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 편향적 질문으로 답변 유도… “중립성 훼손 심각”
말로는 ‘근거중심’ 뒤로는 ‘여론조작’…한의협, 의협에 객관적인 공동 여론조사 제안
대한의사협회가 실시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 내용이 양방 편향적이고 왜곡된 질문으로 점철돼 구설에 올랐다.
앞서 의협은 양방병의원에 내원한 18세 이상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1월 15일부터 1월 26일까지 10일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나 모집단의 정의, 표본의 대표성, 자료수집방식 등 조사설계와 조사내용까지 중립성이 훼손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외부 여론조사기관의 평가다.
양방병원 방문자 대상… 대표성 낮은 표본추출
여론조사의 특성상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모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편의상 표본을 추출해 조사를 실시한다. 국민 전체를 일일이 전수조사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협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모집단 자체가 양방의료기관 방문자로 한정돼 있다. 표본도 오는 사람 중 임의로 추출했다. 표본은 모집단을 대표하기 위해서 지역별, 성별, 연령별 구성비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추출되어야 하는데 이조차 고려하지 않은 것.
한 여론조사기관은 “양방의료기관에 방문하는 환자들을 아무런 체계 없이 임의대로 추출해 전 국민의 여론을 담기엔 대표성이 매우 낮은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간호사 앞에서 설문조사 작성?
암묵적 강요 여지 있어
이번 설문조사는 양방의료기관에서 간호사 등 근무자가 설문지를 나누어 주고 회수했다. 그런데 양방의료기관은 중립적인 장소가 아닐뿐더러 간호사 등은 객관적인 면접원이라고 볼 수 없다. 환자들은 몸이 불편해 양방병원을 방문했고, 소위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면전에서 상대방에게 주로 좋은 소리를 한다. 환자의 입장이라면 방문한 의료기관의 의도를 파악할 것이고 의도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답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작성된 설문지를 봉투에 넣는 환경이 비밀을 보장하지도 않았을 것.
따라서 이러한 조사의 방식은 객관적인 여론조사의 방식으로 인정될 수 없고 조사에 참여해 답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암묵적인 강요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게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사 참여자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질문 일색
구체적으로 질문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문2. 선생님께서는 현재 대법원 판결 상 한의사가 X-ray, 초음파영상진단장치 등의 현대의료기기를 활용하여 진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한의사의 청력검사기나 안압측정기 사용은 헌법소원에서 승소했을 뿐더러 행정법원에서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러한 현대의료기기는 제외시키고 X-ray와 초음파영상진단장치만 제시하고 현대의료기기라고 총칭하고 있다. 즉 모든 현대의료기기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전체적으로 불법이라고 미리 암시를 주어 불법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하고 조사 참여자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다.
문3. 만약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여 진단 및 처방을 내릴 경우, 그 결과를 안전하다 생각해 신뢰하실 수 있습니까?
현대의료기기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뒤 안전성 평가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앞에서 X-ray, 초음파영상진단장치, 안압측정기 등으로 사전에 정의했지만, 일반인들은 앞의 정의를 무시하고 현대의료기기를 중환자들에게 적용되는 의료기기로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
문4.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으로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불가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건강보험료 인상을 감수하더라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동의하십니까?
이 질문은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연말정산 관련 기사에서 보듯 일반인은 비용 증가에 매우 민감하므로 누구나 비용인상에 대해서는 거부할 것이다. 막연히 비용증가라고 제시할 것이 아니라 ‘의료기기 사용으로 인한 건강보험료 인상이 없다면 동의하십니까?’ 등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문5.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때 우려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의과 대학에서 한의사가 공부하는 교과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또 현대의료기기는 의료기사가 사용하고, 의사가 해석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전적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응답자의 정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
문6. 어떤 의료기관을 더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떤 의료기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병의원이든 한의원이든 현대의료기기를 활용해 국민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므로 질문 취지가 잘못됐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불필요한 양방병의원의 이중진료를 막아 국민과 건보재정의 지출을 줄일 수 있는데도 마치 건강보험료 인상의 요인이 되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누가 봐도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의도의 문항으로 국민과 여론을 호도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공평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하자”며 의사협회에 제안했다.
한의협은 또 “의사협회가 말로는 근거중심을 외치면서 뒤로는 이처럼 편파적이고 엉터리인 조사를 통해 어설프게 여론을 조작하려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게까지 느껴진다”며 “이렇게 해서라도 여론을 조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양의사들의 이런 행동이야 말로 스스로 국민들로부터 고립되게 만드는 것”이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