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경희대 한의대 비상대책위서 만든 『한약분쟁 사건 정리』
1993년부터 1997년에 걸쳐 이어진 ‘한약분쟁’은 한의계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전국 한의과대학 학생회연합(전한련)에서는 연합하여 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유급을 불사하는 투쟁을 강행하여 끝끝내 승리를 쟁취해낼 수 있었다.
이 자료집 편집에 주도적 역할을 한 당시 경희대 한의대 조교 차웅석(현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1996년 10월 23일 쓴 서문에서 “96년 9월초 나는 강연석군으로부터 자료집 초판을 건네받아 94년 박철한, 최가야, 최영진과 같이 교정 및 자료 보충을 하였다. 그리하여 ‘한약분쟁 사건 정리’ 1, 2판을 내게 된 것이다. 막상 작업을 마치고 보니 아쉬운 점도 많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으므로 별 미련은 없을 듯 싶다”라고 감회를 밝히고 있다.
‘일러두기’를 살펴보니 초판을 보충, 교정한 내용을 정리하고 1, 2판에 새로 추가된 내용들을 밝혀두고 있다.
이 자료집은 경희한의대 96년 비대위 자료국 제5팀장 강연석(현 원광대 한의대 교수)의 ‘사건 정리, 글에 대한 안내 - 초판 서문 -’에서 한약분쟁의 현상과 본질, 투쟁의 경과, 학문적 논쟁, 약사법개정추진위원회, 93년 경실련 중재, 현행 한약사제도의 문제점, 94년 한약조제지침서, 95년 약대내 한약학과 설치 과정, 한의약발전협의회, 헌법소원, 한약조제시험, 약계의 주장, 한의계의 주장 등을 이 자료집에서 정리하고 있다고 요약하고 있다.
이어서 자료 정리가 이어진다. 강연석, 박명원, 윤상순, 최가야, 박철한이 1996년 6월 14일 작성한 ‘한약분쟁의 현상과 본질 - 총론’, 강연석, 최가야가 작성한 ‘한약분쟁 일지 (93~96)’, 류수민, 강연석, 이지은, 김건호, 문학진이 1996년 7월 1일 작성한 ‘약사가 한약을 지을 수 없는 이유 - 학문적 문제’, 강연석, 박명원이 1996년 6월 14일 작성한 ‘한의약법을 제정하라 - 약사법의 문제’, 최가야가 1996년 10월 12일 작성한 ‘약사법 개정 추진 위원회’, 윤상순, 박명원이 1996년 6월 19일 작성한 ‘93년 경실련의 한약분쟁 중재’, 신동엽, 김승현, 김성훈, 강연석, 최가야가 1996년 6월 26일 작성한 ‘한약사 제도에 관하여’, 한창우, 조성욱, 강연석, 최가야가 1996년 6월 26일 작성한 ‘한약 조제 지침서 파동’, 김화영, 박민정, 강연석, 최가야, 박철한 등이 1996년 6월 21일 작성한 ‘약대내 한약학과 설치 과정’, 박철한이 1996년 7월 1일 작성한 ‘한의약 발전 협의회’, 강연석, 최가야, 김수현이 1996년 6월 13일 작성한 ‘헌법 소원에 관하여’, 이연희, 이규진, 박명원 등이 1996년 6월 24일 작성한 ‘한약 조제 시험’, 최영진, 이근미, 최가야 등이 1996년 9월 10일 작성한 ‘96년 정부의 한의학 관련 발표’, 박철한이 1996년 10월 12일 작성한 ‘한의대생의 유급, 제적’, 최영진이 1996년 10월 10일 작성한 ‘약계의 주장과 그 이유’, 강연석, 최가야가 1996년 6월 20일 작성한 ‘한의계의 주장과 그 이유’ 등이다.
모두 작성된 날짜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당시의 상황에서 어떤 시점에서의 정리가 상황의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되어 정확한 날짜를 명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희 한의 94 박철한은 다음과 같이 편집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94학번인 내가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고 솔직히 이 책이 얼마나 읽혀질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학업을 포기해가며 매달린 이 사건을 정리하여 알려줄 수 있는 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온다는 것. 나는 이것만으로 만족한다. 드디어 끝났다. 이 큰일을 시작한 연석이형과 마무리한 영진이에게 감사하며…”
<- 1996년 간행된 한약분쟁사건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