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醫學入門』 연구의 전통을 이어갑시다”
1970년 시작된 『醫學入門』 번역사업

[한의신문] 1970년 1월15일 한의사 단체인 漢方醫友會에서 한의학 고전 번역사업의 일환으로서 『醫學入門』 번역 작업을 시작한다.
이날 이사회가 개최돼 임원진이 당시로서는 거금인 200만원을 각출하는 한편 『醫學入門』 번역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위원장 李炳幸 先生은 고전 번역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회사를 했고, 趙錫奉 會長은 실제적인 발전사업인 번역사업을 착수하게 된 것을 경하한다고 격려사를 했다.
이날 꾸려진 번역위원은 다음과 같다. 학술부장 蔡仁植, 운영위원장 崔鴻銓, 학술위원회 부위원장 李翼淳, 번역위원장 鄭福鉉, 번역위원 鄭福鉉, 蔡仁植, 安秉國, 李昌彬, 金東明, 李聖宿, 申佶求, 李炳幸.
1970년 4월15일자 『한의사협보』에는 편집위원장 李炳幸 先生의 ‘『의학입문』 번역과 이에 따른 상황 보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1. 번역사업의 목적 2. 의학입문 번역 위원회 설치(창립시기 및 장소, 협의사항, 윤문부 설치, 소요경비, 번역제정위원회 설치, 월례회) 3. 의학입문을 번역하는 이유 4. 번역기금 조성 계획 5. 도서실 설치 계획 등의 순서로 정리하고 있다.
같은 해 7월23일에 제7회 월례회를 개최하면서 당시 『醫學入門』 번역이 55% 완성되었음이 보고되고 있다. 이 때 연내에 출판할 것을 목표로 강력하게 실행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같은 해 12월2일 자금의 부족으로 인해 『醫學入門』 번역사업은 다시 암초를 만나고 만다. 이에 위원장 李炳幸 先生은 자신의 출간 예정인 『鍼道源流重磨』 판매에서 생긴 수익금을 투자해서 번역 자금으로 충당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鍼道源流重磨』 관련 강의를 계속 이어갈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1971년 6월26일이 되면 趙錫奉 會長이 개최한 임원회의에서 李炳幸의 『鍼道源流重磨』 1000부를 출판해서 이를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 수익금으로 번역비를 충당하는 방안으로 결정했다.
1971년 10월14일 의학입문번역위원회를 개최해 『醫學入門』의 번역이 완료단계에 가까워와서 崇文社에서 5〜6권의 분량으로 인쇄에 들어가는 것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00부 한정판으로 해서 5권 한질로 만드는 것을 결정했다.

아울러 이후에 『內經』 번역사업을 착수할 것도 의결했다. 이어서 같은 해 12월15일 출판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다시 1972년 1월에 다시 7권 1질로 분량을 증가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3월 중 인쇄를 완료해 배포할 것을 결정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출판을 완료, 崇文社에서 출판된 『國譯編註醫學入門』은 全六卷 및 附錄으로 구성되어 있고, 초판인쇄일이 1974년 9월30일, 초판발행일이 1974년 10월10일로 적혀 있다. 가격은 60000원으로 붙어 있다. 그리고 李梴 編纂, 蔡仁植, 安秉國, 李炳幸 共譯, 발행자 韓鏞善이라고 쓰여 있다.
『醫學入門』의 번역을 주력사업으로 꼽아 5년여의 노력 끝에 이루어내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였다. 한의계의 대형 학회였던 한방의우회에서 당시 주력 연구사업으로 『의학입문』 번역을 완성한 것은 한국에서 이 책의 연구 전통이 이어져 결실을 맺는 의미를 띤다.
『의학입문』은 조선 고종시기 제정된 법전인 『大典會通』(1865년 제정)에 의학 과거시험 과목에 올라있을 만큼 한국에서 중요한 의서로 취급되었다. 조선시기 왕실 전의를 지냈던 金永勳(1882〜1974)도 한국에서의 『醫學入門』 學派의 중요 인물로 근현대 한의학을 선도하여 후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