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의약진흥원 정책본부 세계화센터 최서란 선임연구원
한국한의약진흥원 정책본부 세계화센터 최서란 선임연구원
[한의신문] 필자는 지난 4월 7일부터 9일까지 프랑스 리옹 국제회의센터에서 열린 ‘제1회 세계보건기구 글로벌 협력센터 포럼(Global Forum of WHO Collaborating Centres)’에 참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처음으로 전 세계 협력센터를 한자리에 모은 이번 포럼은 ‘협력의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자리였다. 이 글에서는 리옹 현장에서 논의된 핵심 메시지와, 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새로운 협력의 방향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One Health Summit :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One Health 개념을 글로벌 차원에서 공유
세계 보건의 날(4월 7일)에 맞춰 프랑시 리옹에서 열린 ‘고위급 원헬스 정상회의(High-Level One Health Summit)’에는 WHO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20여 개국 정상 및 장관급 인사가 참석했다.
원헬스(One Health)는 보건, 농업, 환경 등 그동안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뤄지던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효과적으로 관리하자는 접근 방식이다. 이는 감염병의 상당수가 동물에서 기원되고, 환경 변화가 인간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식품과 항생제 문제 역시 보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 자리에서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감염병,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과 같은 위협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건 분야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해 One Health 접근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국가 수준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WHO의 조정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과학이 행동을 이끌어야 하고 협력이 힘이 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과학에 기반한 예방과 국가 간·분야 간 협력의 재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활동’에서 ‘프로그램 참여’로: 협력의 구조가 바뀌다
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WHO 협력센터 포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협력센터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려는 흐름이었다.
WHO는 협력센터가 단순히 개별 과제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WHO 프로그램의 설계와 이행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일부(part of the programme)’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활동(activity)’ 중심에서 ‘프로그램 참여(programmatic engagement)’ 중심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그동안 연구 수행, 교육 제공, 기술 지원 등 개별 활동 단위에 머물렀던 WHO 협력센터의 역할이 앞으로는 WHO의 중장기 전략과 직접 연결된 프로그램 단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각 협력센터가 모든 것을 다 하려 하기 보다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 협력의 핵심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역 불균형과 협력센터 네트워크의 확장
두 번째 세션에서는 협력센터의 지역적 불균형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현재 많은 협력센터가 고소득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질병 부담이 높은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협력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대해 WHO는 협력센터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다국가 협력 모델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일 기관이 개별 국가 단위에서 활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협력센터가 함께 참여해 지역 단위의 역량을 구축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병원 기반 협력센터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WHO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적용하고 이를 통해 지역 역량을 강화하는 모델이 소개됐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보건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WHO 우선순위(2025-2028)와 협력센터 업무의 정렬(alignment)
WHO의 최상위 전략인 GPW14(2025년~2028년)는 모든 사람의 건강과 웰빙을 증진·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이 전략과 협력센터의 활동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WHO는 감염병 대응, 비감염성 질환 관리, 보건 시스템 강화, 허위정보 대응 등 다양한 우선순위를 제시하며, 협력센터가 이러한 흐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country impact pathway’라는 개념이 강조됐다. 이는 글로벌 논의가 실제 국가 정책과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는 실행 경로를 의미한다. 협력센터는 이 과정에서 연구를 정책으로 연결하고, 정책을 다시 현장에 적용하는 ‘중간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허위정보(misinformation) 대응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 전달과 소통은 앞으로 협력센터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강조됐다.
One Health와 전통의학: 통합적 접근의 가능성
포럼과 함께 진행된 논의에서는 One Health와 전통의학의 연계 가능성도 언급됐다.
전통의학은 예방 중심의 접근과 생활 기반 관리,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One Health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논의 과정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행동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국가 간 비교하는 연구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이는 문화적·환경적 요인이 건강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접근으로 공감을 얻었다.
‘협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
리옹 포럼은 협력센터의 역할이 단순히 WHO가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 수행을 넘어, 공동의 목표를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포럼을 마무리하며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WHO와 협력센터의 관계가 더 이상 보고와 행정 중심의 관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공동 기획과 공동 책임을 기반으로 한 실질적이고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또한 협력센터 간 네트워크 확대와 지역 간 불균형 해소, 그리고 WHO와의 양방향 소통을 통해 실제 국가 수준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도 핵심 메시지로 제시됐다.
전통의학에 대한 인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전통의학은 더 이상 경험에 의존하는 영역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글로벌 보건에 기여하는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이번 세계 보건의 날을 맞이해 제시된 메시지,‘Stand with Science’는 전통의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통의학 역시 검증 가능하고, 설명 가능하며, 재현 가능한 지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WHO 전통의학 협력센터로서 한국한의약진흥원의 역할
한국한의약진흥원은 WHO 전통의학 협력센터로서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째는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 RWD)를 기반으로 전통의학의 근거를 축적하는 것이다. 실제 임상과 국민 건강 데이터를 바탕으로 효과와 활용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WHO와 공유함으로써 정책과 가이드라인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둘째는 한약을 포함한 전통의약품의 품질관리와 표준화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시험·분석, 기준 설정,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전통의학 기반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Stand with Science’라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로 효과를 설명하고, 표준으로 품질을 확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결국 전통의학 협력센터의 역할은 전통과 과학을 연결하는 데 있다.
경험을 근거로 전환하고, 지역의 지식을 글로벌 기준으로 확장하며, 이를 통해 각국 보건 시스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리옹 포럼은 한국한의약진흥원을 비롯한 WHO 협력센터들이 WHO와의 관계를 ‘지식과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의학 품질관리, 연구, 정책 지원 등 기존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진흥원은 WHO의 글로벌 전통의학 프로그램 안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통의학이 글로벌 보건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자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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