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찾은 보약 ⑮

기사입력 2022.08.25 13:23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가을 열매보다 여름 잎과 줄기가 더 좋아요
    고구마줄기, 호박잎, 콩잎, 고춧잎의 다양한 맛

    권해진1-증명사진.jpg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9년째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1.jpg

     

    어머니가 밭에서 오시면서 당신 몸보다 큰 보자기에 콩잎을 한가득 따 오셨습니다. 

    “와! 콩잎이네! 작년에 콩잎물김치 선물했던 집에서 올해는 안 담그셨냐고 물어 보던데.”

    “할머니가 만든 콩잎물김치를 누구한테 갖다 준다고? 난 반대야. 엄마가 콩잎 정돈해봤어? 얼마나 힘든데.” 딸이 저를 보며 타박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양이 많은데 나누어 먹고 하면 좋잖아!”

    “보자기에 들어 있을 때 많아 보여도 이거 정돈하고 나면 얼마 안돼. 엄마가 주고 싶으면 이 콩잎 엄마가 다 정돈해!” 딸은 자신이 콩잎 정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그걸 남에게 준다는 말에 짜증을 냈습니다. 

    “할머니가 콩잎 더 따올게. 콩잎 정리 도와주면 용돈도 넉넉히 줄게. 음식은 나누어 먹는 거야.” 할머니의 타이르는 말에 용돈까지 주신다고 하니 딸아이가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할머니 용돈 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저도 그럼 콩잎 정리 도울게요.” 아들은 용돈 받을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여름에 먹는 콩잎, 손 많이 가지만 밥도둑 따로 없어

    콩은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해 잡곡 중 으뜸으로 여겨집니다. 콩을 수확해서 밥에 넣어 먹거나 콩자반으로 밑반찬을 하기도 하고 겨울에 콩나물을 길러서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임이 다양한 콩은 수확한 뒤보다는 콩잎을 따서 먹을 수 있는 여름에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갑니다. 깻잎 따듯이 연한 콩잎을 따서 씻은 후 물기를 빼고 한 장 한 장에 된장을 발라 장아찌를 만듭니다. 한 장씩 된장을 바르지 않고 콩잎을 모아 된장독에 푹 박아 두었다가 꺼내 먹어도 좋습니다. 한 장씩 된장을 바르면 된장이 골고루 묻어 찬물에 밥 말아 먹을 때 짭조름하게 한 장씩 먹기가 좋습니다. 또 그렇게 포개어 둔 그대로 물김치를 담가 먹기도 합니다. 너무 작은 잎이라 포개기가 힘들면 연한 잎 두세 장이 붙은 그대로 콩잎 물김치를 담그기도 합니다. 자라나는 잎을 자주 따주니 식물의 키가 커지거나 덩굴이 많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콩 성장에는 잎을 적당히 솎아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콩보다 콩잎이 더 좋을 때가 있듯, 고구마에도 그런 부위가 있습니다. 고구마 줄기입니다. 땅속에서 고구마가 잘 자라려면 잎에서 햇빛을 많이 받아 영양분을 뿌리인 고구마에 주어야겠지요. 그렇게 여름 한철 텃밭은 고구마 잎이 무성합니다. 빼곡히 잎사귀가 들어차 있으니 줄기를 조금 끊어도 고구마가 자라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게 줄기를 끊어 와서 하나하나 줄기의 껍질을 까줍니다. 연초록빛의 줄기만 남으면 아삭아삭한 고구마줄기김치를 담글 준비가 되었습니다. 

     

    2.jpg

     

    ◇고구마 줄기, 아삭한 김치로 담가 먹어요

    고구마는 ‘번서(蕃薯)’, 고구마 줄기와 잎은 ‘번서등(蕃薯藤)’이라는 이름으로 의서에 등장합니다. 번서 등은 토하고 설사하는 증상, 젖이 잘 안 나오거나, 대변출혈, 자궁출혈 등에 사용한다고 전해집니다. 

    김치의 기본은 재료가 배추든 고구마줄기든 소금에 절이는 것이 시작이지요. 하지만 저희 집은 고구마 줄기를 소금에 절이지 않습니다. 대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식혀 물기를 빼고 사용합니다. 거기에 김치 담글 때 쓰는 모든 양념을 버무리기만 하면 됩니다. 양파와 부추 등을 곁들이면 더욱 풍부한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고구마 줄기는 여름철 별미입니다.


    ◇강된장과 잘 어울리는 호박잎, 지금이 제일 맛있는 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넝쿨째 들어오면 어떤 부위를 먹고 싶으세요? 저희 어머니의 1순위는 호박잎입니다. 여름 뙤약볕에 호박잎이 크게 자라면 호박은 그 사이사이 숨어서 커갑니다. 호박이 어디에서 영글었나 확인하려고 호박잎을 들추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연한 잎을 뚝하고 끊어 오십니다. 

    장바구니 하나 가득 따오셔서 줄기 껍질을 벗기면 잎 뒷면에 있는 까슬까슬한 껍질도 같이 벗겨집니다. 그런 후 잎을 씻어서  포갭니다. 이 또한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일이지요. 그렇게 쌓은 잎을 뒤집어서 찝니다. 그러면 수증기에 호박잎이 연하게 됩니다. 

    호박잎과 짝이 잘 맞는 것은 강된장입니다. 된장에 감자, 고추, 양파, 애호박 등을 잘게 썰어 넣으면 야채의 수분으로 된장이 묽어집니다. 강된장을 만들면 여러 가지 채소를 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뜨거운 된장이 아니라 차가운 된장 양념이니 여름철 시원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호박꽃이 피면 수술을 떼고 꽃을 튀겨서 먹기도 합니다. 호박꽃 튀김을 먹고 호박잎에 쌈 싸서 먹고 애호박전까지 만들어 먹으면 여름이 지나갑니다. 가을에는 누런 호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런 호박을 집에 보관해두었다가 겨울에 호박죽을 끓여서 먹으면 몸에 습을 제거하여 붓기를 빼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호박은 넝쿨째 들어오면 먹을 복이 터지네요. 

    3.jpg

     

    ◇여름엔 잎과 줄기로 더위를 이겨내요

    2주 전부터 비가 많이 와서 내리는 비를 보며 어머니께서 ‘올해 고추 농사는 우짜노’하며 걱정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텃밭에 가보니 자연의 무서움이 느껴집니다. 넘어져 버린 고추를 모두 뽑고 연한 고춧잎과 먹을 수 있는 고추만 정리해서 집에 가져와 고춧잎나물을 해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추보다 고춧잎, 호박보다 호박잎, 콩보다 콩잎, 고구마보다 고구마 줄기를 즐기는 저희 가족입니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