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수 교수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2016년 첫 발을 내디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PG) 개발 사업이 이제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업의 결과로 30개 질환의 한의 CPG와 10개 질환의 한의표준임상경로(CP)가 개발됐으며, 이외에 다양한 임상연구를 통해 근거 기반 한의 진료의 기반이 구축됐다. 그러나 기반 구축이 곧 근거 기반 한의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CPG와 CP는 한의사의 진료를 지원하는 도구일 뿐이며 결정은 한의사가 하기 때문이다.
Evans S.(2008)는 CPG와 CP의 임상적인 활용에 관한 많은 연구를 분석한 결과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근거 기반 임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1차 수요자인 한의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사업단’은 CPG 및 CP 확산이 중요한 현 시점에서 다양한 확산 계획 중 하나로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은 CPG를 활용할 의향이 있는 한의사들을 모집해 CPG와 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 후 이를 평가하는 사업이다. 일종의 시제품을 선도적인 소비자에게 먼저 사용하게 하고 평가를 받는 마케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의계에서 이러한 방식의 패널 사업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2015년에 구축한 305명의 한의사 패널 사업이 유사한 목적으로 진행된 적이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모집단을 설정한 후 모집단을 대상으로 한의사 패널을 모집한다. 모집된 한의사 패널을 대상으로 CPG와 CP를 얼마나 알고 사용했는지 1차 조사를 시행하게 되고, 이후 CPG와 CP 교육 및 홍보자료가 제공돼 패널들이 CPG와 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2차 조사를 통해 한의사들의 CPG와 CP 활용을 평가하게 된다.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311명의 한의사가 패널로 모집됐으며, 1차 조사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80여명의 한의사가 참여하는 CPG와 CP 사용법 교육행사가 진행됐으며, 곧 2차 조사를 앞두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임상 한의사들의 한의 근거에 대한 요구도가 높다는 점이다. 한의사 패널 모집단 설정을 위해 2007명의 한의사 대상으로 CPG를 활용할 의향을 질의한 결과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0.7%로 아직 CPG에 대한 홍보가 초기 단계인 것에 비해 높은 의향율을 보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CPG와 CP 자료를 요청하거나 문의하는 모습은 한의사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 보건의료체계 의사결정에서 근거(evidence)는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소비자의 요구, 비용, 정치, 의료인과 산업의 필요성 등이 모두 근거로 포장돼 나타나고 결정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이러한 근거 중심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한의의료기관 패널 사업이 근거 기반 한의학에 다가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