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적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국민 향한 호소로 시작
단식 중단은 반문명적 행위와 맞서 싸우는 새로운 출발
1월28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대한상공회의소 앞.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과 박완수 수석부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며 읽어내려간 대국민 호소문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자칫 국민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거나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으로 잘못 비춰지지나 않을까 양의계의 각종 도발에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한의협이 보건복지부 권덕철 실장의 ‘한의사의 엑스레이와 초음파 사용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언 직후 복지부 장관 면담을 신청하고 공개질의를 했음에도 복지부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더 이상 복지부에 기대할 것이 없으며 오직 국민에게 호소하는 길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시행규칙의 미비와 왜곡된 판례로 인해 사용을 제한받아온 초음파, 엑스레이라는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시작된 규제개혁이 이익단체의 도를 지나친 갑질, 그리고 이에 굴복한 보건복지부에 의해 그 의미가 변질되어 오히려 우리를 단두대에 올리고 있다”며 “우리 한의사들은 이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국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 호소문에 잘 드러나 있다.
이어 김 회장은 규제기요틴을 발표한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이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를 바라보며 찬 바닥에 자리를 잡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경찰의 퇴거요청 및 단식장 설치 제지로 단식 장소를 한의협 회관 1층 로비로 옮겨 단식을 이어가게 된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보건의약계, 사회 각계 인사들이 단식장을 찾아 김 회장을 격려하고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단식일이 길어지면서 우려와 함께 만류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월1일 한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김 회장의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의료기기 문제를 풀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단식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회원들에게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단식을 중단했던 6일을 넘어선 단식 9일차.
김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인근 한방병원으로 호송돼 치료를 받은 것.
더 이상의 단식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다시 단식장으로 복귀한 김 회장은 단식 12일차 되던 날 단식장을 찾은 회원들에게 “단식을 그만 두라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 이 자리에서 죽어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한의계의 현실이며 이 단식이 한의사이기 이전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대우받기 위한 최소한의 피라고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심정을 털어놨다.
단식 13일째를 맞은 지난 9일.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단식장을 방문해 한의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복지부를 다그쳤고 그 결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주최의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공청회와 정부가 조직해 국회에 보고하는 협의체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던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단식 14일째인 2월10일. 문형표 장관이 직접 단식장을 찾았다.
그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단식을 풀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에 김 회장은 ‘14일간의 단식을 마치며’라는 글과 함께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이 글에서 그는 “더 이상 국민과 한의사회원을 걱정시키지 말고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통한 국민건강수호의 최전선에 다시 서리라 결심했다”며 단식 중단은 반문명적 행위와 맞서 싸우는 새로운 출발임을 강조했다.
긴박하게 흘러온 14일의 단식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