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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66)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75년 월간한의약사에서는 『월간 한의약』 송년호를 간행한다. 이 송년호는 ‘뉴스의 광장’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한의계의 동향을 전하고 있다. 이를 아래에 정리한다. ○영등포구 의료인단 무료진료.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등 합동으로: 영등포구 지역 의료인단은 보건소 의약계와 합동으로 지난 10월17일 영등포구 시흥동에서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 진료반은 한의사 2명, 의사 2명, 치과의사 1명으로 구성돼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았는데, 특히 한방의료가 인기를 끌어 침 혜택자 40명, 한약투약자 100여명으로 환자 대부분이 소화불량과 신경통 등이었다. 특히 연 인원 5명으로 과다한 업무량을 감당해야만 하는 의약계는 매월 정기적으로 무료진료를 실시하고자 행정상 애로점이 따르지만 지역주민의 보건 향상을 위해서라면 투철한 봉사행정의 근본을 발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의료행적은 매월 2개동씩 선정해 실시키로 되어 있는데, 특히 영등포구한의사회에서는 이재하 회장을 비롯한 전 회원이 합심하여 본 진료사업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 ○부산시 보건단체 결의문 채택. 부조리, 부정부패 일소 등 5개항: 부산시한의사회를 비롯한 부산시내 보건단체 대표자 회의가 지난 11월14일 부산시 의사회관에서 열렸다. 이날의 회의에서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조리를 추방하기 위해 부정부패 일소 등 5개항의 결의문을 공동 채택하고 범 국민운동의 개전할 것을 다짐했다. ○부산시한의사회 테니스부 설치: 회원간의 융화단결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 부산시한의사회에 결성되어 이채를 띠고 있다. 11월13일 부산대학병원 테니스장에서 부산시한의사회 소속 회원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부산시한의사회 테니스부의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선출된 임원진은 회장 박성춘(현대한의원), 부회장에 김수응(대림한의원), 총무에 김한수(해광한의원), 경기이사에 손송방(동성한의원) 등이다. ○여한의사회 모음: 지난 11월7일 중구 후암동 김정림 원장 집에서 가진 서울시여한의사회 모임에서 김운정 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회원들은 상호 더욱 깊은 유대관계를 가질 것을 다짐하는 한편 임상경험을 교환, 토의했다. ○부산시한의사회 무료진료: 부산시한의사회(회장 박치양)는 지난 11월20일부터 시내 각 양로원을 대상으로 무료진료에 나섰다. 금년 들어 두 번째로 실시되는 이번 무료진료는 지난 11월14일 시내 동구 수정동 소재 부산시한의사회관에서 열린 바 있는 각구 회장 회의에서 결의해 실시되고 있다. ○高雄市 中醫師公會서 서신. 국위절 행사 때 초청장도 보내와: 지난 9월25일 부산에서 열렸던 제2회 한의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중화민국 고웅시 중의사공회에서는 당시 부산시한의사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첫 소식을 전해왔다. 부산시한의사회에 송달된 내용을 보면 “한국 방문시 열렬한 환영에 감명이 깊었으며 이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것이 유감이지만 한의학의 국제적 선양과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되어 있고, 내년 초에 열릴 국위절 행사에 방문단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초청장도 함께 보내왔다. ○한의학박사 논문 접수: 경희대 대학원은 한의학 학자들이 제출한 한의학박사 학위논문을 접수했는데, 제출된 논문을 보면 △삼초에 관한 연구(노정우) △인삼이 주정대사에 미치는 영향(강효신) △음양곽의 약리적 연구(구본홍) △가토에 침자출혈과 시호의 병용에 따른 해열효과에 관한 실험적 연구(최용태) △침이 국소조직에 미치는 병리학적 연구(유근철) 등 5개 논문이다. -
“대선은 각종 정책 제안과 반영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시기”[편집자 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여·야 유력 후보들의 보건의료공약을 찾아 정리한 사이트(https://kmdpick0309.oopy.io)를 개설, 운영하는 한의사가 있다. 이 사이트는 ‘2022 대선, 그리고 한의계’라는 타이틀로 각 정당별 보건의료 공약 모음부터 한의계 주요 정책들까지 총망라했다. 이를 기획·제작한 권상혁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충남 논산시 상월보건지소)를 만나봤다. Q. ‘Kmdpick0309’ 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는? “정책을 보고 후보를 선택한다.” 주위 원장님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한다. 저 역시 의료인으로서 보건의료 정책을 살펴 후보를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정작 대선 후보들의 보건의료 정책을 찾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공약하고 있고 어떤 발언을 했는지 등을 보기 좋게 정리하면 후보들의 정책을 찾고자하는 원장님들께 도움도 되고, 바쁜 일상으로 기존에 관심이 적었던 원장님들도 사이트를 통해 보건의료 정책을 접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발했다. 언론사 등에 산재되어 있는 각 후보들의 공약을 모으는 것 자체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하지만 단순히 공약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정리와 요약을 위해서는 정책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추가적인 공부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새해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으니 기초 작업에 2주 정도 걸렸다. 사이트 공개 후에는 새롭게 발행되는 기사들, 발표되는 공약들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또한 실제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께 직접 인터뷰 요청도 드리고 있다. 일선 선배들을 찾아뵙고 정책, 정치 등 저를 비롯한 한의계 구성원들이 평소 궁금할만한 내용들을 질문 드리고 있다. 선배들께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에 응해준 덕분에 더 알찬 내용이 담긴 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Q. 웹사이트 개발에 관심이 많았나? 사이트를 처음 만들어봤다. 대선 정책 웹사이트는 노션(Notion) 페이지를 기반으로 만든 사이트라 개발 관련 지식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았다. 처음이지만 사이트를 만들다 보니 정보를 한데 모으고 정리하는 것의 장점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 생각보다 많은 원장님들이 사이트에 관심을 가져줘 놀랐다. 사이트를 처음 공개하고 현재까지 약 2500명이 방문해줬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 사이트를 계속 운영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을 추가해 나가고 싶은데, 아직 능력이 안돼 그 부분은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서 나아가 사이트를 방문하는 이용자끼리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다뤄진 의제가 다시 인터뷰이들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Q.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가? 관심이 많다. 그래서 뉴스 기사도 자주 챙겨보는 편이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1년차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던 때다. 당시 코로나19가 확산됐고 저는 대구 코로나19 한의사 공보의 파견 근무에 자원했다.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파견이 무산됐다. 국가적으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자원한 한의사들을 배제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에도 한의과 공중보건의들이 코로나 업무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보건의료 정책과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알면 알수록 더 답답해지고 관심은 더 커졌다. 하지만 주변에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다들 공감은 하지만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까지 논의하는 경우는 적어 안타까웠다. 특히 5년에 한번뿐인 대통령 선거는 각종 정책 제안과 반영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다. 많은 동료 한의사들이 관심은 있으나 이러한 관심이 수렴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Q. 어떤 역량 혹은 가치관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는가?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갈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면 한다. 특히 한의계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 먼저 한의학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또한 검체채취, 역학조사와 같이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참여해야할 업무에 한의사들이 배제되는 등 이른바 의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외면하지 않고 눈여겨 봐주고,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Q. 한의사들이 현실정치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 정책과 정치라고 생각한다. 직접 피부로 느끼기 전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멀리 있게 느껴진다. 우리 한의계가 결코 작은 단체는 아니다. 하지만 한의계와 종종 반목하는 다른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과 적어도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한의계 구성원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가 선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의계 구성원들의 관심과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중보건의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결국 정책 사이트를 만들었다. 정책 사이트를 통해 구성원들의 대선 공약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나아가 한의계 구성원들의 참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의계에 보건의료와 한의학 관련된 공약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해 대선 전까지 사이트를 열심히 운영해 볼 생각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올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약 사이트 운영도 생각해보고 있다. 이를 발전시켜 한의계의 입지를 넓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에 기여하고 싶다. Q. 남기고 싶은 말은? 가볍게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지게 돼서 부끄럽다. 갑자기 엉뚱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움을 준 동료들, 부족하고 미숙한 사이트임에도 많은 관심을 주시고 응원해주신 선·후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얼굴도 모르는 까마득한 후배가 불쑥 연락드려 인터뷰를 요청드렸음에도,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주신 선배들께도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인터뷰에서 해주신 좋은 이야기들을 아직 미숙한 제가 다 담아내고 소화하지 못한 게 계속 아쉽다.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저는 어떤 특별한 능력과 기술이 없는 그저 평범한 공중보건의다. 정책과 정치가 우리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저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목소리를 내자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
大選은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는 好機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선의 공식 선거 운동이 지난 15일 0시를 기점으로 22일간의 대장정이 본격화됐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등 주요 정당 후보들은 일제히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과연 누가 제20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한의사 회원 각각의 호기심 외에도 한의계의 입장에서는 새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현재의 한·양방 간 급격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한층 더 중요한 현안 과제로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의료정책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의사협회는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한의학 육성 방향을 담은 주요 정책 공약을 제안한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는 지난 10일 협회 차원에서 홍주의 회장과 황병천 수석부회장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국민의 한의의료 접근성 제고를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을 주요 골자로 담은 정책 협약식을 개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는 지난 13일 오수석 한의학정책연구원장(국민의힘 한의학발전지원단장), 한의협 김형석 부회장, 서울시한의사회 박성우 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한의학 육성을 위한 ‘한의학 5대 공약안’ 정책 자료집 전달식을 가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와는 지난달 14일 한의사회관 5층 대강당에서 협회 임직원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한의약의 균형있는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에 더해 개별 한의사 차원에서도 주요 후보들의 당선을 위한 지지선언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21일에는 한의사 2600여명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지난 13일에는 대구·경북 소재 한의사 회원 220여명으로 구성된 한의학발전본부가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활동들은 모두 한·양방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유산인 한의학이 국민건강 증진의 핵심 축이자 세계 속의 한의학으로 발돋움하고자하는 염원에서 출발했다. 그럼에도 지난 14일 양방계의 바른의료연구소는 이재명 후보와 한의협간 협약한 한의치료 확대 방안 등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한의계가 왜, 각 대선 캠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의약 육성을 위한 정책 제안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개인 회원은 물론 분회, 지부, 중앙회 차원에서 선거 기간 동안 각 대선 후보를 적극 돕는 일이야말로 한·양방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이다. -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어디까지 왔나? <4>김동수 교수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2016년 첫 발을 내디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PG) 개발 사업이 이제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업의 결과로 30개 질환의 한의 CPG와 10개 질환의 한의표준임상경로(CP)가 개발됐으며, 이외에 다양한 임상연구를 통해 근거 기반 한의 진료의 기반이 구축됐다. 그러나 기반 구축이 곧 근거 기반 한의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CPG와 CP는 한의사의 진료를 지원하는 도구일 뿐이며 결정은 한의사가 하기 때문이다. Evans S.(2008)는 CPG와 CP의 임상적인 활용에 관한 많은 연구를 분석한 결과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근거 기반 임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1차 수요자인 한의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사업단’은 CPG 및 CP 확산이 중요한 현 시점에서 다양한 확산 계획 중 하나로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은 CPG를 활용할 의향이 있는 한의사들을 모집해 CPG와 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 후 이를 평가하는 사업이다. 일종의 시제품을 선도적인 소비자에게 먼저 사용하게 하고 평가를 받는 마케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의계에서 이러한 방식의 패널 사업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2015년에 구축한 305명의 한의사 패널 사업이 유사한 목적으로 진행된 적이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모집단을 설정한 후 모집단을 대상으로 한의사 패널을 모집한다. 모집된 한의사 패널을 대상으로 CPG와 CP를 얼마나 알고 사용했는지 1차 조사를 시행하게 되고, 이후 CPG와 CP 교육 및 홍보자료가 제공돼 패널들이 CPG와 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2차 조사를 통해 한의사들의 CPG와 CP 활용을 평가하게 된다.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311명의 한의사가 패널로 모집됐으며, 1차 조사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80여명의 한의사가 참여하는 CPG와 CP 사용법 교육행사가 진행됐으며, 곧 2차 조사를 앞두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임상 한의사들의 한의 근거에 대한 요구도가 높다는 점이다. 한의사 패널 모집단 설정을 위해 2007명의 한의사 대상으로 CPG를 활용할 의향을 질의한 결과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0.7%로 아직 CPG에 대한 홍보가 초기 단계인 것에 비해 높은 의향율을 보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CPG와 CP 자료를 요청하거나 문의하는 모습은 한의사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 보건의료체계 의사결정에서 근거(evidence)는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소비자의 요구, 비용, 정치, 의료인과 산업의 필요성 등이 모두 근거로 포장돼 나타나고 결정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이러한 근거 중심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이 근거 기반 한의학에 다가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한의약 연구, 임상현장 선순환 위한 보급구현학(D&I science)과 EMR최선미 구축사업 추진단장 (한의약 임상정보 빅데이터 지원센터) 과거 왕실에서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 편찬을 통해 의료 향상에 기여했다면, 현재는 국가 주도의 임상진료지침 발간·보급으로 국민의 의료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근거를 기반으로 한 의료기술 보급에 목적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과거에는 공여자라 할 수 있는 임금의 관심사였다면, 현재는 국가와 의료진을 포함한 국민, 즉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의 관심사라는 것이 달라진 상황이다. 국가가 훌륭한 의서를 편찬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잘 활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책을 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용이 현장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보급과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논문이 출판되면 논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고, 논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오피니언 리더들의 요약본 제공, 보수교육을 통한 내용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실제 의료진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활용되는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임상현장 입장에서는 더군다나 기존 진행된 연구 내용이 기초기전, 효능연구가 대부분이고 실제 임상을 반영한 효과 또는 실용적인 연구 결과물들은 아직 미미하여 임상현장에 그대로 가져다 적용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현재 한의계가 처한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delines: CPG)을 만들고, 임상현장 상황에 맞게 임상경로(Critical pathway: CP)를 만들어 제공하고, 교육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임상의가 이를 직접 활용함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다. 근거기반의 연구 결과물이 현장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적합도가 높은지 등 추가적으로 살펴봐야할 것들이 존재한다. 미국 NIRN(National Implementation Research Network) 보고에 의하면, 의학 연구결과가 임상현장에 전달되는데 걸리는 시간과 활용되는 정도에 대한 연구에서 “결과물의 14%만이 현장으로 전달되며 그 기간이 평균 17년 걸린다”고 한다. 반면 보급팀(Implementation Team)이 존재할 경우 연구결과의 80%가 현장에 구현되고, 기간 또한 평균 3년으로, 보급팀의 유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연구결과를 임상현장으로 보급, 확산하고 활발히 이행되어 지속적으로 구현하도록 하는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보완통합건강센터 전략보고서(NCCIH:2021-2025)에서도 “국가연구개발 정책에서 해야 할 높은 우선순위에 해당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임상연구 체계 6단계’ 중 1단계 기초기전연구, 2단계 중개연구, 3단계 최적화 연구, 4단계 효능연구, 5단계 효과 및 실용연구, 마지막 단계에 보급구현학(Dissemination & Implementation Science : D&I)을 넣음으로써 연구와 임상현장을 하나의 연속체로 보고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 보급학(Disseminaton Science)이 근거기반 지식과 기술이 배포 및 전달되는 원리와 접근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구현학(Implementation Science)은 배포된 지식과 기술이 임상환경에 채택되는지, 구현되는지, 지속가능성을 추적하며, 환자 개개인의 임상결과를 개선하는 것과 나아가 전반적인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이다. 현장 상황과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각적인 요소를 고려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즉 연구는 보통 통제된 상황에서 실시하여 그 결과가 보고되는데,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할 것인지에 주목하는 것이며, 현장 적용을 통해 얻은 피드백이 다시 연구로 연계될 수 있는 순환 구조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의약 치료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초기전, 중개, 효능, 효과, 보급구현으로 선순환 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보급구현학의 핵심이다. 한의약 분야도 최근 D&I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개발사업단’의 임상진료지침이 확산, 보급 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으며,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은 임상현장의 질문을 수집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임상진료지침 개정 작업 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나아가 이러한 흐름과 연계해 임상진료지침(CPG)/임상경로(CP) 기반의 전자의무기록(EMR : Electronic Medical Record)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료현장의 EMR에 ‘근거기반 CPG 성과와 CP에 의한 진료가 가능한 기능’이 탑재됨으로써 연구 성과의 현장 활용을 용이하게 설계한다. 진료에 연구 성과가 채택되는 정도와 지속성을 파악하고 임상 현장의 피드백도 받을 수 있다. ‘한의약 임상정보 빅데이터 지원센터 구축사업 추진단’에서 진행하는 CPG/CP 기반 EMR 개발은 한의약 분야에서의 D&I가 임상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연구개발과 임상이 연계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 -
임대차 종료 시 원상회복의무, ‘이것’만 기억하세요김다희 변호사 (법무법인 지온) dhkim@jionlegal.com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임대차 종료 시 원상회복의무에 대한 김다희 변호사의 기고를 게재한다. 공단 등 국가기관, 의료기관 및 대형제약사의 송무 및 자문 업무를 다수 수행해온 김다희 변호사는 현재 강남 소재 법무법인 지온에재직하고 있다. “임대차 종료 시 전 임차인이 시설한 부분까지 원상회복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대형로펌 출신 민사 전문 변호사 김다희입니다. 임대차 종료를 앞두고 임대차 원상회복의무와 관련한 분쟁 상황에 놓여계신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임대인과의 분쟁 상황 속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자 애쓰고 계신 원장님들이리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평소 한의원 임대차 원상회복의무와 관련한 상담을 많이 진행하는데요. 오늘은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임대차 종료 시의 원상회복의무의 범위와 관련하여 쉽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민법은 사용대차의 차주가 목적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임대차에 준용하고 있습니다(민법 제654조, 제615조). ----------------------------------------------------------------------------- 즉, 임차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차 종료 시 임차목적물을 원상으로 복구하여 임대인에게 반환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원상회복의 내용과 범위는 어떠할까요? 1. 당사자 사이에 임대차 원상회복의무의 내용 및 범위와 관련한 약정이 있을 경우 그에 의합니다. 임대차가 종료된 때 임차목적물의 원상회복의 내용과 범위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에 구체적, 개별적인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의합니다. 2. 당사자 사이에 임대차 원상회복의무와 관련한 별다른 약정이 없는 경우, 임차인은 그가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반환하면 됩니다. (1) 대법원은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임차인은 그가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임차목적물을 반환하면 되고, 그 이전의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전 임차인이 무도유흥음식점으로 경영하던 점포를 임차인이 소유자로부터 임차하여 내부 시설을 개조 단장하였다면 임차인에게 임대차 종료로 인하여 목적물을 원상회복하여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하여도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그것은 임차인이 개조한 범위 내의 것으로서 임차인이 그가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반환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전의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1990. 10. 30. 선고 90다카12035 판결). (2) 다만 대법원은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임대차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의 상태, 임차인이 수리하거나 변경한 내용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이전 임차인으로부터 영업을 양수하여 운영하고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차 종료 시 그 원상회복의무를 정한 사안의 경우에는 설사 비용상황청구권을 포기한 사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영업 양수한 시설의 원상회복의무를 면제하기로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아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이라도 현 임차인이 철거하여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갑 주식회사가 점포를 임차하여 커피전문점 영업에 필요한 시설 설치공사를 하고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운영하였고, 을이 이전 임차인으로부터 위 커피전문점 영업을 양수하고 병 주식회사로부터 점포를 임차하여 커피전문점을 운영하였는데, 임대차 종료 시 을이 인테리어시설 등을 철거하지 않자 병 회사가 비용을 들여 철거하고 반환할 보증금에서 시설물 철거비용을 공제한 사안에서,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차 종료 시 을의 원상회복의무를 정하고 있으므로 병 회사가 철거한 시설물이 점포에 부합되었다고 할지라도 임대차계약의 해석상 을이 원상회복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고, 병 회사가 철거한 시설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운영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서 점포를 그 밖의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는 불필요한 시설이고, 을이 비용상환청구권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병 회사가 위와 같이 한정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의 원상회복의무를 면제해 주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병 회사가 비용을 들여 철거한 시설물이 을의 전 임차인이 설치한 것이라고 해도 을이 철거하여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병 회사가 을에게 반환할 보증금에서 병 회사가 지출한 시설물 철거비용이 공제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7다268142 판결). (1) 판례와 (2) 판례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2) 판례는 영업을 양수하여 운영한 사정 및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차 종료 시의 원상회복의무에 관하여 정한 점을 고려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에 관해 판단한 것일 뿐이지요. 3. 권리금 지급 사실만을 가지고 종전 임차인이 한 시설물에 대한 원상회복 비용을 당연히 현 임차인에게 청구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하급심 판결 중 “전 임차인으로부터 비품, 시설 등을 인수하는 대가로 권리금을 지급하였고, 그 비품, 시설 등을 그대로 사용하여 영업하였을 경우 임차인은 전 임차인의 비품, 시설의 철거의무까지 인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한 사례 등이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8. 23. 선고 2016가소7061507판결). 위 판례 등을 근거로 권리금 지급 사실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종전 임차인이 한 시설물에 대한 원상회복의무가 현 임차인에게 있는 것처럼 오인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권리금 지급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현 임차인이 무조건적으로 전 임차인이 시설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원상회복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위 하급심 판례에서도 권리급 지급 사실 뿐 아니라 원피고가 작성한 임대차계약서에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 등을 임차인의 비용으로 철거하여 원상회복하도록 명문화 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였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즉, 결국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임대차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의 상태, 임차인이 수리하거나 변경한 내용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권리금을 지급한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종전 임차인이 한 시설물에 대한 원상회복의무를 현 임차인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임대차 종료 시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에 관해서 살펴봤는데요. 꼭 기억하셔야 할 점 하나가 있습니다. 임대차 계약시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에 관해서 구체적이고도 명시적인 약정을 남겨 놓는 것이 향후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부디 한의원 운영을 위한 임대차 계약 시,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에 관한 구체적인 약정을 남겨 놓으셔서 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시기를 바랍니다. -
벗도 생기고 건강도 챙기는 ‘트래킹’이 최고예요”[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트래킹을 중심으로 전국 명소와 맛집 등을 탐방하는 고양시 박정철 신침한의원장에게 취미를 갖게 된 배경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앞으로의 취미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가천대 91학번인 박 원장은 현재 체형사상학회에서 침법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Q. 등산, 트래킹 등의 취미를 갖게 된 배경은? 현재 등산과 트래킹, 맛집탐방과 여행, 낚시와 카약, 보팅, 사이클링, 음악과 쇼핑 등의 취미를 갖고 있다. 사실 한의사들은 일주일 내내 쪽방에 갇혀서 환자 보느라 햇빛을 잘 못 본다. 그러다보니 주말에는 꼭 비타민 광합성도 해야 하고, 일주일 동안 환자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으면 다음 진료에 의욕이 떨어지기 쉽다. 의욕을 돋우려면 야외에서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게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레저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풀어주는지 연구를 많이 해 봤다.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가 확실한 레저는 등산이다. 등산을 하게 되면 등산로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안전과 보행을 관리하게 되고, 도시와는 다른 이질적인 공간에서 자연과 직접 접하기 때문에 주의가 환기되면서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잡념도 사라지고 운동도 충분히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무릎과 심폐기능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다보니, 가볍게 부담 없이 즐기는 트래킹을 더 선호하게 됐다. 더구나 동행자가 쉽게 따라 나설 수 있기 때문에 트래킹은 지원자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여성이나 아동도 참여하기 쉽다. 이런 이유로 명품 트래킹 코스를 많이 찾아 놓으면 운동과 정신적 힐링, 트래킹 친구까지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주말마다 생기게 된다. Q. 효과적인 등산, 트래킹을 위해 관심사가 맛집 탐방, 낚시, 음악 등까지 확장됐다. 힐링에 목마른 사람들을 차에 태우고 다니다보니, 동반자들에게 행복한 일정을 생각하게 됐다. 트래킹로가 명품이어도 달랑 다녀오면 서운할 것도 같아서, 동선을 수학여행처럼 다양하게 짜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정에 맛집을 추가하거나 야경 뷰가 좋은 카페 등을 추가하다보니 해당 분야까지 관심사가 넓어졌다. 여행갈 때 음악도 중요하다. 여름바캉스용 음악과 단풍놀이를 갈 때 듣는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느낌에 따라 폴더를 나누어서 음악을 모아 의식의 흐름에 따르도록 편집해 놓는다. 태풍이 불 때 듣는 음악을 들으면 비오는 날 가는 여행도 갑자기 즐겁고 색다르다. 음악을 듣는 취미 역시 여행을 위한 음악, 드라이브를 위한 음악,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한 음악들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쇼핑은 원래 저와 무관했다. 그런데 이게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젊은이와 여성들은 쇼핑에 열광한다. 그래서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쇼핑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자기 취향을 가지고 있어야 대화가 되곤 했다. 그러니 명품과 캐주얼, 스포츠 메이커 정도는 동영상 스트리밍사이트를 통해서 대충 꿰고 있는 것이 좋다. 사춘기 어린 딸이 좋아하는 영캐주얼 메이커를 줄줄 외우고 있으면, 딸을 구워삶아서 함께 트래킹하기가 무척 쉽다. 여행과 가정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술책(?)으로 좋은 방법이다. Q.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여름 방학 때 일상에 찌든 딸이 바람 한 번 쐬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딸을 차에 태워서 양평 서종옥에서 곰탕으로 늦은 아침을 먹은 다음 근처 테라로사 카페를 구경하고, 가평 읍내에 있는 르봉뺑 빵집에서 빵을 먹은 뒤 용소폭포에 가서 ‘훈남’들이 다이빙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고 나서 강씨봉 휴양림에가서 수영하고 옷을 말릴 겸 숲속 트래킹을 했다. 해가 떨어질 때 즈음에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북한강로를 드라이브하다가,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딸이 아빠와의 여행은 짧지만 항상 최고라고 했다. 단골 환자분 중에서 일상에 몹시 답답함을 느끼는 분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한의원을 다녀서 거의 가족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봄날에 의기투합해서 지인 몇 명이랑 차에 태워서 북한강로의 벚꽃이 만개한 터널 속으로 10킬로미터 이상 드라이브 한 적이 있다. 하얀 꽃비에 하얀 꽃 터널에 실컷 눈호강을 한 후, 그대로 춘천으로 달려 벚꽃이 건물 전체를 감싸는 춘천 라뜰리에 김가빵공장에서 다시 못 볼 듯한 비경과 분위기에 푹 빠졌다가 돌아왔다. 거의 몇 달 동안 그 단골환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한의원에 오게 됐다. 꿈같은 여행이 환자를 치료해버린 경우다. Q. 추천하고 싶은 트래킹 코스나 콘셉트는? 단 하루의 트래킹도 효율적으로 잘 편집하면 여름휴가를 다녀 온 것처럼 만들 수도 있다. 같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눈빛을 바뀌게 하는 그런 여행을 만들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여행가이드는 항상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여행은 타이밍이다. 썰물에 만리포를 가면 동해 같은 모습이 나오지만, 밀물에 만리포를 만나면 서해의 여느 해수욕장처럼 혼탁하다. 가을에 설악산 한계령을 가면 단풍에 취하지만 겨울에 한계령을 가면 설국이 펼쳐지거나 황량하다. 또한 겨울에는 활엽수가 많은 산은 가면 안 된다. 핵전쟁이 끝난 지구처럼 황폐해서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우울증이 생길정도로 황량한 쓸쓸함을 맛보게 된다. 반면 안면도 수목원의 데크 길을 겨울에 가보면 그 짙은 푸르름과 피톤치드에 희망과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침엽수 트래킹로는 아껴뒀다가 주로 겨울에 많이 간다. 짧고 간단하게 힐링하고 싶다고 하면, 유명한 산의 입구에서 사찰까지를 걸어서 다녀오라고 권한다. 절터는 과거 왕이 하사한 유적지라 위치가 산에서도 명당이고, 가는 길도 대부분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북한산의 진관사, 삼천사 같은 사찰을 입구에서부터 절터까지 걸어 올라가면 아름다운 경치는 기본적으로 보장된다. 또 가벼운 산책과 신선한 공기, 절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간단하지만 멋진 트래킹이 된다. 게다가 최근에 지자체에서 대부분 근처의 둘레길과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코스의 길이를 조절 할 수 있다. 다음에 열거된 트래킹로들은 길은 편안하고 경치가 무척 수려한 곳이다. 고생은 덜하고 눈은 호강하는 코스가 가장 훌륭한 코스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명품트래킹로는 △설악산 오색약수~주전골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 △태안 삼봉해수욕장 부근 천사길, 노을길(솔향기길) △가평 잣향기푸른숲 △제주 올레길 등이 있다. Q. 앞으로의 취미활동 계획은? 멋진 트래킹을 위해서는 명품 트래킹코스가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명품 트래킹코스를 찾는 답사를 꾸준히 하면서, 단순한 트래킹을 벗어나서 같이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트래킹이 맛깔스러워질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물고기가 잘나오는 포인트가 트래킹 코스에 있다면 등에 낚시대를 짊어지고 트래킹을 해야 할 것이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한의사에게 여행과 레저, 취미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생기가 넘치는 의사만이 환자에게 삶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기분이 울적한 환자에게 알맞은 트래킹을 권고하기도 하고 너무 오랜 기간 단골인 환자들과는 가끔 트래킹을 같이 가기도 한다. 물론 환자는 영감을 받아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오랜 기간 국내여행을 하면서 세계의 아름다운 여행지의 축소판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의 한의학계 의료 환경은?오원교 회장 한국기독한의사회 (교정재생한의원) 한국기독한의사회가 지난 4~5일 양일간 한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의미래 10년 포스트코로나 비대면·대면 진단과 치료’라는 주제로 무료 강좌를 개최한 것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한의약의 발전이 부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함이었다. 백신만 몇 번 맞으면 곧 끝날 줄 알았으나 코로나19가 만 2년간 장기화되면서 특히 중소 자영업자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중소 자영업자인 의료계 역시 코로나발 경제 직격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의원을 포함한 의원, 치과의원 등 의료기관의 매출 감소는 물론 호흡기질환에 취약 분야인 양방의 소아과나 이비인후과 의원은 치명타를 맞았다. 그러나 백신접종으로 인해 이들 양방 의료기관은 코로나 기간 동안의 손실을 다소 보존하는 추세다. 또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 처방전 발행도 경영난을 타개하는 수단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원격의료를 거세게 반대했던 의협이 무조건 반대가 아닌 선제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며 수가를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실리를 챙겨가고 있다.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을 우려해 원격진료를 줄곧 반대해 왔던 의협과 달리 한의계는 지난 43대 최혁용 집행부부터 원격진료를 찬성하며 코로나 시대에 선제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했으나, 국민과 한의사 모두 한의 원격진료의 편의성과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염병 팬데믹은 결코 이번이 마지막 아닐 것” 한의 진료의 특성상 한약 처방은 대면 접촉이 기본이라는 점이 국민의 의식에 깔려있다 보니 한의 원격진료를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은 고충이 있다. 한약을 처방하지 않았을 때 기본상담비를 비롯 여타 기회비용 측면에서 효용성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염병의 팬데믹은 결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란 점이다. 이 코로나19는 업종별 희비 쌍곡선을 분명히 그렸다. 상당수의 식당이 문을 닫는 것을 비롯 생활체육시설, 유흥시설, 생활편의시설 등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업종은 크게 힘들었지만 쿠팡, 배달의민족 등 배달 플랫폼 및 온라인 회의, 온라인 강좌 등 인터넷을 활용한 분야는 오히려 성장세를 맞이했다. 이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방송3사 공중파와 언론매체 및 닷컴 회사의 등장 등 이른바 Web1.0 시대에는 단방향의 지식이 유통돼 의료인의 의료정보에 대한 독점적인 장악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2011년 이후 Web2.0 시대 즉,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같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쌍방향의 지식 소통채널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층 스마트해진 환자는 자기가 관심 갖는 의료정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섭렵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가 생산자인 한의사를 선택하는 플랫폼 활발 이렇다보니 의료인이 환자를 다독이고,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됐으며, 이른바 소비자가 생산자인 한의사를 선택하는 시대, 플랫폼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이런 시대에 그나마 디지털 환경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주로 상대하는 한의 분야는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겠으나, 작금은 코로나라는 암초에 걸려 코로나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의료기관 방문 자체를 꺼려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디지털 문화에 자연스러운 X 세대, MZ 세대들이 주 고객이 되는 향후 미래 10년은 한의의료기관 역시 무한생존이라는 경쟁 시대에서 환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다. 대략 10년을 주기로 Web 플랫폼이 변하고 있다. 전반 5년은 개발자(developer) 시장이고 후반 5년은 창조자(creator) 시장이다. 개발자 시장은 플랫폼 개발이 진척되는 시기고, 창조자 시장은 개발해 놓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시장이다. 2010년 전후부터 초반은 Web2.0 개발자 시장이었고, 2010년대 중후반은 Web2.0 창조자 시장이었다. 지금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플랫폼을 빨리 승선한 얼리어댑터(early adaptor) 창조자들의 세상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는 Web2.0에서 Web3.0으로 진입하는 Web3.0 개발자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 이는 곧 Web3.0상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창조자(creator)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Web3.0으로 가기 위해 Web2.0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볼 때 한국기독한의사회가 ‘포스트코로나 한의미래 10년 비대면·대면 진단치료’란 주제로 강좌를 연 것도 Web2.0에서 Web3.0으로 가기 위한 가교와 연습 차원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한해의 화두는 가상현실(VR·Vertual reality),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메타버스(Metaverse) 등 이른바 가상세계였다. Web3.0 시대의 핵심은 메타버스 세상이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과 정보를 자동으로 데이터화하고 분석하여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Web3.0 O2O(Online to offline) 경제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미술을 2차원 평면 도화지 그림에서 3차원 입체 조각작품 예술을 감상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O2O 활용 가능한 직원으로 조직 재정비 및 교육 그렇다면 도래하는 Web3.0 시대에서 한의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가 될 것인가? 그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경제 생태계의 흐름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한다면, 첫째, 비대면 진료의 활성화는 오프라인 진료의 연장선상에서 검토돼야 한다. 한의진료의 가장 큰 장점인 감성터치 접촉과 환자 눈높이에 맞는 공감 진료 강화가 AI 인공지능 의사에 밀리지 않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비대면 진단 및 치료 솔루션 프로토콜과 다양하고 현실적인 보험수가(상담료·첩약보험 적용 확대)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령 짧은 상담과 긴 상담을 구분하여 수가를 책정하고 일반적인 한약치료의 표준화와 개별 한의원 및 한방병원만의 주력 개별상품과 구분해야 한다. 셋째, 초진과 재진상담 사후관리부터 결제까지 온라인, 오프라인 원스탑으로 서비스가 가능한 앱의 개발과 보급, 그리고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온라인상에서 매출과 오프라인 상에서의 수가 창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한의원으로 발전해갈 필요가 있다. 넷째, O2O(Online to offline) 활용이 가능한 직원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재교육을 반복해야 한다. 직원 재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원장부터 지식을 갖추고 O2O에 열린 마음으로 스마트하게 다가가야 한다. 다섯째, 클라우드 공유 빅데이터 시대에 지식경험과 환자사례 공유가 개인정보보호가 허락되는 하에서 IT 플랫폼 상에서 협업이 돼야 한다. 각 개별 임상이라는 각개 전투 가운데에서도 효율적인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팀에 소속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시선나누기-8] 머리를 숙이는 일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오른 바 있습니다. ◇좋은 장소 하나 구미의 공연장은 커다란 서점 지하에 있었다. 저녁 일곱 시 삼십 분 공연에 맞춰 도착한 저녁 거리에서 서점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역의 서점이 이렇게 근사하게 살아 빛난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내가 사는 곳에도 멋진 서점이 있다. 서점이라는 곳이 책을 사고파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멋진 일.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너무 신속해서 턱없이 겁이 나는 시대를 살지만, 한 사람이 걸음을 옮겨 어떤 곳으로 가고, 손을 들어 어떤 것을 찾고, 그것을 냄새 맡고 음미하듯 선 채로 활자를 읽어 본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크고 소중한 일이다. 시공간과 오감이 함께하는 말 그대로의 체험이니까. 그 걸음과 손 곁에 동행한 또 한 사람이 있다면 크고 소중한 일은 더 더 부피가 커지고 더 더 색채가 아름다워진다. 만남과 교류를 만들고 어떤 지역의 공기와 정서가 된다. 책을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책을 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책 때문에 책 이외의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서 좋은 장소는 좋은 사람들이 흘러드는 곳이 된다. 아이가 생긴다면 부모는 그 아이를 데리고 서점엘 가겠지. 아이에게 책이란 걸 보여주겠지. 아이 때문에 부모는 오래전에 멀어졌던 책을 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책을 골라주느라 그림책을 펼치고 그림 옆에 또박또박 적힌 이야기를 읽게 된다. 아마도 소리 내서 읽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은 낯선 부드러움에 뭉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상처 입고 굳은살 박인 자신의 영혼도 한때는 이렇게 연하고 고왔다는 걸 기억해낸다. 아이도 언젠가는 자라고 때가 묻겠지만, 아직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어른은 좋은 어른이려고 한다. 그것을 펼치면 다른 세계가 나타나리란 것. 한 줄의 문장으로도 나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훌쩍 다녀올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런 기대감만으로도 책은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 인류가 인류에게 전하는 어쩌면 가장 귀한 것들. 이 도시의 첫인상이 아름답고 개성 있는 서점으로 깊이 박힌다. ◇좋은 장소 둘 서점 모퉁이를 돌아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두 시간을 쉼 없이 달려 도착했다. 공연이 두 도시에서 연달아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는 어제 여기로 달려와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돌아갔다. 조금 전 무대에 같이 올랐던 기타리스트가 공연을 끝내자마자 우리를 싣고 곧장 여기로 달려와 주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도 좋은 공연을 보고 싶다는 것. 기다리는 동안 나도 그들의 공연을 보았다. 기타와 바이올린과 칼을 빼 든 검무가 한 무대에서 놀았다. 즉흥과 실험과 조화. 바이올리니스트는 그를 가리켜 기타 산조 연주가 멋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그의 낡은 자동차에서는 사람과 기계의 오래 묵은 피로와 열정이 느껴졌다. 우리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그에게 했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과 말투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것이 또 고마웠다. 하루 저녁 왕복 네 시간의 노동이다. 밝게 칠한 나무계단을 내려서자 벽면에 커다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웃음이 난다. 계단을 내려왔으니 계속 가면 된다. 다들 그걸 안다. 다른 길은 없고, 저 벽을 밀고 들어가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화살표는 친절하고 점잖게 왼쪽으로 가라고 말해준다. 문을 들어서자 작고 검은 문이 보인다. 오른편엔 계단식 의자가 층층이 놓여있고 무대는 컴컴하다. 검은 바닥 검은 벽 검은 문. ‘머리조심’이라고 적힌 표지가 눈앞에, 그러니까 내가 애써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이마를 박을만한 위치에 붙어 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공연자 대기소로 들어간다. 바닥에도 화살표가 붙어 있다. 어둠 속 저쪽에서 리허설을 마친 마임이스트가 제시간에 맞춰 왔다고 반겨주신다. 마음이 급하다. 대기실은 비좁고, 이 극장에서 쓰이는 소품들이 쟁여져 있다. 검은 사다리, 검은 공구함, 검은 조명등, 어둠을 더듬어 공간을 익히고 공연 준비를 한다. 대극장과 달리 손바닥만한 공연장이어서 벽 너머 이곳에서는 숨소리를 죽여야 한다. 문틈으로 보이는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스태프가 사다리에 올라 천장의 조명을 손보고 있다. 온통 검은 공간, 온통 정지된 적요의 공간, 무대에서 움직이는 배우만이 이 검은 정적을 흩뜨릴 수 있다. 배우를 비추는 조명만이 이 무한공간에 초점을 줄 수 있다. 자궁 안에서 태아는 이런 흑색 세계에 잠겨 있을까? 이 작은 소극장은 온통 검음으로써 오로지 무엇의 배경이 되려 한다.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이 깊은 저장고, 이 깊은 어둠, 이 극장이야말로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지 모른다. 깊이 숨죽인 호흡. 곧이어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발소리, 서점 모퉁이를 지나 나무계단을 딛고 화살표를 따라 지하의 이 자궁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사람들. -
간호법 제정에 ‘갑론을박’…핵심 쟁점은?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간호법’ 제정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0개 보건의료단체가 지난 8일 공동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등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 단체는 간호법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장해 간호사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여지를 남긴다고 비판한다. 반면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법 어디에도 이런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다며, 10개 단체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3월 여·야 3당이 각각 발의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간호·조산에 대한 내용을 이관해 독립적인 법률로 제정하기 위해 추진됐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5년마다 간호종합계획이 수립되고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게 된다. 국가와 지자체는 간호 인력 수급 및 근무환경 개선 정책을 수립·지원하고, 간호사가 인권침해를 받지 않도록 조사·교육을 의무화한다. 논란의 핵심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대목이다. 현행 의료법 제2조5항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하고 있다. 최연숙·김민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간호(조산)법안에서 현행의 ‘지도’라는 표현은 ‘지도 또는 처방’으로, 여야 3당 모두가 발의한 간호법에서 ‘진료의 보조’ 업무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뀌었다. ◇PA 문제 해소 VS 간호사 개원 가능성 국회는 ‘지도’와 ‘보조’ 등 의미 중복과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문제를 해소해 간호사 처우를 개선코자 이런 내용의 법안을 발의·상정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협 등 10개 의료 단체는 이런 변화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장하고 간호사의 독립 개원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먼저 ‘처방’ 표현을 법안에 넣은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4월 26일 제386회 국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간호·조산법안 발의 제안 이유로 “불법 논란이 일고 있는 ‘진료를 지원하는 간호사’, 즉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간호사가 반드시 의사 등의 처방을 전제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의사가 퇴근 후 ‘의사의 처방 하에’ 환자를 돌보는 등의 업무를 관행적으로 해온 간호사들의 불법 의료행위가 합법이 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국회는 이 표현이 보건의료직종간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위원은 지난해 11월 24일 열린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현행 의료법은 시행규칙을 통해 가정전문간호가 치료 관련 의료행위를 할 때 한의사·의사의 진단과 처방 하에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처방에 대해 시행규칙에서 한계를 분명히 설정하면 된다”며 간호사의 독립 개원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간협 역시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사는 독립적인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며 “이 뿐만 아니라 간호법 어디에도 독립적인 의료기관 개설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간호사의 독립 개원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의협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처방’ 언급은 의사가 있는 같은 기관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기존 법안에서 동일 기관 내 의사의 지도·관리·감독을 받는 의미의 ‘지도’와 구별된다”고 맞섰다. 의사의 고용이 줄어들어 의료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수현 의협 홍보이사겸 대변인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만으로 의료 행위를 하면, 극단적으로 의사 한 명이 처방만 하고 여러 명의 간호사가 의료 행위를 전부 수행할 수도 있다”며 “의사 고용을 줄이고 간호 인력을 늘려 의료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진료 보조 vs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간호사의 업무를 ‘진료 보조’에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명시한 부분도 쟁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은 지난해 4월 3개 간호법 검토보고서를 통해 “간호법은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 가능한 진료 행위와 ‘진료 보조’의 문언 중복을 해소하는 의의가 있다. 또한 의사·간호사의 종속·의존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시정하는 조치이기도 하다”며 “제정안이 실제 업역 변경을 수반하는 법 개정조치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간협 역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해도 진료의 주체는 여전히 의사이기 때문에, 간호사의 업무가 명확해질 뿐 실제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법제도 팀장은 지난해 8월 ‘간호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진료 보조’는 진료 행위의 위임 범위와 한계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보건복지위원회의 3개 간호법 검토 보고서는 ‘보조’에 대한 사전적 의미와 문제점만을 고려하고 있다”며 의료 현장 내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관계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사의 지도·감독에 따라야 하는 간호 업무의 특성을 법안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의료계는 △보건의료체계 붕괴 △보건의료직역간 갈등 심화 △다른 보건의료직역의 위상 약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운영에 차질 초래 △간호법 한국만 없다는 주장은 과장 등을 들어 간호법을 반대하고 있다. ◇“직역간 갈등 예상…상호 토론 필요” 정부는 간호법 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양정석 간호정책과장은 지난달 7일 간협이 주최한 간호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근무환경, 급여 등 간호 인력의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재 논란이 되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직역 간 다른 의견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상호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간호법은 2005년 간호사의 업무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김선미 의원의 ‘간호사 법안’으로 물꼬를 텄다. 2년 뒤인 2007년 보건복지부가 ‘간호진단’ 용어를 포함한 의료법 전부개정을 시도했지만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조무사 등 4개 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2019년 김상희·김세원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조산법안’과 ‘간호법안’에는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중 ‘의사의 처방을 받는다’는 내용은 지난해 3월 발의된 최연숙·김민석 의원의 법안에도 반영됐다. 다음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3당 대선후보는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3개 간호법은 지난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