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書習讀의 제도를 부활시켜 의학을 부흥시키자”
成海應(1760〜1839)의 醫書習讀論

[한의신문] 成海應(1760〜1839)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그는 1783년(정조 7) 진사시에 합격했고, 1788년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내각에 봉직하면서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고 각종 서적을 광범위하게 섭렵, 학문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의 문집으로써 『硏經齋全集』이 있다. 이 문집 外集 卷五十六에는 筆記類의 蘭室譚叢에 ‘醫學習讀’이라는 제목의 아래와 같은 글이 발견된다.
“개국 초기에는 의학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士族 가운데 나이가 어리면서 총명하고 영리한 자들을 醫書習讀官으로 위촉하여 능히 모든 의서들에 달통하게 되면 顯官을 주었고 生員進士로 선발하였고 習讀官敎授로 삼았다. 벼슬은 점수를 기준으로 계산하였고, 成均館試에 나아가는 것도 허락하였다. 四孟朔에 取才하였다. 봄에는 『纂圖脉』, 『瘡疹集』,『直指方』, 여름에는 『救急方』,『婦人大全』,『得効方』, 가을에는 『胎産集要』,『銅人經』,『和劑方』, 겨울에는 『本草』,『資生經』,『十四經發揮』 등을 分屬하여 取才하였다. 그러므로 北牕 等과 같은 모든 賢人들이 또한 모두 이에 참여하였다. 지금은 즉 의술을 賤士들만 전문으로 삼고 있어 무릇 익히는 자들이 드물게 되었다. (國初。最重醫學。擇士族年少聡敏者。屬習讀官。能盡通諸書。授顯官。選生員進士。爲習讀官敎授。計仕準圓點。許赴館試。四孟朔取才。春則纂圖脉瘡疹集,直指方。夏則救急方,婦人大全,得効方。秋則胎産集要,銅人經,和劑方。冬則本艸,資生經,十四經發揮。分屬取才。故如北牕等諸賢。亦皆與此。今則技專於賤士。夫罕有習者。)”(필자의 번역)
위의 글에서 말하는 醫書習讀官은 조선 초기 의학교육과 의학연구를 위해 따로 선발한 사람들을 말한다. 士族 출신으로 젊고 총명한 관리를 뽑아 醫書를 習讀케 한 제도이다.
世宗 때부터 三醫司 등에서 醫學提調, 儒醫敎授官 등을 두어 의서를 습독시켰으며, 世祖 2년(1456년)에 처음으로 習讀廳에 醫書習讀官을 두었다.
典醫監에서 습독의 성적을 평가하여 성적이 우수한 자는 삼의사에 채용하고 더욱 탁월한 자는 顯官을 제수하고 성적이 불량한 자는 그만두게 하였다.
習讀官은 사족 출신이었으므로 습독의 성과가 우수하면 삼의사의 堂上官이나 東西班의 관직에도 임용될 수 있었다(경희대학교 출판국, 『동양의학대사전』, 1999).
계절별로 나누어 取才에 활용한 醫書로서, 봄에는 『纂圖脉』, 『瘡疹集』,『直指方』, 여름에는 『救急方』,『婦人大全』,『得効方』, 가을에는 『胎産集要』,『銅人經』,『和劑方』, 겨울에는 『本草』,『資生經』,『十四經發揮』 등을 分屬하여 取才하고 있다.

『纂圖脉』은 高陽生이 지은 『纂圖脈訣)』, 『瘡疹集』은 世祖 때 任元濬이 지은 瘡疹에 관한 전문 의서이고, 『直指方』는 송나라 楊士瀛이 1264년에 편찬한 의서로서 내과 잡병의 證治를 중점적으로 소개한 종합 의서이다. 『救急方』은 世祖 때 지어진 구급 의서이다.
『婦人大全』은 송나라 陳自明이 1237년에 편찬한 부인과 전문 의서이다. 『得効方』은 원나라 危亦林의 편찬으로 1345년에 간행된 方書이다. 『胎産集要』는 世宗 16년(1434) 3월에 判典醫監事 盧重禮가 편찬한 婦人科 전문의서인 『胎産要錄』을 말하는 듯하다.
『胎産集要』는 허준의 『諺解胎産集要』를 지칭한 것으로 혼돈한 듯하다. 『和劑方』은 송나라 때 太醫局에서 편집하여 1078년 이후에 초간된 方書로서 일명 『和劑局方』이라고도 한다.
또한 『本草』는 『神農本草經』,『資生經』은 王執中의 『針灸資生經』,『十四經發揮』는 활수의 침구학 전문 서적들이다.
이와 같은 의학서적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서 교육하고 시험을 보아서 醫官으로 등용할 수 있었던 醫書習讀官制度는 成海應의 입장에서는 의학 진흥에 있어서 최고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