으로 들어 오면서 자꾸만 그가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데요”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음만 먹으면… 그런데 그 마음 먹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화송, 고마워, 난 자네 같은 제잘 두어 행복하네” 자꾸만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 가 떠 올랐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김포 하늘빛마을 여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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