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실습·그림 기록·MRI 검증까지…체계적 맥진 교육법 제시
유준상 상지대 한의대 교수(상지대부속한방병원장)
[편집자주] 유준상 상지대 한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맥진(脈診)을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는 실전 지침서 ‘맥진습득법-누구나 맥진을 할 수 있게 된다(청홍)’를 번역·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 동양의학연구소의 마츠자와 히로무 주임연구원과 무토 아츠코 연구원이 집필하고, 기도 마사오 주임연구원이 편저한 것으로, 유 교수가 공동 번역을 맡았다. 반복적인 실습과 감각 훈련을 통해 맥진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본란에서는 유 교수에게 효과적인 맥진 교육법과 책의 특징에 대해 들어봤다.
Q. 이 책을 번역·출간하게 된 계기는?
임상교수로 재직하며 본과 4학년 학생들에게 사상의학 실습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학생들이 오른손으로 환자의 왼손목이 아닌 오른손목의 맥을 짚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제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기본이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과 2학년에서 배우는 맥진 내용을 물어보고 촌·관·척의 장부 배속에 대해서도 질문해 봤는데 제대로 답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 직접 맥진 실습을 시작했다.
마침 일본 학회에서 구입해 두었던 ‘맥진습득법’을 참고해 4선지에 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서로의 좌우 촌·관·척을 직접 짚어보며 손가락을 놓는 위치와 엄지의 위치, 가압 방법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이후 매년 1학기 실습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책이 바로 ‘맥진습득법’이었다.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꼭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처음에는 국내 출판사로부터 번역 출판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아 포기하고 있었다. 이후 다른 출판사와 논의하면서 출간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이번 번역·출판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강의에서 일본판 ‘맥진습득법’의 도판과 이미지를 일부 활용해 왔는데, 이번에는 책 전체를 완역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
Q. 번역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그동안 중국어로 된 중의학 서적은 번역해 왔지만 일본어 번역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공동으로 번역할 교수를 찾았고, 연세대 미래캠퍼스 노혜경 교수와 함께 작업하게 됐다. 한의학 관련 내용은 제가 맡았고, 일본어 특유의 자연스러운 표현은 노 교수님이 많이 다듬어 주셨다.
Q. 이 책의 장점을 꼽는다면?
이 책은 기도 마사오를 비롯한 저자들이 침구학교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축적한 맥진 교육 경험을 체계화한 교재다. 부제인 ‘누구나 맥진을 할 수 있게 된다’라는 말 그대로 맥진을 차근차근 익힐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양손에 손가락을 올리는 법부터 맥의 세기를 표시하는 법, 맥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법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지삭(遲數, 맥의 빠르기)에 대해서도 앉아 있을 때와 누워 있을 때의 기준을 각각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분당 맥박수가 90회 이상이면 삭맥으로 판단하지만 이 책에서는 지맥, 약간 지맥, 보통맥, 약간 삭맥, 삭맥 등 5단계로 세분해 평가한다. 또한 부·중·침의 가압 단계도 3단계뿐 아니라 5단계와 7단계로 나눠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책 뒤에는 실습 내용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평가 카드도 수록돼 있다. 특히 손가락으로 실제 맥을 짚은 상태에서 MRI를 촬영한 사진을 통해 손가락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놓이는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Q. 맥진에 있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맥상진(脈象診), 즉 맥의 형태를 중심으로 진단한다. 흔히 27맥이나 28맥 가운데 하나를 변별하는 방식이어서 한의사들은 그중 하나를 정확히 맞혀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맥진에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보다 간편하게 하기 위해 부·침·지·삭·활·삽·대·소 등 8개의 핵심 요소인 '8요맥(八要脈)'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실제 임상에서도 8요맥만 정확히 파악해도 진단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이 책에서는 촌·관·척 부위에서 부·중·침과 지삭을 중심으로 맥을 평가한다. 이를 통해 간허증, 폐허증, 신허증, 비허증 등의 병증을 파악한 뒤 해당 경혈에 자침하고, 맥의 변화와 목이나 몸통의 움직임이 얼마나 편해지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맥진의 정확성을 판단하도록 구성했다.
▲지난달 상지대부속한방병원장에 임명된 유준상 교수
Q. 이외 강조하고 싶은 말은?
저는 개인적으로 맥진기를 활용하고 있다. 맥진기의 측정 결과와 제가 직접 짚어 판단한 결과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한 뒤 환자에게 설명한다. 이런 과정이 제 판단을 검증하고,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맥진기의 그래프는 환자에게 현재 맥 상태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한 도구가 된다.
다만 맥진기에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맥을 짚을 수 있도록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을 올렸을 때 2촌, 정확히는 1촌 9푼 이내에 검지·중지·약지가 자연스럽게 놓이도록 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압력을 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초보자라도 정확한 방법을 익히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맥진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맥진 결과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습관도 좋은 공부가 된다. 실제로 이 방법을 오랫동안 임상에 활용하는 한의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맥진을 실천하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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