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1년 발표된 金東匹 先生의 「病證에 依한 舍巖鍼灸의 運用」
1981년 『대한한의학회지』10월호에는 부산 서림한의원 원장인 金東匹 先生(1925〜?)의 논문 「病證에 依한 舍巖鍼灸의 運用」이 게재되어 있다.
金東匹 先生은 1969년에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후 부산에서 서림한의원을 개원하여 舍巖鍼法硏究에 두각을 나타내었던 한의학자이다. 정유옹의 연구(「舍岩鍼法의 發展과 海外傳播過程 硏究」, 경희대 한의대 박사학위논문, 2013)에 의하면, 金東匹은 李在元의 제자였다. 李在元의 학술을 이어 받으면서도 발전시켰다. 金東匹은 1968년 12월부터 1969년 1월의 약 2개월간 거제군 동부면 일대를 순회하면서 새로운 처방 구성이란 목적에 약 1000명의 환자를 임상하고 다양한 처방 운영을 시도하였고, 그 후에도 6000여명의 임상을 통하여 ‘사암음양오향침구학과 그 운용법’을 1972년 12월 호 ‘大韓韓醫學會誌’에 발표하였다.
논문 「病證에 依한 舍巖鍼灸의 運用」에서는 舍巖鍼灸法을 病證에 따라 운용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병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만이 치료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높이는 要訣이 되는 것이며, 특히 舍巖鍼法의 운용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의 과정이라고 이 논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운용의 예 하나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一般雜病에서 脈沈, 肝系熱일 때에 그 病證은 ‘陽衰陰盛, 肝系熱證’이며, 이 때에 사암침의 치방은 ‘通谷, 俠谿 補, 少府, 行間 瀉’가 적응할 것이며, 또한 脈浮하고 脾系가 實할 때에는 그 病證은 ‘陰衰陽盛, 脾系實證’이며, 그 때의 치방으로는 ‘大敦, 隱白 補, 商陽, 兌 瀉’가 適應無違할 것이다. 그리고 表裏內外의 病變에 대하여는 原穴, 絡穴, 兪穴, 募穴, 其他를 取捨選穴 補瀉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治驗例 두 개를 소개하고 있다.
① 하○○. 남자 26세. 병증은 陽衰陰盛 脾系實證. 병명은 神經症. 증상은 頭痛, 眩暈, 口乾, 心悸, 氣息急, 不安, 不眠, 不欲食, 四肢厥冷. 모 대학에 재학중 육군에 입대하여 소정의 연한의 복무를 끝내고 복교하여 면학중 모종의 不任意之事 로 약1년전에 발병화여 현재 휴학중이다. 81년 6월 1일에 초진하여 침구시술 및 약물의 병용으로 치료개시하여 6월 4일부터 환자의 병증이 호전되어 본인의 의사로서 조기산책을 하게 되고 일년여의 기간을 두고 하루 삼회씩 장기복용하여온 신경안정제를 1일에 한번씩만 복용하면 족하게 되었으며 6월 15일부터는 신경안정제의 복용이 중단되었으며 上記의 모든 증상이 소실 쾌유하였음. 舍巖鍼灸治方은 臨泣 陷谷 補 經渠 商丘 瀉. 약물처방은 不換金正氣散 合 加味溫膽湯.
② 이○○. 남자 10세. 병증은 陽衰陰盛 肝系寒證. 병명은 十二指腸潰瘍. 증상은 嘔吐, 泄瀉, 腹痛, 頭痛, 眩暈, 口乾, 項背强, 氣息急, 四肢厥冷. 모 고등학교 재학중의 운동선수로서 신장 190cm의 거인이며, 약 2개월전에 발병하여 모 병원에 20일정도 입원치료를 받아서 다소 호전되었으나 무리한 운동과 본인의 不攝生으로 재발하여 피골이 상접하였고, 食飮不能의 상태이다. 81년 6월 29일에 초진하여 鍼灸施術 및 약물의 병용으로 7월 3일경에 상기증상이 거의 소실되고 7월 5일경에는 정상적인 식생활로 돌아갔으며 7월 7일에는 학기말고사가 迫頭하여 5일분의 약물만을 투여하고 침치료를 중지하였다. 舍巖鍼灸治方은 陽谷 陽輔 補 陰谷 曲泉 瀉. 약물처방은 保和湯 合 神朮散.
그는 결론에서 “舍巖鍼의 熟達된 運用이 單純한 治療效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施術이 簡便하고 機動的이기에 病證診斷의 適否를 卽席에서 反證할 수 있는 敏捷하고도 確率높은 方便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이 침법의 진단에서의 활용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 1981년 김동필 선생이 ‘대한한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