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맞으면 나는 환자의 脈을 짚는다. 그 진맥을 통해 병세를 보고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수많은 환자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진맥하였다. 이 책은 그 꿈과 희망을 되새겨 보는 내 처음이자 마지막 회고록이다. 내가 꿈을 진맥하듯이,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어린 꿈나무들이 꿈과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 가난의 굴레를 벗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고향 분들과 모교 및 장학회 관계자들, 한의사협회와 동업계의 지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위의 글은 한의사 허인무 선생의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2006년 도서출판 엔터에서 간행된 허인무의 자서전)에 나오는 저자 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허인무 선생(1937〜2016)은 1937년 충남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서 빈농의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다가 16세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신문 배달 등으로 돈을 모아서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여 합격하고 부산 가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움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각종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이어갔던 경험 속에서 그는 꿈을 버리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고, 1965년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내인당한의원을 개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한의사로서 지역사회에서도 일꾼으로 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일친선협회 상임이사, 청량리경찰서 자문위원장, 청량리세무서 세정위원,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위원, 경희대학교 부설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 자문위원 등이 이러한 활동이었다.
허인무 선생의 저술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에 나오는 장학회 설립과 장학금 수여 장면.
위에서 밝혔듯이 자신을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로서 묘사한 것은 “꿈을 발견하여 꿈을 심어주는 한의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신조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신조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각종 기자재와 장학금을 기탁하는 사업을 이어왔다. 모교인 상월초등학교에 피아노와 컴퓨터 등 교육 기자재를 기증한 것을 계기로 1999년 2억원의 기금을 기탁하여 재단법인 동릉장학회를 설립했고, 2000년에는 모교 부산 가야고등학교에 2억원의 장학기금을 기탁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모교 가야고등학교로부터 ‘자랑스러운 가야인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고향 상월면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동릉 허인무박사 공덕비’를 건립했다.
그는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의 그 고단함과 나무껍질이나 우물물로 배를 채웠던 굶주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작정 부산으로 배움의 길을 떠난 후 단 하루도 학비 걱정 없이 지낸 날이 없었던 그 배움의 길과 한의사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도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금 동릉장학회의 장학금을 받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수백명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것은 결코 학비가 전부는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배울수 있다는 희망과 배움의 길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용기를 나누어 주고 싶다.
매년 장학금 수여식에서 아이들과 악수를 나누면 그 아이들의 脈이 느껴진다. 나는 그 뛰는 맥에서, 그 아이들이 가진 배움에 대한 열정과 미래를 향한 꿈을 診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