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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6일 (금)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39)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39)

金安國의 分門瘟疫易解方論

“전염병 관리는 국가의 의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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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安國(1478∼1543)은 조선 최고 전염병 치료를 전문으로 했던 儒醫이다. 본래 趙光祖, 奇遵 등과 함께 金宏弼의 문인이었으므로 사림파의 선도자였다.

그는 1501년에 생진과에 합격하고 2년 후에는 별시문과에 합격해 승정원의 박사, 부수찬, 부교리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로서의 길을 달렸다. 그가 일반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실천적인 성리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면서부터다.

그는 이때 각 향교에 『小學』을 권하고, 『農書諺解』, 『蠶書諺解』, 『二倫行實圖諺解』, 『呂氏鄕約諺解』, 『正俗諺解』 등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을 위한 한글판 언해서를 출간하고,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을 줄 『辟瘟方』, 『瘡疹方』 등의 醫書들을 간행해 널리 보급했다. 비록 그가 기묘사화로 파직돼 잠시 경기도 이천으로 가서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중앙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1542년 함경도에서 瘟疫이 크게 유행하자 왕명을 받아 朴世擧, 文世璉, 柳之蕃, 李倜, 鄭樞, 洪世河 등과 함께 瘟疫에 대해 나온 여러 醫書 내용 가운데 이용하기 쉬운 처방들과 상비약들을 중심으로 『分門瘟疫易解方』을 편찬했다. 『分門瘟疫易解方』은 1525년에 편찬된 『簡易辟瘟方』의 60여개의 처방에 40여개의 처방을 첨가하고 이를 鎭禳, 不相傳染, 服藥, 勞服 등 4門으로 나누고, 여기에 藥名과 採取法을 첨가하고 언해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分門瘟疫易解方』의 서문은 현재 남아있는 서적이 온전하지 않아서 온전한 것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의고전명저총서(http://jisik.kiom.re.kr/)에 나온 것을 기준으로 필자의 번역을 소개한다.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운 부분은 생략했다.



“우리 聖上께서 즉위한 후 37년(중종 37, 서기 1542년)에 歲氣가 흘러 운행함을 만나서 癘疫이 치성되어 일어나 모든 八道에 두루 퍼졌다. 성상께서 측은하게 생각하셔 나누어 醫員을 파견하고 처방을 고찰하고 약을 제조하여 구료하도록 명하셨다. 또한 궁벽한 마을과 후미진 시골에 의학이 두루 미치지 못하고 백성들로 병에 걸린 이들이 치료하여 구제해낼 처방들을 이해하지 못하여 비명횡사하는 근심이 있을까 염려하셔서 이전에 있었던 『簡易辟瘟方』과 두 방서를 베껴서 기록하도록 하였다. …모아서 새로운 방서를 만들어 인쇄하여 中外로 널리 퍼지도록 하였다. 백성들의 많은 집들에 두어서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하였다. 병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미리 물리치고, 이미 일어난 후에는 구제하도록 하여 병이 없어 仁壽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기약하였다. 臣 金安國은 진실로 임금님의 뜻을 받들어 총괄을 하였다. 轉下醫司行護軍臣 朴世擧, 行司猛臣 洪沈, 率內醫院正臣 文世璉, 直長臣 柳之蕃, 典醫監前僉正臣 李倜, 前直長臣 鄭樞, 惠民署前直長臣 洪世河 등이 담당하여 처방을 모으고, 곁으로 모든 책들을 수집하여 처방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취하였고 약은 쉽게 갖출만한 것을 취하였다. 옛 것에서는 60여개의 처방을 베껴서 40여 처방들을 첨가해 집어넣어 四門으로 나누었다. 鎭禳門을 제일 앞에 두었고 不相傳染門을 다음에 두었고, 服藥門을 다음으로 하였고, 勞復門을 다음으로 하였다. 이어서 藥名과 採法을 모두 諺文으로 풀었다.



28-1이에 救癘의 方들이 질서정연하게 나뉘어 밝혀졌으니 비록 우매한 지아비나 우매한 지어미라도 가히 다 이해해서 알 수 있게 되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잘 써서 올리니 分門瘟疫易解方이라는 책이름을 내리셨다. 臣이 가만히 생각하건데 天地가 運化함에 오직 사물이 생겨나게 하는 것으로 心을 삼는 것이다. 帝王이 하늘을 이어서 왕의 자리에 임하여 그 베푸는 것의 무엇도 仁民愛物의 政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의학을 제정하여 만물의 생명을 구하여 살리는 것이 관련된 바가 더욱 간절한 것이다. 더구나 모든 병 가운데 癘疫이 일어나 훈증하여 전염되어 치성해져 한 집안 한 마을에 퍼져가 멀고 가까운 곳 모두에서 비명에 죽어나가서 가문이 멸문되는 것이 서로 이어져 독이 되는 것이다. 가장 삼가 말하기도 참람하고 애통스럽다고 할만하다. 聖上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에 이르러 진실로 천지의 만물을 낳는 마음을 체득하셔서… 진실로 능히 성상의 지극한 사랑의 政事를 체득하여 마음을 다하여 인쇄하여 길이 흘러 퍼지는 것을 기약한다면 즉 사람을 살리는 선함이 또한 이에 응하여 하늘을 감동시켜서 아울러 그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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