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코니틴, 왜 맹독인가: ‘꺼지지 않는 스위치’의 문제
부자의 독성을 이야기할 때 피할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아코니틴(aconitine)이다.
생부자(生附子)에 함유된 아코니틴은 강력한 신경독이자 심장독이다. 이 독성은 막연한 자극성이나 ‘열이 세다’는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은 매우 구체적인 분자 수준의 작용 기전에 있다.
아코니틴은 신경세포와 심근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전압의존성 나트륨 통로(Voltage-gated Na⁺ channel)에 결합한다. 정상적인 나트륨 통로는 짧게 열렸다가 즉시 닫히며 활동전위를 형성하고, 이 리듬을 통해 신경 신호 전달과 심장 박동이 정밀하게 조절된다. 그러나 아코니틴이 결합하면 이 통로는 열린 채로 고정되어 닫히지 않는다. 문을 열어버린 뒤 잠금장치 자체를 망가뜨리는 셈이다.
그 결과 나트륨 이온이 세포 안으로 끊임없이 유입되고, 세포는 흥분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신경계에서는 입과 혀, 사지의 저림과 마비가 나타나고, 심장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수축 신호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이 과정이 심방성·심실성 부정맥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치명적인 심실세동으로 진행한다. 흔히 비유하듯, 아코니틴은 ‘눌린 채 고장 난 초인종’과 같다. 한 번 울림이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다. 아코니틴의 문제는 ‘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조절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코니틴은 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 오두·초오·천오·진범이 공유하는 기전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아코니틴의 이러한 독성 기전은 비단 부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두(烏頭), 초오(草烏), 천오(川烏), 그리고 국내에서 진교 혹은 진범(眞芃)으로 불려온 Aconitum 계열 약재들 역시 모두 아코니틴 또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디테르펜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작용 기전은 동일하다. 이들 모두 전압의존성 나트륨 통로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통제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흥분을 유발한다.
따라서 특정 본초가 ‘유독 위험하다’는 인식은 약재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Aconitum 계열 알칼로이드라는 공통된 화학적 뿌리에서 기인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자만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다른 Aconitum 계열 약재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독성의 실체는 본초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분자 기전과 그것이 얼마나 통제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포제(炮製)다. 오두와 초오, 천오는 포제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강한 자극과 진통 작용이 중심이 되는 반면, 충분히 포제된 부자는 아코니틴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약성의 중심이 전신 반응성 회복으로 이동한다. 다시 말해 Aconitum 계열 약재들은 하나의 ‘독성 군집’이 아니라, 포제를 통해 단계적으로 설계된 치료 스펙트럼이며, 부자는 그 스펙트럼에서 가장 정밀하게 길들여진 지점에 위치한다.
포제, 독을 약으로 바꾸는 정밀 화학
– Diester에서 Monoester로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이 ‘조절되지 않는 자극’을 포제라는 기술로 다뤄 왔다. 포제는 단순히 독을 씻어내는 세척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분자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정밀한 가수분해 공정이다.
화학적으로 아코니틴은 디에스터(Diester) 구조를 가진다. 이 구조가 강독성의 핵심이다. 부자를 가열하고 수침하는 포제 과정을 거치면, 먼저 에스터 결합 하나가 끊어지면서 벤조일아코니틴(Benzoylaconitine)으로 전환된다. 이 변화가 결정적이다. 디에스터가 모노에스터(Monoester)로 바뀌는 순간, 독성은 생부자 대비 약 1/200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점에서 약효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벤조일아코니틴은 여전히 진통, 항염증, 심근 수축력 개선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생리 활성을 유지한다. 이 단계가 바로 맹독이 ‘쓸 수 있는 약’으로 전환되는 경계선이다.
가열과 가수분해가 더 진행되면 최종적으로 아코닌(Aconine) 상태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는 독성이 생부자 대비 1/2000 수준까지 떨어져 매우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생리 활성 역시 크게 약화된다. 따라서 임상적으로 이상적인 포제부자는, 독성은 통제되었으면서도 약효는 유지되는 벤조일아코니틴 영역을 중심으로, 아코닌이 보조적으로 공존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포제의 본질은 분명해진다. 포제는 아코니틴을 완전히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독성의 ‘지배력’을 낮추고, 조절 가능한 약성만 남기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포제는 독성 제거 기술이 아니라, 치료역(Therapeutic window)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효과와 독성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다
아코니틴의 독성과 치료 효과를 전혀 다른 작용으로 이해하는 것은 흔한 오해다. 실제로 이 둘은 동일한 작용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강도로’ 발현되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나트륨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작용은 조절되지 않으면 부정맥과 마비로 이어진다. 그러나 반응성이 극도로 저하된 심근과 신경계에서는, 일정 수준의 활성화가 오히려 기능 회복의 시동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고전에서 말한 회양(回陽)과 온심통양(溫心通陽)의 생리적 실체다. 포제는 바로 이 위험한 경계선을 임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범위로 넓혀 준다.
진짜 부작용과 가짜 부작용
– 독성보다 중요한 것은 병태다
임상에서 경험하는 부자 관련 ‘부작용’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진짜 중독이다. 포제가 불충분하거나, 약재의 품질이 나쁘거나, 용량이 과도할 때 나타난다. 혀끝과 입술의 얼얼함, 뚜렷한 심계항진, 오심과 구토는 대표적인 경고 신호다. 이는 아코니틴계 독성이 아직 지배적인 상태라는 뜻이며, 즉각적인 중단이나 감량이 필요하다.
둘째는 병태 불일치에서 오는 가짜 부작용이다. 이미 열이 성한 환자, 교감신경이 항진된 상태, 음허화동이나 습열 병태에 부자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번조, 두통, 불면, 출혈 경향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독성의 문제가 아니라 진단의 문제다. 불이 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결과다.
부자의 독성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통제 대상이다
부자는 분명 위험성을 내포한 약물이다. 그러나 그 위험성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정확히 포제된 부자를, 정확한 병태에, 환자의 반응성을 살피며 단계적으로 사용한다면, 부자는 그 어떤 온약보다 예측 가능하고 강력한 효과를 보여준다.
아코니틴은 악역이 아니다. 길들이지 않으면 맹수가 되지만, 조절되면 가장 힘이 좋은 말이 된다. 부자의 독성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이해하고 통제해야 할 에너지다.
이 지점까지 이해할 때, 부자는 더 이상 “무서워서 피해야 할 약”이 아니라, 가장 깊은 저반응성 병태에서만 꺼내 쓰는 정밀한 도구로 제자리를 찾게 된다. 이것이 부자를 제대로 아는 길이며, 동시에 가장 안전하게 사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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