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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27일 (월)

日 천황가의 절망 치유한 19세기 漢方醫, 현대 통합의료에 질문을 던지다

日 천황가의 절망 치유한 19세기 漢方醫, 현대 통합의료에 질문을 던지다

JSOM 특강…마지막 에도 명의와 메이지 천황가의 극적 조우 조명
‘어느 한방의의 위업-아사다 소하쿠와 아키노미야 요시히토 친왕’ 강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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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교수 


지난달 일본 도야마 국제회의장에서 ‘동양의학의 발전-차세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주제로 제76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가 성대하게 개최됐다. 필자는 첫날 개회식 직후 메인홀에서 열린 테라사와 카츠토시(寺澤捷年) 도야마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느 한방의의 위업-아사다 소하쿠와 아키노미야 요시히토 친왕(ある漢方医の偉業~浅田宗伯と明宮嘉仁親王)’이라는 제목의 강연은 에도 말기 최고의 한방의였던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 1815~1894)와 일본 황실의 특별한 인연을 다뤘다. 그는 고방파(古方派)의 맥을 이은 당대 최고의 한방의이자 에도 막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모셨던 막부 최고의 어의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양의학을 국가의 공식 의학으로 채택하며 한방을 철저히 배제했던 메이지 정부가 정작 황실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는 자신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구 막부 출신 한방의에게 후계자의 생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궁내청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이 이야기는 오늘날 통합의료(Integrative Medicine)를 고민하는 우리 의료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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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사와 카츠토시 교수와 그의 저서 『ある漢方医の偉業~浅田宗伯と明宮嘉仁親王 

 

◎ 서양의학에 절망한 천황가…다시 漢方을 찾다

 

메이지 10년(1877년) 무렵 일본의 의학교육은 독일식 서양의학으로 완전히 재편됐고, 황실 시의단에서도 한방의는 모두 배제됐다. 하지만 1879년 8월 31일 태어난 요시히토 친왕(훗날 다이쇼 천황)의 치료를 위해 황실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고 아사다 소하쿠를 전격 초빙한다.

 

배경에는 황실의 깊은 절망이 있었다. 요시히토 친왕 이전에 태어난 네 명의 황자·황녀가 모두 황실 시의단의 진료를 받았음에도 각종 질환으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황실은 과거 메이지 천황의 친모를 중증 패혈증에서 구해낸 아사다 소하쿠의 뛰어난 임상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관련 내용은 그의 저서 『귤창서영(橘窓書影)』에도 기록돼 있다.

 

결국 제도와 이념보다 우선한 것은 생명이었다. 황실은 가장 소중한 후계자의 치료를 위해 막부의 늙은 어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아사다 소하쿠는 천황의 명을 받자마자 24시간 진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두 명의 보조 의사를 선발했다.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수술을 성공시킨 하나오카 세이슈 학파에서 외과를 수학한 이마무라 료(今村亮), 그리고 최고위 어의(奧醫師) 출신 오카 코인(岡桐蔭)이었다. 모두 구 막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멸망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뛰어난 임상가로서, 전문성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황실의 후계자를 살리는 중책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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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초상화)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 한방의

 

◎ 전통의학의 ‘내재적 진화’…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요시히토 친왕의 치료 과정은 신경학적 응급상황의 연속이었다. 생후 24일째인 1879년 9월 24일, 친왕은 턱과 입술이 굳는 구금(拘禁) 발작을 일으켜 탕약을 복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때 이마무라 료는 신축성 있는 은판으로 만든 곡두관(曲頭管)을 입안으로 삽입해 파두와 행인으로 구성된 응급 처방인 주마탕(走馬湯)을 투여했고, 결국 위기를 넘겼다.

 

1880년 8월에는 뇌수막염이 재발하면서 대천문이 심하게 팽창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방치했다면 두개내압 상승으로 인한 뇌간 압박과 소뇌천막탈출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응급상황이었다.

 

아사다 소하쿠는 시함탕(柴陷湯)과 쌍자원(雙紫圓)을 투여하는 동시에 대천문(大泉門) 부위에 기포고(起泡膏)를 붙여 체액을 배출하도록 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체표를 이용한 일종의 뇌척수액 배액(Drainage)에 해당하는 발상이었다. 이러한 과감한 처치 끝에 친왕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치료가 모두 당시 한방의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 말 지석영이 종두법의 효과를 확인한 뒤 적극적으로 우두법을 보급했던 사례와도 닮아 있다. 기존 의학의 틀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며 스스로 진화해 나갔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전통의학의 내재적 진화(Intrinsic Evolu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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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효·독성을 함께 다스린 치료 원칙…시대를 앞선 투약 프로토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약물 관리 방식이다. 1879년 11월 5일 친왕의 발작이 악화되자 아사다 소하쿠는 이를 태독(胎毒)으로 진단하고 묘효십일환(妙効十一丸)을 처방했다. 이 약에는 경분(輕粉)과 웅황(雄黃) 등 독성이 강한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약효만큼 독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복용시키지 않고 5~6일을 한 주기로 복용한 뒤 반드시 휴약기를 두는 방식을 적용했다. 강한 약성을 조절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이러한 접근은 현대 항암치료의 사이클(Cycle) 개념과도 일정 부분 닮아 있다.

 

◎ 아사다 소하쿠가 남긴 유산…통합의료의 미래를 묻다

 

서양의학 일변도의 시대적 분위기와 황실 내부의 깊은 불신 속에서도 아사다 소하쿠는 한의학적 진단에 외과적 술기를 접목하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초고령사회와 난치성 신경계 질환이라는 새로운 의료 환경 앞에서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분절된 의료체계를 넘어 각 학문의 강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다학제 통합의료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과거 세 명의 한방의가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스스로 진화하며 통합적 진료체계를 만들어냈듯 오늘날 우리 역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임상 경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법과 제도를 앞세워 한의계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내재적 진화’ 자체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의사를 제도권에서 철저히 배제했던 역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자국에서는 한방의들의 통합적 진료를 통해 황실의 후계자를 지켜낸 경험을 갖고 있었음에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외면한 채 한의학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하지만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이제 우리 의료는 과거의 이념적 대립을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를 중심으로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통합의료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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