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수를 통해 경험한 한의학 세계화의 미래

기사입력 2026.02.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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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대·사립대·병원·프랜차이즈 중의진소까지
    김수현 학생(부산대 한의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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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학교 한의학과 재학생 6명(김수현, 박규태, 최동렬, 한지우, 홍성훈, 유찬섬)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활기가 넘치는 타이베이에서, 미래 중의학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학과 의료기관에서의 2주간 임상연수를 국제한의학센터 주관으로 지도교수님(채한 교수)과 함께 진행했다. 

     

    강의실에서만 어렴풋하게 전해 들었던 중의학이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중의학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몸소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은 한의학과 임상 교육에서의 마음가짐과 미래 진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임상연수는 2주(1.18.-1.31.) 동안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학교와 병원, 그리고 로컬 중의진소(中醫診所)까지 모두 한 번에 돌아보는 기회였는데, 부산대학교를 대표했던 특성화 실습이 없어진 빈자리를 훌륭히 메우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더욱이 대만 임상연수 일정과 연수단을 직접 만들고 현지 경험을 한국 현실과 비교해주신 지도교수님이 2주를 꼬박 함께 하셨기에, 이는 단순한 연수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한 총괄 디렉터의 해설이 곁들여진 고품격 중의학 기행이었다.

     

    첫째 주에 연수를 진행한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장경대학교(Chang Gung University)와 장경기념병원(Chang Gung Memorial Hospital)에서는 사립대에서 전통의학의 깊이를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둘째 주에 연수를 진행한 국립양명교통대학교(National Yang Ming Chiao Tung University)와 타이베이 보훈종합병원(Taipei Veterans General Hospital)에서는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국립대학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급작스레 추가되었던 마광중의진소(馬光中醫診所)는 기존의 로컬 네트워크 한의원과는 정반대의 전략 – 의료보험을 주력으로 한 성공적인 의료 모델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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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본주의 철학과 실용적 임상을 지향하는 장경대학(CGU)과 장경기념병원(CGMH)

    전통의 문턱을 낮춰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가는 중의학

     

    부친(왕장경)의 장중첩증을 당시의 빈약한 의료 환경과 경제적 이유로 제때 수술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했던 안타까운 경험에, 대만의 제조업 중심 산업화 모델을 확립한 성공한 기업가인 왕융칭 회장이 대학과 의료기관을 설립한 것이 장경대학교와 장경기념병원의 시작이었다. 

     

    장경대학교 중의학과(School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는1998년, 장경기념병원 중의진료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

     

    설립자 왕융칭 회장은 사회에 대한‘봉사 정신’을 강조했는데, 당장의 수익성보다 의학적 가치와 공익적 가능성을 우선시하여 스포츠 재활이나 신약R&D 등 미래 지향적 영역에 과감히 투자하는 모습에서 지속가능한 한의학에 필요한 모델을 볼 수 있었다. 

     

    대만 최대 규모의 사립 의료기관인 장경기념병원에서의 실습은 중의학이 제도권 의료의 핵심 축으로 얼마나 견고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곳의 교육 환경은 우리 예비 의료인들에게 임상의 본질을 일깨워주었다.

     

    대만 연수의 첫날 일정은, 불면에 대한 강의로 시작했다. 

     

    음양으로 수면의 기전을 설명한 ‘양불입음(陽不入陰)’ 이론을 사용해서 복잡해 보이는 서양의학적 이론들을 맥진을 기반으로 침구 치료 전략으로 풀어내고 있었는데, 이는 대만 중의학이 가진 강력한 실용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특히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트레스와 불안 장애에 대해서도 심리적 이완과 신체적 균형을 동시에 도모하는 정교한 임상적 접근법을 갖춘 것으로 느껴졌다. 

     

    정신적 피로감이 극에 달한 현대 사회에서 한의학이 심리·신체적 통합 치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설명과, 신경계 조절을 통한 감정 관리까지 치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오후의 약선(medicinal food) 실습은 앞으로 이어질 연수 과정 또한 새로움의 연속일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했다. 

     

    한국에서의 약선은 그저 한정식 코스에 부수적으로 곁들여지는 구태의연한 광고 전략으로 느껴졌으나, 대만 중의학은 이미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었다. 

     

    특히 ‘약식동원(藥食同源)’의 현대적 재해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의학을 단순히 보양식이나 전통적인 기호식품, 혹은 쓴 한약의 한정된 이미지에 가두지 않고, 대중의 일상 영역으로 과감히 확장하고 있었다.

     

    하수오를 활용해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브라우니’, 한약재를 조화롭게 가미해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하는 ‘프리미엄 밀크티’ 등 매력적인 메뉴 개발은 중의학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원동력이고, 전통의학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세대를 아우르는 건강 관리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보며 우리 역시 너무 기존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성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임상실습 연수과정에서는, 단순한 참관을 넘어 임상 교수님의 배려로 진료실에서 직접 환자들의 맥을 짚고 뜸 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교과서에 갇혀 있던 기존의 지식들이 살아있는 임상 경험으로 치환되는 값진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진료 현장에서 만난 현지 의료진과의 교류 기회도 다양하게 가질 수 있었는데, 대만 인턴들과 소통하며 중의학의 높은 사회적 위상을 체감했으며 한의학-중의학 간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적 토대에 따른 임상 적용과정에서 국가별 독특한 차이를 비교해보면서 세계를 향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연구중심 중의학을 지향하는 국립양명교통대(NYCU)와 타이베이 보훈종합병원(TVGH)

    한약제제 엑스제를 중심으로 변화해 가는 대만의 전통의학

     

    국립양명교통대학교와 연계된 타이베이 보훈종합병원은 국가적 차원의 연구 역량이 집중된 곳으로, 현대과학과 중의학의 정밀한 결합이 돋보였는데, 데이터와 시스템이 견인하는 미래형 중의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만의 학계를 선도하는 국립양명대와 첨단 반도체를 비롯한 최신 IT산업을 견인해온 교통대가 2021년 2월 합병하여 설립된 것이 국립양명교통대이며, 이 대학의 전통의학연구소(Institute of Traditional Medicine)는 1991년 다학제 의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됐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전통의학연구소가 중의학 석·박사 학위과정을 모태로 하기에 높은 연구역량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며, 2024년 설립된 중의계의 교육과정에서 첨단 IT산업과의 다학제적 접근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현지병원(TVGH) 수련 시스템에서 확인한 교육제도의 유연성도 인상 깊었는데,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흡수하는 대만의 ‘학사후(post-bachelor)’ 과정은 중의학의 외연을 넓히고 타 학문과의 융합을 촉진하는 강력한 기반이 되고 있었다. 

     

    이를 보며, 과거 임상가 양성 위주의 6년제 틀을 깨고 ‘다학제 간 융합’을 목표로 출범했던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 비전을 타국에서 생생하게 재확인하는 듯했다.

     

    병원 약제실 실습에서 확인한 대만 중의학은, 이미 80% 이상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농축 추출물(한약제제엑스제)’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었다. 

     

    특히 조제 유도 표시등(Light Signal)과 바코드검증을 통해 조제 오류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은, 과거 원전 속 처방이 현대 기술과 만나 어떻게 효율적으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임상연수 과정에서 경험한 ‘2인 의사 협업 시스템’도 특징적이었는데, 레지던트가 초진 문진을 전담하고 주치의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은 몰려드는 보훈병원 환자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관리하는 대만 중의학의 효율성과정확성을 모두 고려한 혁신적인 모델이라고 판단됐다.

     

    한의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과 연구, 경영의 혁신

    임상연수를 통해 경험한 한의학 세계화의 미래

     

    이번 임상연수는 예비 연구자의 시각에서도 한의학계의 혁신이 나갈 방향성을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만 중의학의 경쟁력은, 전통의 가치를 고수하면서도 이를 전달하는 인프라와 시스템을 철저히 현대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 한의학계 혁신의 방향성을 다시금 되돌아봤다.

     

    먼저, 무형의 임상 노하우를 유형의 데이터 시스템으로 규격화한 점이 놀라웠다. 

     

    장경기념병원의 뜸치료실은 특수 배기 시스템을 통해 연기와 냄새를 완벽히 통제하는 물리적 환경을 구축했고, 시술 과정은 엄격한 진료차트 시스템에 의해 표준화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양방 협진 시스템을 통해 고도의 데이터 연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플랫폼을 아우르는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관리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는 전통 치료법이 현대적 병원 환경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고 생각됐다. 

     

    다만, 지도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한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전자 뜸 기술이 오히려 대만보다 앞서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에 한 번 더 놀랐다.

     

    둘째는, 임상과 연구의 즉각적인 선순환 구조다. 반도체와 AI 분야에서의 연구력이 입증된 교통대와 의학에 강점이 있는 양명대의 통합은 중의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상당한 귀감이 됐다. 

     

    단순히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방대한 임상(협진) 데이터를 곧바로 연구에 연동하여 단기 및 중장기 임상연구를 상시 진행하는 체계가 흥미로웠다. 

     

    다학제적 연구를 선도하면서 우수한 연구시설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과학적 근거를 창출하려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코로나 치료제 청관 1호(NRICM101)를 개발하여, 국가 시스템에 바로 활용했던 경험을 듣다 보면, 그들이 가진 저력과 시스템의 효율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대만의 사회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고도화된 의료 경영과 고객관계관리(CRM)의 정착이다. 

     

    환자 중심의 고품격 의료서비스와 표준화된 경영모델을 통해 대만전역에서 독보적인 신뢰를 구축해가는 마광의료망(馬光醫療網)의 경영 전략이 혹시 한의학의 대중적 확장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도 교수님의 15년 지기이신 신의원(信義院) 정홍강 원장님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대만 중심가 101 타워가 보이는 신의원(信義院)을 구석구석 살펴보게 되었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CRM 매니저의 세심한 환자 관리시스템과 효율성을 극대화한 예약 중심 보험 진료 프로세스는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학문적 깊이 만큼이나 운영의 묘(妙)에서 완성됨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의료진과 행정팀 간의 긴밀한 협업 체계는 중의학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세련된 전문 의료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 같았다.

     

    시대적 요구에 응답할 의료인으로 성장할 변곡점

     

    이번 임상연수 프로그램에서의 배움이 한층 더 깊었던 이유는, 전 일정을 함께 하면서 연수 기관과 일정을 설계한 이유와 우리 학생들의 경험에 대한 설명을 더해 주신 전문 큐레이터, 지도교수님이 계셨다는 점이었다.

     

    지난 수년간 ‘한의학의 세계화’를 학교의 비전으로 접해왔지만, 실천적인 방법론이나 나의 진로와 연결된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막연함이 앞섰다. 

     

    그러나 이번 연수는 달랐다. 

     

    미국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한의학 세계화 분야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갖춘 채한 교수님께서는 프로그램의 설계 의도부터 현장 경험의 가치, 그리고 현실적인 한계까지 상세히 짚어주셨다. 무엇보다 이를 예비 한의사의 커리어에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함께 고민해 주신 시간은 실로 귀중했다.

     

    비유하자면, 우연히 들어선 박물관에서 그 유물을 직접 발굴한 고고학자 및 문화해설사와 동행할 기회를 얻어 생생한 해설을 듣는 듯한 전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졸업 선배님(원광대학교 한상윤교수님)이 세계화 협력사업을 진행하시는 바쁘신 업무 일정 속에서도 대학 후배들에게 당신의 학교생활과 졸업 후 경험을 나누어 주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해외 임상연수를 다녀온 것이지만, 어느새 강의실을 통째로 해외현장으로 옮겨 놓은 것만 같은 살아있는 수업을 진행해 주신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교수님들께서 자비를 들여 마련해 주신 이런 특별한 수업을 경험할 수 있었던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 학생들인가.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해준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이번 임상연수에서의 전환점을 후배들도 경험하기를 바라면서–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나도 좋은 선배가 되어 후배들에게 한의학 세계화를 이야기하기를 소망하면서– 남은 방학 동안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려한다. 

     

    이번 임상연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신 한국과 대만의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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