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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1일 (월)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8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8

한의예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교육까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돼”

한상윤 교수님(새 사진).jpg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예과 2년이 어떤 시간이냐고 물어본다면 꽤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본격적인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고, 본과에 올라가기 전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 같다. 


  한의예과 과정은 어떤 학생에게는 대학 생활을 처음 경험하는 시간이면서, 또 어떤 학생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본과 공부를 미리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의예과의 정체성은 오래전부터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최근 이러한 예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4년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의과대학뿐 아니라 한의과대학, 치과대학, 수의과대학의 학사과정 수업연한이 6년으로 규정되면서 기존의 ‘예과 2년+본과 4년’이라는 틀을 넘어 통합 6년제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예과, 의료인이 되기 전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시간


  물론 행정적으로 6년제가 되었다고 교육이 저절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예과와 본과라는 이름만 없애고 기존 과목의 순서를 조금 바꾸어 놓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이라 하기 어렵다. 해부학을 조금 빨리 배우고, 생리학을 앞당기고, 한의학 전공과목을 1학년부터 더 많이 배치한다고 해서 6년의 교육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변화는 ‘예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동안 예과는 본과 공부를 위한 준비 단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화학이나 생물학 같은 기초과학을 배우고, 교양과목을 이수하며, 일부 한의학 입문 과목을 접한 뒤 본과로 진입하는 구조다. 그러나 예과를 단순히 본과의 선행 단계라고 정의하면 통합 6년제의 결론은 쉽게 ‘본과 공부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자’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통합 6년제가 될수록 예과가 가지고 있던 교육적 기능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우선 예과는 의료인이 되기 전에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접해야 할 전문 지식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한상윤 교수님2.jpg
AI 생성 이미지

 


‘나는 어떤 의료인이 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서 시작해 한의학의 기초이론과 진단, 본초, 방제, 임상과목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교육과정 속에서 문학과 역사, 철학과 사회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의료인이 만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은 전공서적만으로 길러지지 않으며, 특히 인간을 몸과 마음, 환경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 온 한의학이라면 인문학적 소양은 전공교육 바깥의 장식이 아니라 한의학적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예과는 ‘전공을 배우기 위한 기초’뿐 아니라 ‘전공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기여야 한다. 앞으로의 의료인은 기존의 지식을 많이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쏟아지는 정보를 검증하고, 근거의 수준을 판단하며,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방법론, 통계와 데이터 리터러시, AI 활용 능력,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도 이제 의료인의 기초 역량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어느 특정 과목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6년 전체의 교육과정에서 반복되고 심화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예과에서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본과에서 전문지식과 연결하며, 임상실습에서 다시 환자의 문제를 통해 확인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끝으로, 예과는 ‘나는 어떤 의료인이 될 것인가’를 처음 고민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생이 한의과대학에 입학하고도 실제 환자를 만나거나 한의사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문직의 정체성은 국가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형성되지 않는다. 입학 초기부터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임상 현장을 관찰하며, 다른 보건의료 직종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조금씩 축적되어야 한다.


  통합 6년제를 먼저 고민하고 있는 의학교육에서도 교육의 연속성은 중요한 기대 효과로 제시되고 있다. 한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도 교수와 학생 모두 교육이 보다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동시에 학생들은 전공교육이 빨라지면서 다른 학문을 접할 기회가 줄거나 경쟁이 더 일찍 시작될 가능성을 걱정했다. 이러한 우려는 한의과대학도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전공교육을 앞당기는 데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예과가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여백을 잃을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목의 위치를 옮기는 수준을 넘어, 입학에서 졸업까지 학생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6년이라는 하나의 시간축 위에 다시 그려 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6년제의 핵심은 단순히 예과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과와 본과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없애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의대 6년의 과정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본과에서 하던 공부를 당겨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예과에서 해야 했지만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지, 본과에서 너무 늦게 시작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6년 동안 반복하며 깊어져야 할 역량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2년의 예과와 4년의 본과’를 잠시 내려놓고, 한 명의 학생이 입학해서 한의사가 되어 나가기까지의 6년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의예과라는 이름은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교육까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된다. 통합 6년제의 성패는 결국 ‘예과를 없앴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어떤 교육을 남겼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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