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대부분 피로·근골격계·정신질환 호소…한의과 설치 희망 84%
한의협 “한의진료과 설치 통한 정상 개원 이뤄져야”
[한의신문] 화재 등 재난현장에서 항상 위험에 노출된 소방관들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지만 정작 그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국립소방병원은 개원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국립소방병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사’가 아닌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한의진료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한의계는 물론 소방관 당사자와 국회·충북도의회로부터 국립소방병원에서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한의진료과를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충북 음성군에 들어서는 국립소방병원은 24개 진료과목, 300병상 이상 규모로 설계된 지역 거점 공공병원으로, 소방복합치유센터에서 ‘국립소방병원 설립법’ 통과를 계기로 승격됐으나 진료과목 중 한의진료과는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12월 개설 예정인 국립소방병원은 의사인력 충원 실패로 개원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을 맡아 2026년 3월 외래 시범진료, 6월 정식 개원을 목표로 했으나 의사 인력을 채우지 못한 채 계획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
병원 개설 허가를 위해서는 최소 7개 진료분과에 의사 7명 이상 확보가 필수 요건이지만 채용 공고 결과, 의사들은 지방이라는 입지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근무 여건을 이유로 들며 지원을 꺼리고 있어 인력 유치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 ‘한의과 미설치’에 ‘개원 무산’까지 국감에서 드러난 ‘허점’
먼저 지난달 15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립소방병원 내 한의진료과 부재 문제가 제기됐다.
박정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에게 “소방공무원들은 직무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과 정신적 트라우마가 많고, 국립소방병원이 고령층이 많은 충북에 위치한 만큼 지역 특성을 고려한 한의진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공감한 김승룡 직무대행은 “한의과 설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으나 이후 개원마저 흔들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서울대병원이 국회에 “개원에 차질이 없다”고 보고한 것과 달리 뒤늦게 “의사 7명 중 2명 마저 확보 불가하다”는 입장을 번복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행안위 종합국정감사에선 이광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립소방병원 의사인력 미확보로 인한 개원 무산 위기를 우려하며 “서울대병원과 소방청의 직무유기가 소방대원들과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 소방관 주요 호소 증상과 다빈도 한의진료 일치…84% 한의과 설치 희망
소방공무원은 현장 업무 특성으로 인해 타 직종보다 근골격계·정신질환·피로성 질환의 발생률이 높은데, ‘소방공무원의 직무 관련 질환 조사(’13년)’에 따르면 주요 질환은 △근골격계 질환 △전신피로 △두통 △수면장애 △소화불량 △우울 및 불안장애 순으로 나타났다.
한의의료기관 건강보험 외래 청구 기준 다빈도 질환 상위 10개 중 8개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는 침·추나·한약 치료가 이미 근골격계 질환의 대표적 치료법임을 보여준다.
화재 진압 중 발생하는 화상 후유증에 대해 한의학적 치료는 부작용 없이 피부재생을 촉진, 미국화상학회 국제학술지에서도 침·한약연고 효과가 입증된 바 있으며,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환자에게 침 치료를 병행할 경우 약물치료 단독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부작용이 적다는 메타분석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전국 23개 시도의 소방공무원 8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소방공무원 84%가 국립소방병원 내 한의과 설치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86%는 “한의과가 설치될 경우 치료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국립소방병원에 한의과 설치를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선 △기존 한의치료 경험 △한·양방 병행 치료 시 효과성 기대 △기존 양방치료의 아쉬움 △소방공무원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 진료 순으로 응답했다.
이는 곧 사업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됐는데, 서울특별시한의사회가 서울소방재난본부와 함께 추진 중인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한방의료서비스’는 지난해 10개 소방서에서 시범 운영된 데 이어 올해 15개 소방서로 확대되고, 예산도 2억 2000만 원으로 증액될 만큼 소방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업에선 목·허리·어깨 통증, 두통, 소화불량 등 근골격계·내과질환을 중심으로, 침·부항·뜸·추나 치료 등이 진행됐다. 지난 2023년 첫 사업 결과 총 714명이 참여, 1572회의 진료가 이뤄는데 △통증지수(NRS) 85% 감소(82%는 2점 이상 개선) △진료만족도 평균 9.16점 △재이용 의향은 9.37점에 달했다.
사업에 참여한 조철수 서울강서소방서 행정과장은 “하루 5~10회씩 출동, 업무 특성상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슬관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해 장기간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진료를 받아왔으나 차도가 없었던 와중 침·부항 치료, 추나요법뿐만 아니라 운동요법 지도까지 받아 크게 다시 희망을 찾게 됐다”면서 “전국적으로 소방 공무원 대상 한의진료가 확대되길 바라며, 이에 대한 거점으로 국립소방병원에 한의과가 설치된다면 동료대원들도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 “한의진료과, 국립소방병원 정상화의 열쇠”
한편 이번 국정감사 이후 국립소방병원의 개원 불발 우려와 함께 한의진료과 신설을 통한 의료인력 보완 및 통합치유체계 구축의 당위성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는 올초 ‘국립소방병원 한의과 설치를 위한 국회토론회(한의약정책연구원 주관)’를 개최한 데 이어 최근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립소방병원 내 한의진료과 설치를 정상 개원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한의협은 “소방공무원은 근골격계 질환·화상 후유증·PTSD 등 다각적 건강문제에 노출돼 있으며, 이를 한의진료가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서 “한의계는 이미 공공기관과 협력해 통합의료모델을 실현하고 있으며, 국립소방병원 한의과 설치 시 필요 인력과 임상 전문성을 즉각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윤성찬 회장은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분들이 이제는 국가로부터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을 차례”라며 “한의약은 근골격계 질환, 화상 후유증, PTSD 등 소방관들이 겪는 복합적 증상을 통합적으로 돌볼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이어 “한의협은 언제나 소방공무원들의 든든한 건강 파트너로서 곁에서 함께할 것”이라며 “정부는 ‘소방관이 건강해야 국민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국립소방병원 내 한의진료과 설치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1월 9일 ‘소방의 날’, 이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먼저 치유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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