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한의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기사입력 2026.06.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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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면서도 한의학의 전문성과
    인간적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미래형 한의사 양성”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5

    한상윤 교수님(새 사진).jpg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전공의 교수님들과 담소를 나누던 시간, 우연히 AI가 대화의 주제가 됐다. 사회의 많은 분야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 AI가 이렇게 발전하면 나중에 한의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잠시 웃으며 대답을 미뤘지만, 그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것은 한 사람의 궁금증이 아니라, 지금 한의학 교육이 마주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AI가 무엇을 대체할 것인가”를 묻곤 한다. 그러나 교육자의 자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AI가 보편화될수록, 사람인 한의사에게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일 것이다. 


    AI가 정교해질수록, 임상추론 능력 중요


      암기한 지식의 양이나 정보를 빠르게 찾는 능력은 점차 그 가치가 줄어들 것이다.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AI가 제시한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그 결과를 환자에게 책임 있게 적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정보 탐색이 기계의 몫으로 넘어갈수록, 기계가 끝내 대신할 수 없는 역량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임상추론, 관계, 그리고 해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이다. 최근 의학교육에서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보다 임상추론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강조하고 있다. 진단은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 속에서 가능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가장 타당한 판단에 도달하는 과정인데, AI는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답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미래의 한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며,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때로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그럴듯한 답을 의심하고 수정하거나 뒤집을 줄도 알아야 한다.


      AI를 활용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학생이 사고의 과정을 통째로 AI에 위임한 채 결론만 받아 적는 습관에 길들여지는 일이다. 스스로 추론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AI의 오류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AI가 정교해질수록, 그 출력을 검증하고 환자에게 책임 있게 적용하는 임상추론 능력은 더욱 결정적인 역량이 될 것이다.


      둘째는 관계다.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처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고 느끼고,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신뢰를 가질 때 더 높은 수준의 치료가 이루어질 것이다. 치료적 관계 자체가 하나의 처방인 셈이다.


    인간적 역량과 AI 리터러시는 상호 보완 개념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환자를 질병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맥락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아 왔다. 환자의 몸과 마음, 생활환경과 정서적 상태를 함께 살피려는 시도는 한의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점에서 치료적 관계는 단순한 친절이나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에 떠는 환자의 표정을 읽거나, 말 사이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알아채거나,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공감과 의사소통, 전문직업성과 윤리는 AI 시대에 부차적인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는 핵심 역량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신뢰야말로, 환자가 다시 한 사람의 한의사를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셋째는 해석이다. 환자가 “요즘 기운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단순한 피로인지, 우울의 신호인지, 기허(氣虛)의 표현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읽어 내는 작업이다. 


      AI는 데이터를 정보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바로 이 환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이해로 끌어올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한의학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통합적 사고와 맥락적 이해는 바로 이러한 해석 능력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의미를 읽어 내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역량이 중요하다는 말이, 한의사가 AI에 무지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생성형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질문을 설계하며, 그 결과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의료 AI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는 이제 필수 역량이 되었다. 인간적 역량과 AI 리터러시는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미래형 한의사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AI가 한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한의사가 그렇지 못한 한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량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미래의 한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교육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AI 튜터는 학생 개인의 수준에 맞춘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AI 환자는 표준화 환자 운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AI 기반 피드백과 AI를 활용한 임상술기평가는 부족한 실습 기회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의학 지식의 구조화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변증 체계의 표준화, 임상 데이터의 구조화, 교육 콘텐츠의 체계적 정리는 AI 시대 한의학교육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성과를 명확히 하고, 교육 자료와 평가 결과를 축적·분석하며,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상윤 교수(AI 생성 이미지).png
    AI 생성 이미지

     


    우리는 AI를 한의학에 적용할 것인가?


      ‘우리는 AI를 한의학에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한의학적 사고를 AI에 반영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도 남는다. 전자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의 논의는 전자에 치우쳐 진행돼 온 듯하다. 이제는 한의학의 정체성과 관련된 후자의 질문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변증과 통합적 사고라는 한의학 고유의 추론 방식을 AI 속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AI 시대에 한의학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AI 시대 한의학 교육의 목표는 AI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있지 않다. AI와 협력하여 더 나은 진료를 수행하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면서도 한의학의 전문성과 인간적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미래형 한의사를 양성하는 데 있다. 바로 AI와 경쟁하여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끝내 해내지 못하는 일을 더 깊고, 사람답게 해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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