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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7일 (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72)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72)

“훌륭한 교육이 우수한 한의사를 양성한다”



1937년 崔健熙 先生의 醫生講習所 시절 회상



kni-web[한의신문] 崔健熙 先生(1916~?)은 일제강점기부터 한의사로 활동을 시작해 천일약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한약업계에 투신, 대한한약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67년 12월30일자 『한의사협보』(훗날 한의신문) 창간호에 ‘現代로 向하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한의계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이 글에서 한의계가 단결하여 현대화의 방안을 마련하자고 역설했다.



崔健熙 先生은 1991년 3월 『韓藥八十年 - 德岩 崔健熙 自傳』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판해 내놓았다. 이 자서전을 보면 그의 생애에 대해 소상히 적고 있다.



이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1916년 서울 묘동에서 출생해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동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醫生講習所에 제1기로 입학하여 수학한 후 의생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53년 주식회사 天一藥房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고, 1954년에는 서울시한약협회 이사에 피선됐다. 1955년 한국한약수출입조합이 창립되면서 이사에 피선됐고, 1958년 주식회사 天一藥房을 해산하고, 천일약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한한약협회 이사에 피선됐다.



아래에 『韓藥八十年 - 德岩 崔健熙 自傳』에 나오는 醫生講習所 시절의 추억을 그의 목소리로 정리한다.



2146-30-1일제는 우리나라를 합방한 후 조선을 개화시킨다는 미명 아래 조선의 모든 고유 전통을 점진적으로 파괴하고 일본화시키려고 획책하고 있었다. 그 중에 한의학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그들의 흉계를 표면화시키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일제는 한의학에 선심을 쓰듯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 발표하였다. 그 첫째가 醫生에게 限地醫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이 조치 역시 한의학을 중요시해서가 아니라 한의학에 대한 압박에서 파생된 일반 백성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한의학에 대한 탄압책으로 불만이 고조될 것을 우려한 총독부는 경기도청에 醫生講習所를 설치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학생을 모집하는 공고를 내기에 이르게 된다.

제1회 의생강습소에 합격한 동기생들은 32명이었고, 모두 훌륭한 의원이 되겠다는 의욕에 넘쳐 있었다. 강습소에서는 양방과 한방을 모두 교육시켰는데, 양방 부문에는 병리학, 해부학, 진단학, 전염병학 등을 강의하였다. 한의학 부문에는 『東醫寶鑑』에 뿌리를 둔 內景學, 外形學, 臟腑學, 雜病, 本草學 등을 배웠다. 의생강습소의 교수는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교수는 일본인 니시나가(西中), 아마기시(天崖), 한국인으로는 金永勳, 田光玉, 申佶求 교수 외 여러분이었다.

전광옥 교수는 田錫鵬이라는 자제를 두었는데, 田錫鵬은 그 부친으로부터 한의학을 배우는 한편 의생강습소 2기를 졸업해 의생면허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本草學을 강의한 신길구 교수는 『申氏本草學』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했으나 뜻한 바가 있어서 본초학 연구에 몰두하여 한의약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김영훈 교수는 『東醫寶鑑』을 강의하였는데, 그 강의내용이 매우 흥미진진했던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같이 명교수들의 명강의를 듣다보니 학생들의 의술에 대한 실력이 날로 향상되어 갔다. 더구나 내(최건희) 경우는 부친이 한약방을 경영하고 있어서 강습소에서 배운 이론을 부친을 보조하면서 실제로 체험할 수 있었기에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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