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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0일 (일)

독립운동 속에서 꽃핀 솔표 우황청심원

독립운동 속에서 꽃핀 솔표 우황청심원

박성수 조선무약 창립자···제3·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활동
한약재 운반하며 독립운동가들 기밀문서 전달…‘솔표 우황청심원’ 개발
초대 대한한의사협회 이우룡 회장도 독립운동가와 밀접히 관련

‘솔표 우황청심원’. 한때 집집마다 상비약처럼 두고 먹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친숙했던 이 한약의 역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다.

 

솔표 우황청심원을 개발한 조선무약의 창립자 박성수(朴性洙, 1897~1989) 선생이 한의사이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뒤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독립운동가들의 기밀문서를 전달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박성수 한의사.png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스물세 살의 일송(一松) 박성수 선생은 한성약업사와 대창약업사를 창업하며 약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약업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

 

같은 해 9월 박성수 선생은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실로 일제에 체포됐다. 결국 1년 1개월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의 삶에서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박성수 선생은 다시 약업에 종사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고, 약재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이 주고받는 기밀문서도 그의 손을 통해 전국 각지로 전달됐다.

 

일제의 감시가 이어지던 시절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연락을 주고받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국 각지를 오가야 하는 약재 유통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고, 박성수 선생은 자신의 생업을 독립운동을 돕는 데 활용했다. 한약재를 싣고 전국을 오가는 길이 독립운동가들의 소식을 잇는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의 편지를 나르던 한의사, 조선무약을 세우다 

 

그렇게 약재를 나르고 독립운동가들의 편지를 전달하던 박성수 선생은 1925년 조선무약합자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조선무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약 제약회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솔표’라는 상표 역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박성수 선생은 조선무약을 통해 ‘솔표 우황청심원’과 위장약 ‘위청수’ 등 다양한 한약을 개발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솔표 우황청심원’과 독립운동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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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도 방영됐던 TV 광고 속 우황청심원>

 

하지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돼 1년 1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한약재 사이에 독립운동가들의 편지를 함께 싣고 전국을 누볐던 한의사가 세운 회사에서 탄생한 한약이라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박성수 선생에게 한의약은 단순한 생업만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이어주는 수단이었고, 이후에는 우리 한약을 산업화하는 토대가 됐다.

 

열혈 독립운동 한의사, 광복 후 한의학 지키는 일에 나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되찾는 데 힘을 보탰던 박성수 선생은, 광복 이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약화된 한의학과 한의사제도를 지키는 일에 나섰다.

 

박성수 선생은 한의사협회 결성에 참여하고 대한한의사협회 제3·4대 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1960년대 한의사제도를 둘러싼 존폐 논란 속에서 한의사제도를 지키고 한의사의 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한한의사협회 초창기 회장단에 이어진 독립운동의 인연 

 

대한한의사협회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회장들의 삶에도 독립운동이라는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제1·2대 이우룡 회장은 만주에서 민족교육을 펼치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 이원발 선생의 아들이었고, 뒤를 이어 제3·4대 회장을 맡은 박성수 회장은 자신이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해 1년 1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들의 편지를 나르던 한의사가 만든 ‘솔표 우황청심원’,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이끌었던 대한한의사협회. 한의사들은 민족의학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직접 행동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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