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단체를 구성해 日本의 漢方醫學을 부흥시키자”
1920년대〜40년대 日本 漢方醫學 團體의 興起
[한의신문] 1895년 日本에서는 漢醫界가 제출한 의사면허규칙개정법이 議會에서 부결되게 됨에 따라 일본에서 漢方醫學은 제도화를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한의학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30여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日本 漢方醫學界는 대오를 정비하여 1920년대부터 漢醫團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를 아래에 정리한다(이하 潘桂娟의 『日本漢方醫學』, 中國中醫藥出版社, 1994를 참조함).
① 東洋和漢醫學硏究會: 1927년 봄 大阪에서 만들어졌다. 渡邊熙가 主管人이었다. 그 모토는 漢方醫學을 科學的으로 解釋하여 현대의학을 補正한다는 것이었다. 한방의학에 대한 단기 강습활동을 진행하였는데, 강사는 渡邊熙, 藤本豊吉, 中野康章 등이었다. 참여한 인물로 森田幸門, 黑川惠寬 등이 있었다.
② 東洋醫道會: 1928년 1월에 東洋醫道會가 東京에서 성립되었고, 동시에 『皇漢醫界』(月刊)가 발행되었다. 發起人은 南拜山이었다. 漢方醫家들을 연합시켜 漢方醫學을 부흥시킨다는 것을 종지로 하여 東京에서 활동하는 漢醫가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다. 구성원으로 木村博昭가 중요 一派를 구성하였고, 湯本求眞을 중심으로 하는 一派도 있었다. 이외에도 新妻良輔, 大塚敬節, 矢數道明 등도 本會의 회원이었다.
③ 皇漢醫道會: 1928년 5월 東洋醫道會에서 나온 木村博昭 등이 창립하였다. 6월부터 附屬講習所를 열어서 운영하였다. 1929년 5월에는 『醫道』(月刊)을 창간하였다. 本會의 宗旨는 漢方醫學의 振興과 普及이었다. 木村博昭가 회장이었고, 간부로 原田捻甫, 田代豊吉郞, 中山忠直, 安西安周, 小出壽, 林晴世 등이었다.
④ 東洋古醫學硏究會: 1932년 5월 湯本求眞의 門人인 佐藤省吾, 荒木性次, 大塚敬節, 山城正好 등이 東京에 설립하였다. 『古醫道』(月刊)을 창간하였고, 매월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⑤ 日本漢方醫學會: 1934년 3월 東京에 설립하였다. 5월 15일에 『漢方與漢藥』(月刊)을 창간하였다. 本會의 宗旨는 漢方醫學을 經으로 하고 西洋醫學을 緯로 하여 한방의학을 부흥시킨다는 것이었다. 조직상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會長과 理事를 두지 않았다. 石原保秀, 奧田謙藏, 大塚敬節, 中野康章, 栗原廣三, 矢數道明, 柳谷素靈, 安西安周, 木村長久, 木村雄四朗, 湯本求眞, 淸水藤太郞, 森田幸門 등이 幹事로 선임되었다. 古方派, 後世方派, 折衷派의 三大流派의 인물들이 연합하는 형태를 띠었다.
⑥ 日本醫學硏究會: 1935년 11월 安西安周, 馬場和光, 內山孝一 등이 같이 발기하여 설입되었다. 現代醫學과 東洋特有의 醫術을 모아서 學術道의 三者를 歸一시킬 日本 獨特의 醫學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橋田邦彦, 久保田晴光 등 5人이 顧問이었고, 安西安周, 馬場和光, 龍野一雄, 津間駿輔, 內山孝一 등이 간사를 맡았고, 田中吉左衛門, 黑川惠寬, 森田幸門 등이 평의원을 맡았다 1938년에 『日本醫學』(月刊)을 창간하였다.
⑦ 東亞醫學協會: 1935년 石原保秀, 大塚敬節, 矢數道明, 矢數有道, 柳谷素靈, 木村長久, 淸水藤太郞 등 7인이 중심이 되어 漢方醫學의 개몽과 인재 양성을 모토로 설립되었다.
⑧ 千葉大學東洋醫學硏究會: 1939년 4월 千葉醫科大學 학생 藤平健, 長濱善夫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⑨ 近畿漢法醫學會: 1940년 5월 中野康章이 회장을 맡고 新妻良輔, 森田幸門이 간사가 되어 11명의 회원으로 설립되었다.
⑩ 近畿漢方醫學會: 1940년 6월 中野康章이 회장, 阿部博行이 부회장, 森田之皓가 간사로 출발하였다.
⑪ 日本漢方藥劑師會: 1942년 淸水藤太郞이 회장으로 출발하였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20년대〜40년대 日本 漢方醫學 團體의 興起
[한의신문] 1895년 日本에서는 漢醫界가 제출한 의사면허규칙개정법이 議會에서 부결되게 됨에 따라 일본에서 漢方醫學은 제도화를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한의학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30여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日本 漢方醫學界는 대오를 정비하여 1920년대부터 漢醫團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를 아래에 정리한다(이하 潘桂娟의 『日本漢方醫學』, 中國中醫藥出版社, 1994를 참조함).① 東洋和漢醫學硏究會: 1927년 봄 大阪에서 만들어졌다. 渡邊熙가 主管人이었다. 그 모토는 漢方醫學을 科學的으로 解釋하여 현대의학을 補正한다는 것이었다. 한방의학에 대한 단기 강습활동을 진행하였는데, 강사는 渡邊熙, 藤本豊吉, 中野康章 등이었다. 참여한 인물로 森田幸門, 黑川惠寬 등이 있었다.
② 東洋醫道會: 1928년 1월에 東洋醫道會가 東京에서 성립되었고, 동시에 『皇漢醫界』(月刊)가 발행되었다. 發起人은 南拜山이었다. 漢方醫家들을 연합시켜 漢方醫學을 부흥시킨다는 것을 종지로 하여 東京에서 활동하는 漢醫가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다. 구성원으로 木村博昭가 중요 一派를 구성하였고, 湯本求眞을 중심으로 하는 一派도 있었다. 이외에도 新妻良輔, 大塚敬節, 矢數道明 등도 本會의 회원이었다.
③ 皇漢醫道會: 1928년 5월 東洋醫道會에서 나온 木村博昭 등이 창립하였다. 6월부터 附屬講習所를 열어서 운영하였다. 1929년 5월에는 『醫道』(月刊)을 창간하였다. 本會의 宗旨는 漢方醫學의 振興과 普及이었다. 木村博昭가 회장이었고, 간부로 原田捻甫, 田代豊吉郞, 中山忠直, 安西安周, 小出壽, 林晴世 등이었다.
④ 東洋古醫學硏究會: 1932년 5월 湯本求眞의 門人인 佐藤省吾, 荒木性次, 大塚敬節, 山城正好 등이 東京에 설립하였다. 『古醫道』(月刊)을 창간하였고, 매월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⑤ 日本漢方醫學會: 1934년 3월 東京에 설립하였다. 5월 15일에 『漢方與漢藥』(月刊)을 창간하였다. 本會의 宗旨는 漢方醫學을 經으로 하고 西洋醫學을 緯로 하여 한방의학을 부흥시킨다는 것이었다. 조직상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會長과 理事를 두지 않았다. 石原保秀, 奧田謙藏, 大塚敬節, 中野康章, 栗原廣三, 矢數道明, 柳谷素靈, 安西安周, 木村長久, 木村雄四朗, 湯本求眞, 淸水藤太郞, 森田幸門 등이 幹事로 선임되었다. 古方派, 後世方派, 折衷派의 三大流派의 인물들이 연합하는 형태를 띠었다.
⑥ 日本醫學硏究會: 1935년 11월 安西安周, 馬場和光, 內山孝一 등이 같이 발기하여 설입되었다. 現代醫學과 東洋特有의 醫術을 모아서 學術道의 三者를 歸一시킬 日本 獨特의 醫學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橋田邦彦, 久保田晴光 등 5人이 顧問이었고, 安西安周, 馬場和光, 龍野一雄, 津間駿輔, 內山孝一 등이 간사를 맡았고, 田中吉左衛門, 黑川惠寬, 森田幸門 등이 평의원을 맡았다 1938년에 『日本醫學』(月刊)을 창간하였다.⑦ 東亞醫學協會: 1935년 石原保秀, 大塚敬節, 矢數道明, 矢數有道, 柳谷素靈, 木村長久, 淸水藤太郞 등 7인이 중심이 되어 漢方醫學의 개몽과 인재 양성을 모토로 설립되었다.
⑧ 千葉大學東洋醫學硏究會: 1939년 4월 千葉醫科大學 학생 藤平健, 長濱善夫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⑨ 近畿漢法醫學會: 1940년 5월 中野康章이 회장을 맡고 新妻良輔, 森田幸門이 간사가 되어 11명의 회원으로 설립되었다.
⑩ 近畿漢方醫學會: 1940년 6월 中野康章이 회장, 阿部博行이 부회장, 森田之皓가 간사로 출발하였다.
⑪ 日本漢方藥劑師會: 1942년 淸水藤太郞이 회장으로 출발하였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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