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사고 발생 시 중재 역할을 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되는 조정신청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실제 개시조차 되지 못하는 비율이 60%에 달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기선 의원은 20일 국정감사에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며 이같이 질타했다.
김기선 의원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는 조정원이 개원된 2년 6개월 동안 3,021건이며 이 중 조정개시조차 되지 못한 건은 1,787건으로 전체의 59.15%로 나타났다.
조정개시조차 되지 못한 1787건 중 의료기관이 조정 절차에 참여를 거부한 건수는 1,298건으로 약 77%를 차지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 1월, 연세세브란스 응급실에서 사망한 전 모 어린이의 경우 유가족이 시술과정과 사망원인 등을 알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했으나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해 신청이 자동 각하됐다.
의료기관은 조정 절차에 참여할 의무가 없어 조정절차에 불응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맹점을 해소하기 위해 오제세 의원이 신청인의 조정신청이 있는 경우 지체없이 절차를 개시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한 바 있다.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도 “조정 개시율이 저조한 이유는 피신청인 부동의 사유 때문”이라며 “의료기관의 참여 거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에 참여하고 싶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되도록 한 조항은 언론중재위원회, 한국소비자원피해구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 등에는 없는 조항으로 중재율이 낮은 주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김명연 의원은 “의료기관에서 참여 동의를 안 하면 개시조차 안 되게 한 현행 법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중재원이 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 취지가 무색한 만큼 한국소비자원으로의 통폐합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재원 의원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한국소비자원보다 직원이 3배나 많고, 예산도 10배나 더 쓰지만, 상담이나 조정건수는 오히려 한국소비자원보다 적다”며 “강제조정이 안 돼 소송지원이나 피해구제 기능도 없어, 의료사고의 보다 전문적인 조정이라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 취지가 무색한 만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한국소비자원으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사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부터 의료상담, 피해구제, 분쟁조정업무를 한국소비자원에 위탁해 왔는데, 의료사고 분쟁을 보다 전문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2012년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두 기관의 업무가 중복되고 새로 설립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분쟁 조정 실적이 좋지 않아, 국민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진의 저조한 조정 참여율, 의협 회장 탓?
의료사고의 전문적인 조정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정작 의료기관의 참여가 저조해 중재원이 폐지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추호경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은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의사들의 의료분쟁 조정 참여가 달라진다”라고 밝혔다.
의료중재원에서 제도의 취지를 의료인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협회장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가 회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추 원장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던 경만호 전 의협회장 당시에는 비교적 적절하게 참여를 했는데, 노환규 전 회장 때는 회원들에게 조정에 참여하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5년간 의료사고 분쟁이 가장 많은 의료기관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학교병원이 40건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서울병원 36건, 분당서울대병원 21건, 부산대학교병원 10건, 서울성모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이 각각 9건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