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學의 改新을 위해서 교육을 바꾸자”
金東薰의 韓醫學改新論

[한의신문] 1914년 6월24일자 『每日申報』에는 한의사 金東薰의 ‘漢方醫學의 改新’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어 있다.
金東薰(1892∼?)은 1915년 全鮮醫會의 발기인으로서 활동하였으며, 충청남도 및 전라북도 한의학강습소에서 강사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이후 1923년 東西醫學硏究會에서 附屬醫學講習院을 운영하여 후진 양성에 힘쓸 때 金東薰은 金永勳, 李承烈, 李仁宅, 李乙雨, 金海秀 등과 함께 강사로 활동하였다.
아래에 『每日申報』에 게재되어 있는 金東薰의 ‘漢方醫學의 改新’이라는 제목의 글의 全文을 판독하여 全載한다.

“過般當局의 指導로 我醫生一同히 總督府醫院及順化病院을 順次觀覽의 榮을 幸得하야 將來醫學發展上多大한 利益을 取하며 亦一參考的으로 互相講究도 累試하였으나 今日時勢進運의 此機를 當하여 世間生命의 金石같은 機關은 病院外에 無하다 認定하얏노라. 一次觀覽後 我一同의 印象及感想은 唯在於一二뿐 아니라 其硏究範圍에 對한 驚歎은 今玆呶呶를 不提할지라. 但其簡單的 感想一二를 擧하야 玆에 述코져 하노니.
由來朝鮮은 習慣上 迷信이 固有하야 諸般癘疾에 對하야는 擧皆運氣로 歸하고 卜筮符呪其他邪術의 道를 取하야 必히 生命上至大한 危害를 貽케 하며 醫療는 都不相關하야 醫學及製藥의 程道가 殆히 幼稚하고 또 甚히 薄弱함은 吾人의 切切慨歎할 바더니 幸히 新政이 四海에 布沿하는 同時一般 我醫生等도 大造한 惠澤에 浴하야 從前慣習은 一朝에 打破하고 醫學講究上發展을 務圖하며 人民의 思想도 漸次 文明에 向上는 結果로 特長의 感覺力이 進展하야 各各 個人마다 生命의 重大함과 病院의 最要됨을 感 同時 其信仰 熱度는 其極에 達한 現狀이라. 無論某國고 醫學發達을 獎勵敎化야 第一人口增殖과 生命愛好를 根本的爲主로 進行바로다. 同醫院內各科를 順次觀覽새 其設備와 規模의 周密精麗함과 結構의 宏壯함은 一見에 喫驚을 不堪하얏고 第一神岡醫官의 親切案內로 勞苦를 不避고 熱心指導 誠意에 感服하얏으며 我一同의 平生宿抱되었던 엑스光線室을 詳細히 周察한 後 其眞奇한 妙理가 今爲發明함에 對하야는 人間社會에 幸福을 招致하였다 하겠으며 其年以來로 俗稱染病幕이 有하야 間或 疫疾이 罹한자 必히 該幕으로 運送 後 一看護救療의 方法이 無야 畢竟에 蘇生을 不得얏으나 一自順化病院이 設立된 以後 疫疾에 關자 擧皆舁送故로 一般人民은 曾前染病幕으로 認定하고 躊躇不肯 者도 有할뿐外라. 到今余等醫生도 此와 恰似히 判定바더니 今玆實際로 巡覽한 則其內外科部의 設備와 患者收容上極盡救療의 方法은 一毫도 差異가 無을 今乃覺得엿도다. 今日醫生된 資格으로 見學且參考에 是當케은 無前한 光榮이오. 稀有한 幸福으로 感服바로쇼이다. 我醫師도 漸次時期를 對하야 將來發踐的으로 醫學講習所에 投入하야 將來醫師資格을 修養야 朝鮮의 醫業制度를 刷新發展키로 目下期待中이라 云云.”
위의 글은 몇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현대적 의료 장비를 갖춘 의료 기관의 설립을 희구하는 한의사들의 열망이 베어있다. 이를 위해서 한의사들은 順化醫院을 탐방하여 현대적 의료기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현대적 종합병원의 체계를 한의학에 접목시키고자 하고 있다.
둘째, 전염병에 걸렸을 때 환자를 격리시켜 입원을 시켜 치료가 될 때까지 간병하는 의료체계의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셋째, 한의학 교육에 현대적 의료체계에 대한 내용이 과감하게 도입되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 당시 醫學講習所라는 한의사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운영되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이것은 매우 시기적절한 판단이었음에 틀립없을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