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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진단기술의 임상 활용법 <1>강희정 대요메디(주) 대표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요 동맥 부위에서의 맥 박동을 살펴 질병의 종류와 정도를 살피는 기술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진단기술이며, 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들이 수백년간 진행돼 왔음을 맥 진단기술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현대 맥 측정기의 측정원리와 측정 파라미터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측정기기를 이용하고 파라미터를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초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통 맥 측정법의 구현…3차원 맥영상 검사기의 측정 원리·방법 3차원 맥영상 검사기기는 현재 5가지 모델이 존재하는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전통적으로 맥진을 구사하기 위한 동작인 가압을 조절하고 혈관을 찾는 ‘거안심’(擧案尋)을 장비로 구현하는 동시에 재현성과 반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채널의 압력센서와 정밀가압 시스템이 접목되고 이를 운용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다채널 압력센서를 이용함으로써 재현성 있는 혈관위치 확보와 3차원의 맥영상 획득 및 분석이 가능하며, 센서 소자로는 정밀한 반도체 압력센서를 사용해 부침 판별에 필수요소인 가압정보를 1g·f/㎠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고, 맥의 세기나 맥압이 객관적으로 힘(Force)이나 압력(Pressure)단위의 수치로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미세한 압력에도 뛰어난 반응특성을 가지고 있어 파형(waveform)의 정밀분석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정밀로봇 시스템이 적용돼 부중침을 판별하기 위한 정밀 가압조절이 가능하고, 가압과 감압 등 가압력의 변화에 따른 혈관과 피부의 물리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적 특성과 함께 혈관위치 확인, 로봇제어기술, 2차원 맥파 분석과 3차원 맥영상 분석기술 등의 알고리즘이 탑재됐다. 3차원 맥영상 검사기는 전통 맥 측정방법의 특성을 최대한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맥진에 대해 심도 있는 기술분석을 통해 설계가 됐다. 이러한 과정은 구체적으로 △문헌 및 맥법 조사분석 △측정기술 분석 △측정방법 설계 △기기 설계 및 구현 △분석기술 개발 △개발검증 단계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각 개발단계를 모두 소개하기에는 의료공학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생략하고, 맥진 기술분석 조사 분석에 대한 연구내용만 간략하게 소개한다. 맥진 관련 원전으로는 황제내경의 난경(難經), 왕숙화의 맥경(脈經), 이시진의 빈호맥학(瀕湖脈學), 시발의 찰병지남(察病指南), 이천의 의학입문(醫學入門) 등 고전에서 설명하는 맥 측정법과 맥상에 대한 설명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예를 들면 맥의 부침(浮沈) 구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난경 第5難의 피모에 상응하는 폐(肺)부의 맥은 콩 세 개의 무게로 시작하고 다음은 콩 여섯 개, 아홉 개, 열 두개와 근골까지 누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무게나 크기가 얼마짜리 콩인지에 대한 정량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피부에 센서가 닿는 순간부터 근골까지를 5등분해 측정하는 방법이 맞는 것인지, 가장 무거운 생강낭콩 같은 콩으로 무게를 측정해 4개의 구간을 정하고 혈관이 막힐 때까지 누르는 한 단계를 추가하는 것이 맞는지 등 맥 신호를 얻기 위한 동작을 정립하기 위해 가압무게, 측정부위 설정 등 아주 기초적인 내용까지 탐구과정을 통해 분석결과를 적용·측정해 보고, 비교분석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수행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맥법들도 조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고방방식, 후세방식, 8체질맥법, 사상체질맥법, 부양5맥법, 인영촌구맥법 등을 조사해 의료기기로 구현하기 위해 해당 맥법의 전문가를 찾아 방법을 분석·검토했다. 수년간 한의 맥진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최종적으로 현재의 3차원 맥영상 검사기기로 발전하게 됐다. 한의 맥진에 사용되는 맥파 분석기의 요구사항을 정의한 국제표준인 ISO18615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위와 같이 시스템의 원류를 전통 한의 맥진에 뿌리를 두고 측정방법을 설계하고 다양한 임상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현재의 3차원 맥영상 검사기기는 촌구맥(요골동맥)을 정밀하게 가압조절하면서 측정하는 시스템이며, 앞으로 다양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기능향상과 신기술 접목이 이뤄질 예정이다. 맥은 심장·혈관·혈액의 복합신호 ‘맥’(脈)이라는 한자는 몸육(肉)자와 물갈래파(派)의 회의문자(會意文字)로, 본래 혈(血)자를 좌변에 사용했으나, 나중에 육(肉)변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글자의 의미는 몸 안에 갈라져 흐르는, 혹은 혈액이 갈라져 흐른다는 것으로 몸 안에 흐르는 혈관을 나타내고 있다. 맥동을 영어로는 ‘Pulse’라고 하는데, 반복하다·밀어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pulsus에 어원을 두고 있다. 동양에서는 맥동이 갈라져 흐르는 대상 혹은 현상을 표현했다고 보면, 서양에서는 맥 박동의 움직임 혹은 박동 그 자체를 의미하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유(思惟)의 차이가 표현의 차이에도 나타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표현을 모두 합쳐 살펴볼 수 있는데, 문자에도 나타나지만 이를 물리적 요소로 나눠보면, 맥(脈) 신호(Pulse)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심장·혈관·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심장은 하나의 박동 에너지원이 되어 반복적으로 밀어내고 있고, 혈관은 혈액이라는 유체를 전달하기 위해 심장으로부터 몸 안에 흐르는 박동 에너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맥 신호를 진단에 활용할 때 심장·혈관·혈액을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한의 맥진(脈診)은 심장·혈관·혈액의 3요소만이 아니라 측정 시에 술자에 의해 정의되는 기계적 정보인 측정 부위의 정보(좌, 우, 촌, 관, 척의 위치정보와 측정부위의 피부특성 정보)와 맥의 깊이 정보(부중침)를 함께 활용한다. 이 때문에 동양의 맥진은 술자의 역량이 큰 영향을 미치는 진단기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맥진기술은 맥 신호의 주요 요소인 심장·혈관·혈액의 변화요인만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압을 조절함으로써 변화하는 맥 신호를 부위별 특성까지 고려해 판별해야 하는 진단기법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의료기기는 심혈관 진단을 위한 검사기기의 기능을 포함하면서 맥상 분석을 위한 부가적인 정보까지 처리해야 하는 더 복잡한 시스템이 요구된다. 따라서 맥상(脈象)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2차원 맥파형 분석과 3차원 맥영상 분석, 그리고 기계적 정보까지 복합적으로 신호를 분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2차원 맥파형 분석은 맥상 분석을 위한 기초파라미터를 제공하게 되는데, 맥파형의 생리적 특성을 기초정보로 이해한 상태에서 맥상 정보를 연계하면 보다 정확하고 효용적인 맥의 활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맥 신호의 이해와 한의진단에서의 활용 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오히려 교육 방향·방식 변화 이끈 소중한 기회”[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전국 11개 한의대·1개 한의전 학(원)장에게 한의학 교육의 현주소와 각 대학의 발전방향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호에서는 이재동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 및 한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협회(이하 한대협) 이사장으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방향성 및 한대협이 진행한 교육과정 개편 관련 연구용역 결과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교육 현장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갑작스러운 감염병의 유행으로 인해 모든 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이번 기회가 향후 교육 방향 및 방식의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소중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우선 비대면 방식이다보니 교육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심어졌으며, 하이테크놀로지와 결합된 다양한 비대면 강의방식도 개발·정착됨에 따라 오히려 강의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게 됐다. 코로나 이후에도 대면·비대면 강의를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적절하게 혼용하고, 나아가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새로운 강의 방식 등을 도입한다면 더욱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통의학의 선도국가로써 외국대학들의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곤 하는데, 시간·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모든 요청을 수락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활성화된 비대면 강의방식으로 인해 이같은 한계가 극복됨으로써 앞으로 한국 한의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Q. 취임 이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교육과정 개편이었지만, 아직까지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취임 전부터 교육과정 개편에 대한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1년이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갖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조율과정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100여차례의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이젠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마 교육과정 개편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정착된다면 학장이라는 보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교육과정 개편의 진행경과는? “최근 의학계의 교육 트랜드는 임상역량 중심, 수요자(학생) 중심이다. 우리 한의학 교육은 여기에 국내외 의학교육기준에 충족이라는 원칙을 하나 더 추가해 교육 개편을 추진했다. 교육과정 개편 과정 중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한의사가 왜 의학교육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임상현장에서 KCD를 사용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인인 만큼 충실한 의학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의대 교육의 큰 틀은 대략 임상 각과의 질환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기 전인 본과 2학년 때까지는 최소한 한의학적인 진단과 치료, 예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질병이 아닌 몸을 중심으로 인체를 진단·치료하는 한의학의 특성을 모두 교육해 적어도 환자를 보고 몸에 왜 그러한 증상들이 나타나는지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까지는 완료하는 것이다. 이후 본과 3학년 때부터는 정립된 한의학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양의학의 개념인 질병을 연계시킨 임상교육 진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한의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양의학의 개념까지 배우는 것은 자칫하면 학생 자신이 무슨 학문을 배우고 있는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의 교육은 제대로 된 한의학의 체계 속에 양의학을 융합시켜 환자를 치료해 나간다면 질병 치료에 보다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오히려 한의학의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러한 정립된 교육의 방식은 수업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오히려 이 시간을 진단기기 활용 등에 대한 교육을 보다 강화해 나감으로써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근거를 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Q. 대한한의사협회가 발주한 교육과정 개편 관련 연구용역을 한대협에서 수행했다. “한대협에서 ‘한의학 영역별 학습목표 및 표준교육안 개발’이라는 제하의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이 연구의 핵심은 교육과정 개편의 모델 제시 및 표준교육안 개발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개편 모델에서는 임상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임상실습 시간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 제시와 함께 3가지 원칙과 6가지 기준 아래 각 과목의 조정 과정 및 모델, 중복강의의 조정 방안, 각 주차에 따라 교육해야 할 학습목표를 상(한의사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지식 및 술기)-중(한의사로서 알아야 할 보통 지식 및 술기)으로 나눠 제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표준교육안 모델에서는 △한의학 입문 및 개요 △정상인체 △질병 △치료 및 예방 등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이수체계도를 제시, 각 카테고리에서 교육돼야 할 기초한의학, 기초의학, 인문사회의학 등 과목들을 연계해 제시하게 된다.” Q. 특히 각 대학마다 임상실습시간 확대에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교육 틀 안에서 임상실습시간을 확대하는 것은 모든 대학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한대협이 진행한 연구를 통해 임상실습은 병원에서만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방식의 임상실습 방안을 만들어 제안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기초와 임상을 연계하는 임상실습 방안을 만들기 위해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에서 오래 활동해온 김남일 전 경희한의대 학장에게 ‘인문사회의학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부탁드렸다. 앞으로 이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초와 임상을 연계하는 다양한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방제학과 한방병원 약제실을 연계해 실습하는 방안 및 재학생과 졸업생을 매칭시켜 실제 한의원 개원가에서의 임상실습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는 학부모협의회와 지역 보건소를 활용할 생각이다. 즉 다양한 직종을 가진 학부모들을 활용, 재학생들이 인턴 등의 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실제 사회적응능력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실습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더불어 보건소에서의 보건행정업무에 대한 체험은 향후 한의의료기관 운영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임상실습의 틀을 깨고, 재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한 방식의 실습을 제공함으로써 임상역량을 갖춘 한의사의 양성에 매진코자 한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교육과정 개편을 연구하면서 ‘표준변증진단법’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표준변증진단법은 국민들에게 한의학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인 만큼 연구기간 중 경희대 차원에서 진행해 보기도 했지만, 워낙 진단법이 다양하고 방대한 작업이라 결론을 맺지 못했다. 앞으로 각 대학은 물론 학회, 개원가 등 전 한의계 직역이 참여하는 연구가 진행돼 표준변증진단법이 도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한의과대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개선방안이 도출되고 활용되면서 한의학교육에도 새로운 희망을 엿보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한의대 교육과정 개선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도출돼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세계 인류의 질병 치료와 예방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의학의 미래를 꿈꿔 본다.” -
인류세의 한의학 <1>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화두’(話頭)의 변화는 흥미롭다. 변화하는 내용 자체도 그러하지만, 변화의 양상도 인상적이다. 2020년 초반까지 ‘4차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관련 언어들 즉, 빅데이터, 에이아이(AI) 등이 지면과 화면을 뒤덮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4차산업혁명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4차산업혁명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기보다는, 4차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하나의 화두가 급격한 방식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이제 관련 언어들, 즉 탄소중립, 인류세, 지구온난화, 친환경, 생태주의 등이 지면과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발간되는 일간지에서도, 기후위기에 관한 기사나 칼럼이 게재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드물 정도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인 코로나위기도 기후위기와의 연결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화두는 ‘빨리빨리’ 변화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근현대라고 부를 수 있을 지난 100여 년의 시간 동안 급격하게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주제의 빠른 변화는 예상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에서 ‘기후위기’로의 전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동안의 ‘경제발전’, ‘세계화’, ‘복지’ 등의 화두들이 더 잘사는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였다면,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변화는 ‘중요한’ 문제에서 ‘심각한’ 문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 심각함은 우리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다양한 종들을 절멸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함이다. 더 잘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 문제다. 그러므로 ‘4차산업혁명’에서 ‘기후위기’로의 변화는 ‘세계화’, ‘복지’에서 ‘4차산업혁명’으로의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이다. 기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인류세’(Anthropocene)이다. 인류세는 지구환경까지 변하게 하는 인류의 강력한 영향력의 시대를 지칭한다. 현세를 지칭하는 기존의 지질시대는 ‘홀로세’(Holocene)이다. 홀로세를 포함해 자연의 변화에 의해 지금까지 전개된 지질시대와 달리, 인간이 지질까지 변하게 하는 전대미문의 시대가 인류세이다. 땅에는 수많은 닭뼈들이 묻히고,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섬을 이루고, 대기 중에는 인간활동에 의해 과도하게 배출된 탄소가 흡수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시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문과 방송의 내용을 장악한 기후위기는, ‘갑자기’라는 부사를 무색하게 하는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종말적 징후의 시대는 정부, 기업, 단체, 조직, 학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을 맞닥뜨려야 할 주체에서 한의학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 글 시리즈는 <인류세의 한의학>이라는 제목 아래 기후위기의 시대에 한의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기후위기는 한의학과 거리가 먼 주제가 아니다. 우리 자녀 세대나 손자 세대가 경험하게 될, 우리 세대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차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다음 세대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아닐 수도 없다). 태평양 바다 건너 캘리포니아 산불로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한의학의 임상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당장, 기후 상승으로 인한 질병의 변화에 한의학은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暑)라고 하는 외감에 대한 노출의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또한 서의 정도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도의 강력함이라면, 그것이 몸과 질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본초와 약재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일부 약재 가격의 폭등이나, 혹은 아예 수급이 불가능한 약재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약성(藥性)이 기후·환경의 체화라면, 기후변화가 약성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와 관련해서 ‘인류세의 한약’에 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해야 하는 때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한의학이 수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은 기후위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논의의 장에서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의 근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관점과 차별화되는 다른 사유의 방식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단지 탄소세1)를 지불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제시되거나 다시 소환되는 인류세, 가이아(Gaia),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자연 개념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의 전통 사유에서 기원한 생각들, 인도 전통사상에서 유래한 관점들이 논의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사유를 간직하고 있는 한의학 또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할 말이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보다, “사시음양은 만물의 근본(四時陰陽者萬物之根本)”이라는 내경의 표현이 시의적절한 시대는 없었다. 기후위기는 사시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사시의 순조로운 흐름이 흐트러지는 위기이다. 종국에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로 사시의 흐름이 단절된다면, 만물도 근본을 잃을 수 있는 위기이다. 침묵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후위기 시대에 시의적절한 내용이 한의학에는 다수 존재한다. 그러한 내용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해야할 소명이 한의학에게는 있다.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의 문제는 고전이 쓰여질 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문제이고, 지금의 위기이다. 고전의 논의를 가져온다면, 어떻게 기존 논의를 지금의 위기 상황에 맞는 논의로 가져올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류세의 한의학>이라는 글 시리즈 제목에 이러한 모색의 의미를 담았다. 앞으로의 글들은 한의학에 내재한 동아시아의 사유를 다수 참고하겠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내용이 이미 그 사유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이 지금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현대의학이듯이,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준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세의 한의학>의 글들은, 기후위기는 한의학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 초유의 위기에 한의학이 어떻게 대처하고,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회자되고 있는 여러 논의 주제들을 가져올 것이다. ‘인류세’뿐만 아니라 ‘가이아’, ‘공생’, ‘쑬루세’(Chthulucene)2), 하나가 아닌 ‘자연’ 개념 등 최근 기후위기에 관련된 논의들을 호명하며, 그 논의들과 한의학의 내용이 갖는 관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그러한 논의는 기후위기의 최근 논의들과 함께 호흡하는 한의학을 위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최근 논의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 한의학의 사유가 가진 기여의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진료와 환자상담과 같은 구체적 상황에 있어서 기후위기 시대의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고찰할 것이다. 이 글 시리즈에는 공동저자들이 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한의사들, 그분들의 진료에 녹아 있는 한의학의 논리들이 이 글들을 준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므로 이 글은 현장의 임상가들과 같이 쓰는 공동 저작의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작성하면서도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와 같은 초유의 위기에 응대하기 위해서는 같이 토론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이 작은 지면에서나마 그러한 함께하는 작업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1) 탄소 배출에 부과되는 세금. 탄소 배출 억제 효과는 있을 수 있다. 2) 세계적 문화비평가이자 사상가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교수가 인류세의 대체 개념으로 제안한 용어이다. -
신미숙 여의도책방-21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1906년 제1호 등록 변호사를 시작으로 100년이 지난 2006년 1만명, 2014년 2만명 그리고 2019년 12월18일 3만번째 변호사가 탄생했다고 한다. 변호사 수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추세에 따른 업계의 어려움은 최근 몇 년간의 기사들만 훑어보아도 대강 짐작이 된다. 『변호사 2만명 시대 ‘우울한 자화상’(주간한국, 윤소영 기자, 2016.01.16.), 최저임금도 못 받는 ‘미생 변호사’ 쏟아진다(한국경제, 신연수 기자, 2019.01.29.), 얼어붙은 취업시장…‘허탈한’ 새내기 변호사들, 로펌 신규채용 축소…1명 모집에 무려 190명 몰려(법률신문, 한수현 기자, 2020. 09. 03.), 변호사시험 합격생 38% 곧장 취업 못해(조선일보, 김은정 기자, 2021.03.10.)』 국회에서 근무하며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를 포함해 국회사무처 일반직 공무원들과 300명의 의원실의 보좌관들의 다수가 변호사들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본업인 법조계를 떠나 이렇게나 다양하게 취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 3만명 시대의 엄중한 현실인 것이다. “형량 예측? 변호사와 15분 무료 상담하세요”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로톡’(LAWTALK)이라는 앱 광고를 보았을 때는 변호사 시장마저 플랫폼 산업의 아이템이 되는구나… 싶어서 여러 전문직 인력 시장의 예정된 미래라는 상상을 보태니 어둑어둑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로톡’에 대한 논란…전문직의 예정된 미래일까? 변호사 300여명으로 구성된 직역수호변호사단은 지난 2020년 11월, 로톡의 프리미엄 로이어 서비스는 광고가 아닌 변호사 소개이므로 이는 변호사법 위반이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을 했다. 그러나 2021년 8월 법무부는 “국민을 위한 리걸테크 서비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변화”라는 입장문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사 97%의 평판이 등록된 사이트로 원하는 법률서비스와 자신의 위치를 입력하면 이에 맞는 변호사들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의 아보(AVVO)와 변호사의 40%가 가입된 사이트로 이용자의 지역과 관심 분야 등에 따라 필요한 변호사를 소개하는 일본의 벤고시닷컴(bengo4.com)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변협은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를 전자상거래법과 표시광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결국 로톡은 9월30일을 끝으로 국내 최초 형량예측서비스를 출시한 지 10개월 만에 기존 법조계와 변호사단체의 압박에 서비스를 그만 두기로 했다. 법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변호사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AI 개발자와 변호사들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혼신의 노력을 쏟은 결과물이 일단은 다분히 한국적인 한계에 부딪혀 이러한 강제 종료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로톡과 자주 거론되는 ‘강남언니’라는 앱은 성형견적 애플리케이션으로 각종 성형 정보와 시술후기를 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형수술 정보와 병원광고를 제공하는 강남언니 등의 미용의료 플랫폼도 의료광고 사전 심의 대상에 포함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8월30일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는 규제 샌드박스 신속처리 절차를 신청했고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56조에 따라 강남언니의 비급여 가격 표기, 환자치료 전후사진 사용, 후기공유 등의 서비스는 합법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존 의료계의 압박을 이겨낸 강남언니에 가입된 의사들은 이미 2200명을 넘어섰고 힐링페이퍼 관계자는 등록 병원들에게 3단계의 의료광고 검수와 허위 정보 신고제 운영, 가짜 성형후기 방지를 위한 패널티 도입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 결과, 성형앱의 선두주자로서의 선점효과 역시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의계에도 추천앱 생긴다면 어떤 형태일까? 해외주식을 하는 분이라면 중국의 ‘핑안굿닥터’를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기업인 핑안헬쓰케어는 원격진료업계의 대표주자다. 디지털 헬쓰케어의 기본 시스템은 원격진료-온라인 처방-병원 예약-약 배달인데 의사수와 병원시설이 부족한 중국에서는 긴 대기시간으로 의료서비스의 만족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과감하게 온라인 처방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로서는 주로 만성질환자들의 관리와 처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코로나19의 대유행은 핑안굿닥터를 다양한 질환으로의 무한한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대학병원 수준의 협력 병원 2000여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1000여명이 의료진 그리고 자체 AI 진료 기술을 가진 핑안굿닥터는 무료 온라인 진단으로 고객들을 유입시킨 이후 유료 회원으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으로 현재의 유료고객은 3.5% 수준에 불과하지만 향후의 상승여력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로톡이나 강남언니가 전문직들을 구제하는 미래산업일지 혹은 착취산업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한의계에도 『21세기허준』(가칭)이라는 한방병원, 한의원, 한의사 추천앱이 생긴다면 그 앱은 어떤 형태일까 상상해 보았다. 한의학앱에 무료회원으로 가입해 체질 설문지를 작성하고 망문문절에 도움을 주는 생체정보들을 전송하면 10분만에 한의학적 진단을 내려준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야놀자나 데일리호텔에서 숙소를 고르듯이 지역을 고르고 세부적인 동네를 클릭하면 평판과 치료후기 댓글이 우수한 한의원을 1∼10개 추천해주는 시스템!! 동네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전국 단위, 시도별, 질환별, 전년도 우수회원 등급별 평판을 모두 볼 수 있고 별점을 많이 받은 한의사들의 순위가 1위에서 100위까지 좌라락 뜬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최종으로 초이스한 한의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순간 아나운서 지망생들이나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들 저리가라하게 뽀샵 제대로인 증명사진 옆으로 출신학교를 시작으로 석박사 취득 여부, 전문의 취득 여부, 한의원 개원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경력들, 수십여개의 소속학회, 한의협에서의 임원활동, 공중파나 종편 혹은 돈주고 나갔던 다양다종한 방송활동의 장면들, 저서, 역서, 주특기 질환, 주로 사용하는 침법(체침, 사암침, 팔체질침 등), 한약처방의 근거 이론(고방파냐, 후세방파냐, 사상이냐 등), 특이한 이력(미인대회, 몸짱대회, 마술대회, 수능수석 등)을 포함한 주요 특장점 등의 30여가지 항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한눈에 알아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최종적으로 이 앱의 유저는 결국 이 한의원을 방문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순서만 남아있다. 이런 비슷한 앱을 누군가가 진짜라도 만들까봐 갑자기 무서워지지만 유관 부처에서 “국민을 위한 안전한 한의학 정보제공 서비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변화”라는 입장문으로 이러한 앱의 합법성을 공식적으로 공인이라도 한다면 그 누가 도도한 시대의 강물을 거스를 수 있으리오?!! 3만명의 한의사 중 몇 명이나 회원으로 가입할런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강남언니의 성형견적처럼 한의원의 공진단을 포함한 보약처방과 일반처방 약값, 통증치료 패키지, 질환별 입원치료 패키지, 추나치료 프로그램, 비만을 포함한 각종 미용치료 프로그램 등의 견적을 비교해주고 이 앱을 통해 소개받은 한의원을 실제로 방문해 치료받은 치료후기를 유저들 스스로 영수증을 첨부해가며 온갖 자료들을 날마다 업데이트해 준다면 향후 이 앱의 회원, 비회원 한의사들에게는 각각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워낙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의 소지자들이 많은 동네라 “난 『21세기허준』 따위 안 할라네… 나는 원래 자연인이라네…”라는 고전적인 컨셉을 유지하는 분들이 그래도 여전히 다수일지… 언택트 시대의 확산…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는? 한의학앱에 실릴 개인 한의사 정보의 항목 중 하나가 출신대학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니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멀끔하게 생긴, 수트를 쫙 빼입은 보좌관으로 추정되는 분이 대기실로 들어와서 간호조무사에게 묻더란다. 여기 원장님,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간호조무사가 약간 머뭇거리니 원장님 출신 대학도 모르냐고 다그쳤다고 한다. 간호조무사가 메신저로 원장실 바깥에서의 상황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순간 약간의 기분나쁨이 스쳤으나 뭐, 그럴 수 있지.. 궁금할 수 있지.. 출신 대학이나 이력을 바깥에 기록해두지 않은 나의 잘못이지.. 라며 나가서 나의 출신 대학을 속시원하게 말해주자라고 다짐하며 원장실 문을 힘차게 열었는데 갑자기 본능적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경희대 출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였다. 왁스로 만든 올빽 머리에 의기양양하게 서 있던 그 분은 나의 대답에 약간 당황한 기색을 비추더니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진료실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이건 완전히 배배 꼬인 뒤틀린 심사 최절정의 고약한 소양인들이나 취하는 리액션인데 착한 소양인인 내가 그 순간, 왜 갑자기 경희대 한의대 못 가서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유치대마왕스러운 대답을 해 버렸을까?! 동신대 한의대라고 말해봤자 나의 사랑하는 모교를 그 사람이 모를 수도 있었을 일이고 ‘경희대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거야. 분명히 그랬을거야… 난 오히려 그 사람을 배려한 거라고…’라며 애써 자기합리화를 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묘한 껄쩍지근함이 퇴근길까지도 지속되었고 그날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그 보좌관을 마주했었던 순간을 반복해서 회상하며 후회와 부끄러움이 범벅된 감정을 토닥토닥 해야 했었다. - 지방대를 혐오하는 표현으로 대표적인 것은 ‘지잡대’라는 단어이다. 이는 ‘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졌다. 원래 지방 소재 대학 중 제대로 된 교육과 재정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일부 부실 대학을 가리켰지만 점차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소재 대학 전체, 나아가 서울 소재 학교를 제외한 전체 대학을 뜻하는 말로 범위가 넓어졌다. - 무신경하게 쓰는 지잡대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명문대 진학에 초점을 맞추는 입시 중심 교육 속에서 지방대는 ‘실패’ 혹은 ‘낙오’의 뜻으로 각인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지방대 문제와 관련해 학력차별금지법, 출신학교차별금지법 등 5개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학력, 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 출신 학교를 이유로 고용, 국가자격 등의 부여,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의 영역에서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한다”고 못 박았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 교육의 운영 원리라 할 수 있는 능력주의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제정임, 곽영신 엮음, 오월의 봄, 2021년 8월) 중에서… 2017년에 2만4560명이었던 한의사수, 해마다 700∼800명씩 증가한다고 감안하면 3만명 변호사 시대에 이어 3만명 한의사 시대도 멀지 않았다. 시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터질 듯한 한계상황은 늘 새로운 형태의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코로나는 언택트를 다양한 분야의 메인 코드로 안착시켰고 프라이버시와 편의를 중시하는 스마트폰 세대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기만 하다면 지금 이 순간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고 있을 것이다. 6개월도 남지 않은 대선 관련 여론조사도 면접원을 통한 직접 질문인지 ARS 자동응답기의 질문이냐에 따라 대통령 적합도와 당선가능성 높은 후보 1, 2위가 바뀌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컨택트와 언택트에 따른 감정의 동요의 폭이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직접 의사들을 면전에서 만나 문진을 당하는 것과 수만명의 환자들의 임상 데이터를 축적해 놓은 AI 닥터에게 보다 주체적인 위치에서의 환자들이 문항을 선택해가며 본인의 진단명을 탐색해가는 과정 사이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만족도의 차이는 어떨까? 또한 진단의 정확도는 어떨까? 로톡, 강남언니 그리고 핑안굿닥터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세상은 이토록 최첨단의 속도로 온라인, 오프라인 투트랙 경쟁대로로, 편리와 속도를 무기로, 해당 분야의 사업확대와 무한이득을 목표로 날아가는데 일개한의사인 나는 오늘도 그저 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을 대처하느라(치워내느라) 그저 바쁘기만 했을 뿐 그 이외의 어떤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의미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시선으로 살면서도 대붕의 시야를 가지고 싶다는 또한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라는 꿈과 기대가 있었는데 오늘따라 내가 맞닥뜨릴 미래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오늘과 비슷한 수준의 것이거나 그 이하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답답함을 느낀다. 진료란 환자와의 소소한 감정적 교류이자 공감의 예술 진료실을 가끔 들르시던 입법조사처 공무원 한 분이 8년의 국회 근무를 마치고 내년에 모 법원의 판사로 자리를 옮긴다고 인사를 하러 들르셨다. 늘 겸손하고 단아했던 그녀가 변호사 출신임을 이제야 알게된 것이다. 국회 탈출을 축하드린다 했더니 변호사로서 개업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법률 시장과 변호사업계의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를 언급했다. “저희 쪽도 다 장사라서요…”라며 말끝을 흐리길래, “김변님 쪽만 그럴라구요. 한의사들도 마찬가집니다. 지하철역 하나를 중심으로 그 지근거리에 동종업계 간판이 20∼30개 걸리잖아요. 진료도 잘 하고 호객행위도 잘 해야 겨우 먹고사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라며 그녀의 대화에 진심어린 공감으로 화답했다. 법원에는 국회에 있는 이런 진료실이 없어서 걱정이라며 그간 감사했다는 목례를 끝으로 다음번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마스크 상시 착용으로 비염도 일반 감기, 독감도 현격하게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암수술 이후 면역력 약화로 인해서 발생한 비염의 경우에는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만 더 불편해졌을 뿐, 코막힘에 이어 눈물까지 상시로 흐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환자를 최근에 상담하게 되었다. 이비인후과 약복용은 증상의 호전과 재발을 더 자주 반복시켜 컨디션만 더 나빠졌다고 하길래 주 3회 내원해 침 치료(비강 내 직접자침)와 소화기 치료를 병행해 보자고 말씀드렸다. 3주가 지난 오늘 다시 방문해 평소 같으면 비 오기 전후 비근 부위가 무겁고 답답해서 머리를 앞으로 숙이는 자세는 아예 취하지도 못했는데 머리도, 콧 속도 많이 가벼워져서 업무 보기가 훨씬 편해졌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많이 힘드셨을텐데 이렇게 나아지고 계시다니 제가 오히려 기쁘다고 환자분께 말씀드렸다. 역시 진료란 환자와의 소소한 감정의 교류이자 공감의 예술인 것이다. AI 닥터들이 우리 밥그릇 뺏기 전에 단디 붙잡자. 아직까지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우리의 영역인 것이다!!! -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3한을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1학년 본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 상황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에게 코로나19 이후 학업과 대외활동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추석이 막 지난 이맘때 생각나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시의 구절이다. 어느새 쌀쌀해진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왠지 오미자차를 머금은 듯 마음이 새큰달큰한 가을, 밤하늘에 걸린 둥그렇고 노란 산국(山菊)을 가만 보다 보면 그 시가 참 와닿는다. 모두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올해는 유독 그 시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대구한의대는 2021년 2학기 한의학과의 모든 수업을 중간고사 기간까지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그에 따라 모든 실습도 비대면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격일 교차 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1학기와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모습이다. 지난 학기에 학생들은 절반으로 나누어져, 이번 주에 월·수·금요일에 등교했다면 다음 주에는 화·목요일에 등교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요일에 하는 실습은 2주에 한 번만 진행되기도 했다. ◇코로나 대응에 한의학 주류 아닌 상황 아쉬워 본과 1학년의 해부학 수업도 그랬다. 학생들 중 절반과 나머지 절반이 번갈아 가며 같은 내용을 실습하다 보니 2주 동안 같은 강의를 반복했다. 당연히 학기 중의 시간이 부족했고 끝내지 못한 진도는 방학 때 보충수업으로 이뤄졌다. 실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은 이번 2학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초학 수업의 경우 학생들은 소량씩 포함된 절반 학기 분량의 실습 약재들을 각자 있는 곳으로 전달받아 실습하고 있다. 교수님의 약재 설명을 듣고 학생들이 각자 실습을 하는 수업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교수님과의 즉각적인 질의응답이 이뤄지기는 힘들다. 교내 행사들도 비대면으로 이뤄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월 24일 대구한의대는 학술대회인 홍의 학술제를 비대면으로 마쳤다. 기존에는 참가자들과 채점자, 청중이 모두 한 강의실에 모여 발표를 들었지만, 코로나가 유행한 작년부터는 참가자 중에서도 발표자와 심사위원들만 강의실에 있고 청중들은 실시간 온라인으로 발표를 들었다. 지정된 링크를 통해 발표를 들은 청중으로서, 여러 기술적 문제로 인해 발표 자료가 잘 안 보이거나, 질의응답이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학술제에 참가한 한 학우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답사 등의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백신 접종이 많이 행해지고 있는 요즘, 교내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접종을 완료했음을 ‘백신공결제’를 통해 실감한다. 대부분 백신을 맞고 1~2일 정도 발열, 근육통 등의 증상으로 일상생활에 짧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때 수업을 듣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심한 학생들은 접종일에 받은 ‘접종 내역 증명서’를 결석사유서와 함께 학교에 제출하면 결석했던 수업들의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루에 많게는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접종으로 수업에 결석하기도 한다. 필자도 9월 초에 잔여 백신을 신청하여 1차 접종을 완료했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는 요즘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과정을 쭉 보면서 코로나 대응에 한의학이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 한의대생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검사부터 백신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한의학이 도맡고 있는 부분은 극히 적어 보인다. 이는 앞으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또 다른 전염병 사태에도, 더 나아가 코로나 종식 후 일상을 되찾는 그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전염병 대응에 있어 한의학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필자는 한의학의 가장 큰 특징인 ‘보’(補)와 ‘대증’(對症)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방’ 하면 가장 흔하게 생각나는 보약을 통해 면역력을 증진하면 개개인이 병인에 대응하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만약 전염병에 걸렸다면 ‘대증’을 통해 환자 개인에 맞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백신 접종 이후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도 좋은 대책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근육통에는 ‘서근’(舒筋)약을, 발열에는 경우에 따라 열을 떨어뜨리기 위한 ‘청열’(淸熱)약을, 혈전 생성에는 ‘활혈거어’(活血祛瘀)약 등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의 치료를 더 구체화하고 현실에서도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의 치료 장점 활용해 코로나19에 대응해야 실제로 작년 초 대구한의대는 코로나19 한의진료센터를 운영했고 그 효과는 주목할 만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한의학도 충분히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야 환자들도 자연스럽게 한의 치료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의대생과 한의사분들 모두의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확진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요즘, 코로나 종식은 먼 미래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 노력한다면, 더불어 한의계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할 방안을 만든다면 언젠가 국화꽃은 피고 말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울음을 다 우는 소쩍새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새가 울어야 꽃이 핀다는 인과관계는 없다. 하지만 소쩍새 우는 봄이 지나면 여름이 되고 또 자연스럽게 가을이 되어 꽃이 피기에, 소쩍새는 자신의 봄을 잘 살아내면 된다. 한의계가 한의학의 장점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제 몫을 잘 해내다 보면 코로나 종식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의학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1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71년 1월5일 부산시한의사회에서는 『부산한의학회보』 제43호를 간행한다. 여기에는 대만의 중국침구의학회 吳惠平 이사장의 「鍼灸秘方」이란 제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의 주석에는 “본고는 중국침구 대가인 오혜평 박사가 지난 1970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동양의학학술대회에 참석 후 부산에 와서 강연한 것을 초한 것입니다”라고 설명돼 있다. 吳惠平(1916〜1992)은 대만을 대표하는 침구학자로, 1970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해 경희대학교, 한국의 침구학회, 부산시한의사회 등에서 6차례의 강의를 진행했다. 아래에 吳惠平의 「鍼灸秘方」의 내용을 소개한다. 1)中風 ①中風先兆期(제1기) △증상: 고혈압 △주치: 崑崙, 絶骨 灸三壯 △예방: 3개월마다 1회씩 施灸 ②중풍구급기(제2기) △증상: 뇌일혈 △주치: 行間, 百會, 人中, 合谷(양측) △주의: 시침시 사법이 많고 要得氣爲限 ③중풍치료기 △증상: 반신불수 △주치: 頰車, 合谷, 曲池, 地倉, 環跳, 風市, 足三里 △주의: 합곡, 풍시 양혈이 중요하니 마비반대측에 상기 양혈에 先鍼함. ④중풍후유기 △증상: 반신불수 후유증 △주치: 合谷, 曲池, 牽牛, 頰車, 行間, 足三里, 風市, 三陰交, 陽陵泉 △주의: 건강상태를 감안해 上記諸穴에서 교대적으로 시침해도 무방하며 痛處에 留鍼 15분 내지 20분 2) 인후염 △증상: 咽喉紅腫或壞爛 △주치: 合谷, 曲池 (이상 二穴에 필히 要得氣해야 효력이 발생하며 留鍼 5분간) △응용: 인후염에 열이 있을 때는 委中, 少商穴에 刺鍼出血케 함. 3) 위장병 △증상: 복통 △주치: 足三里 左右 一寸五分 刺 二分〜五分 留鍼 中脘 二寸 4) 풍습성요배통 △증상: 腰背疼痛, 躬曲難直 △주치: 委中, 腎兪, 腿上奇穴(第一穴 膝蓋上에서 二寸, 第二穴 第一穴에서 一寸五分, 第三穴 第二穴에서 一寸五分) 二分一三分要得氣 5) 풍습성견비통 △증상: 肩甲酸痛 不能擧手 △주치: 風市 (痛症反對側先鍼 一分 經過면 得效), 牽牛, 肩井 (要得氣) 6) 좌골신경통 △증상: 臀部痛至大腿及小腿足趾 △주치: 耳殼後便正中位痛症反對便先鍼 環跳長鍼으로 下向刺鍼 承山 風市. 初發症狀은 痛症이 즉시 진정됨. 옛말에 鍼之不宜는 灸亦宜之하고 灸之不能은 鍼亦能之云. -
[시선나누기-4] 사람의 없음, 유골단지의 있음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저자인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정적 1. 말이 부서질 때 비로소 우리는 정적을 듣는다. 2. 오직 문학만이 저 소리 없는 정적을, 소리 내는 말을 통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저 ‘노래할 수 있는 잔여’를 들을 수 있다. 1과 2는 같은 말이다. 같은 말인가? 3. 문학은 읽을 수 있는 것을 그것의 출처인 읽을 수 없는 것에게 되돌려준다. 1, 2, 3은 연결된 문장이다. 한병철은 파울 첼란을 인용해 이렇게 쓰고, 근원과 고통에 대해서 논한다. 4. 고통은 정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가 사유 안으로 침투하는 균열이다. ‘노래할 수 있는 잔여’는 고통을 이해하게 해주는 운(韻)이다. 1, 2, 3, 4를 차례로 읽고 나면 다시 1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읽을 수 없는 것. 정적. 그리고 우리는 정적을 듣는다. 내가 정적이라는 말에 머문 것은 마임이라는 형태의 연극 때문이다. 말의 부서짐. 말 없음. 말을 부서뜨리고 말하기. 혹은 말이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말하기. 우리는 마임을 보면서, 듣는다. ◇유골단지 선생은 유골단지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그 조용한 백자를 눈앞에서 마치 쓰다듬듯이 본 건 처음이었는데, 손을 뻗어 만져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골단지였다. 꺼려진다기보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 텅 빈 것이었지만 그것은 무대용 소품이 아니라 진짜 유골단지였다. 유골단지라는 말은 어쩌면 애매한 것이다. 단지에는 유골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것은 유골을 담아두는 용도로만 쓰이는 물건이다. 선생은 트렁크에서 빈 유골단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시멘트 포대를 뒤집어 시멘트 가루를 쏟고, 개어놓은 시멘트 반죽에 하듯이 흙손으로 가루를 평평히 고르고, 선생은 그 위에 새하얀 유골단지를 반듯이 앉혔다. 단지 앞에 향을 꽂아 세우고 향을 피우면, 무대에 객석에 향이 연기를 타고 조용히 퍼져나갈 것이다. 유골단지에는 유골이 없어도, 죽음은 이렇게 구체적이다. ‘인부는 땅을 고르고, 시멘트 가루를 붓고, 물을 붓고, 그 위에 빗돌을 놓았어. 수평을 맞추고, 두드리고, 수평을 맞추고, 두드리고, 다시 돌을 들어 물을 붓고, 수평을 맞추고, 자를 푹 꽂아 높이를 맞추고, 이만하면 되었지요? 물었어. 빗돌 아래는 시멘트, 시멘트 아래는 붉은 흙. 붉은 흙 아래는 유골함.’ 선생은 내가 쓴 문장들을 무대에 이렇게 옮겨다 놓았다. 저 단지 위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패티김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불 아니면 물 무대에서는 어떠한 화기도 취급할 수 없음. 공연장 내 화기 반입금지. 주최측에서 공연 중 일부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해왔다. 촛불을 켤 수 없으며, 향을 피울 수 없다……. 네 개의 막 중에서 두 개의 주요 장면이 사라질 판이다. 나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선생과 마주 앉는다. 문진이 낭송된다. 침을 시술하고, 뜸을 뜬다. 촛불을 켤 수 없으므로……. 바짝 깎은 머리에 상체를 드러낸 선생의 꿇어앉은 육신을 타고 오르는 흰 연기의 숙연한 장면을 만들 수 없다. 공연을 본 뒤 등신불이 연상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쑥뜸 냄새가 객석까지 퍼져서 앞서 피운 향냄새와 더불어 관람자들에게 ‘마치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남겼던 장면이다. 화가 나고 애가 탔을 선생은 결국 이렇게 뱉으셨다. “불 아니면 물이지.” 연륜이 묻은 주름진 웃음이 함께했다. 선생은 촛불을 놓던 자리에 맑고 커다란 물그릇을 놓고, 조명에 반사되는 물의 어룽짐을 무대에 커다랗게 옮겨놓았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향불을 꽂고 두 손에 향불을 들고 암흑 속에서 온몸으로 춤을 추던 대신, 붉은 알전구를 입에 물거나 들고 퍼포먼스를 했다. 하기 전에, 선생은 유골단지 안에 불 켜진 알전구 두 개를 미리 넣어두었는데, 무대의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르자 유골단지는 마치 그 안에 생명을 담은 듯이 은은한 빛을 냈다. 선생은 단지에서 두 개의 빛을 꺼내면서, 꺼내서 온몸으로 향불 춤을 추면서 얼마나 기뻤을까. “고통은 정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가 사유 안으로 침투하는 균열이다.” 생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로서의 정적으로 우리를 감싸고, 말이 부서지는 자리, 마임이스트의 몸부림에서 우리는 한 갈래의 정적을 보고 듣는다. -
암성 통증에 경피신경전기자극술의 지속효과 시간은?[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의 ‘근거중심한의약 데이터베이스’ 논문 중 주목할 만한 임상논문을 소개한다. 이지영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암센터 ◇KMCRIC 제목 암성 통증에 경피신경전기자극술(TENS)을 하면 몇 시간이나 갈까? ◇서지사항 He L, Tan K, Lin X, Yi H, Wang X, Zhang J, Lin J, Lin L. Multicenter, randomized, double-blind, controlled trial of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 for pancreatic cancer related pain. Medicine(Baltimore). 2021 Feb 5;100(5):e23748. doi: 10.1097/MD.0000000000023748. ◇연구설계 sham 대조군을 둔 participant-blind의 single blinded 1:1 parallel grouped design으로 통증 강도에 따라서 3그룹으로 층화 배정함. ◇연구목적 췌장암 환자 또는 간암 환자의 내장 통증(visceral pain)을 완화하는 데 TENS의 유효성을 sham control에 비교하여 평가하고자 함. ◇질환 및 연구대상 중국의 4개 기관에서 모집된 171명의 췌장암 또는 간암 환자로 암과 관련된 내장 통증(visceral pain)이 있고 최근 1개월 이내에 신경근 차단술(celiac plexus block)을 받은 적이 없으며 기대여명이 3개월 이상인 자 ◇시험군 중재 1) 시험군(n=84): T8부터 T12 척추에서 1.5cm 떨어진 곳과 RN12, 그리고 복부의 통처에 2/100Hz의 TENS 자극을 30분간 진행. 1일 2회 시행 ◇대조군 중재 2) 대조군: 같은 위치(T8부터 T12 척추에서 1.5cm 떨어진 곳과 RN12, 그리고 복부의 통처)에 같은 시간(30분) 동안 패치를 부착하되 전기 자극을 제거함. 1일 2회 시행 ◇평가지표 주평가변수: NRS를 바탕으로 한 통증 완화 정도를 percent change로 표현 치료 직후, 1시간, 2시간, 3시간 이후 및 1, 2, 3, 4주에 측정 부평가변수: 마약성 진통제의 소요량 감소 정도를 percent change로 표현 치료 직후, 1시간, 2시간, 3시간 이후 및 1, 2, 3, 4주에 측정 ◇주요결과 TENS를 시행 받은 직후 시험군은 77.9%의 통증 감소가 있었다. 이는 1시간 후 37.9%, 2시간 후 27.1% 그리고 3시간 후 8.3%로 줄어들었다. 대조군은 직후 25.3%가 줄어들었으나 1시간 후 26.2%, 2시간 후에는 98.7%, 그리고 3시간 후에는 128.1%가 증가했다. Baseline과 비교하였을 때 1주, 2주, 3주 시점의 양군 통증 정도는 유의한 차이가 있었으나 4주째는 유의하지 않았다(p=0.435). 진통제 소요량은 시험군에서는 5.6, 6.3, 6.7%, 대조군에서는 7.8, 8.1, 9.1%로 주마다 증가하였으며 양 군 간의 차이는 모든 시점에서 유의하게 차이 나지 않았다. 부작용 보고는 없었다. ◇저자결론 TENS는 췌장암 환자군에서 통증 감소에 유의한 효과가 있는 안전한 치료법이다. 거기에 더하여 비침습적이고, 거의 부작용이 없으며, 시행이 용이하고, 경제적이며, 순응도가 좋다. 빈도 및 강도, 시행 횟수의 변화를 통해 적합한 모델을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TENS는 암성 통증을 조절하기 위하여 미래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KMCRIC 비평 본 논문에 있어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는데, 먼저 저자들이 제시한 clinicaltrials.gov의 연구계획서(NCT03331055)와 비교해보았을 때 maximal한 계획서 상의 변경이 있었다. 36명의 모집인원을 171명으로 늘렸고 기관 수를 1개 기관에서 4개 기관으로 변경하였다. 중재는 PENS (percutaneous stimulation)과 TENS(transcutaneous stimuliaton) 군에서 TENS 군으로 축소하였고 선정/제외기준에 있어 췌장암 군에서 췌장암 및 간암 군으로 확대하였고, 전이성 병기에 대한 제외 기준도 제거했다. 이에 따라 논문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계획서에만 기재되어 있는 “치료를 3일간 시행한다”는 정보는 불확실한 정보로 간주된다. 논문 상으로는 1일 2회 30분간 치료를 시행한다는 정보는 있으나 실제 며칠간 시행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figure 1의 CONSORT에서는 제외된 사람이 total 83명이라고 서술하였는데 세부적인 인원을 더하면 154+26+3이라는 숫자가 맞지 않으며 아마도 사소한 오타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선정/제외 기준에 따르면 primary or metastatic pancreatic or liver cancer을 기준으로 선정하였고, baseline characteristics에는 해당 내용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사소한 절차를 통해 이중 맹검 또는 평가자 맹검을 동반한 피험자 단일 맹검의 디자인으로 설계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NRS의 해당 지표를 병행 보고하는 것이 가공된 데이터만을 보고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는데 직접 데이터는 보고하지 않은 점도 아쉬운 점이다. 통증 연구에서 흔히 지적되는 지표의 주관성은 어쩔 수 없지만 수용해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이런 방법론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에서 보여준 TENS의 유효성은 암성 통증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저자들이 기술한 바와 같이 췌장암이나 내장 통증을 나타내는 간암 환자군에 있어 적절한 수단을 통해 통증을 직접적으로 완화하거나 보조하는 수단에 대한 필요성은 늘 있어왔고 [1]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이나 거부감, 암성 통증에 있어서는 드문 문제기는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도 늘 제기돼왔다 [2,3]. 진행암 환자군을 대상으로 하였을 때 ‘연구자의 판단에 따라 cancer progression이 예상되면 제외한다’는 등의 제외 기준을 추가한 임상연구도 존재할 정도로 [4], 전이성 병기인지, 환자의 통증이 진행형(progressive)인지 등의 여부에 따라 4주 째의 추적 관찰 시점에서 통증 양상이 이질성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제다. 본 연구는 필요시 demography에 따른 subgroup analysis를 통해 조금 더 연구 결과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면 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도 있었으리라고 사료된다. ◇참고문헌 [1] Lu F, Dong J, Tang Y, Huang H, Liu H, Song L, Zhang K. Bilateral vs. unilateral endoscopic ultrasound-guided celiac plexus neurolysis for abdominal pain management in patients with pancreatic malignanc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Support Care Cancer. 2018 Feb;26(2):353-359. doi: 10.1007/s00520-017-3888-0. https://pubmed.ncbi.nlm.nih.gov/28956176/ [2] Hyun MS, Lee JL, Lee KH, Shin SO, Kwon KY, Song HS, Kim OB, Sohn SK, Lee KB, Rhu HM, Park GW, Shin DG, Lee JL. Pain and its treatment in patients with cancer in Korea. Oncology. 2003;64(3):237-44. doi: 10.1159/000069314. https://pubmed.ncbi.nlm.nih.gov/12697964/ [3] Patel JN, Salib M, Parala-Metz A. Best practices for opioid abuse screening in cancer patients. BMJ Support Palliat Care. 2020 Sep;10(3):306-309. doi: 10.1136/bmjspcare-2019-001950. https://pubmed.ncbi.nlm.nih.gov/31672756/ [4] Kim K, Lee S. Intradermal Acupuncture Along with Analgesics for Pain Control in Advanced Cancer Cases: A Pilot, Randomized, Patient-Assessor-Blinded, Controlled Trial. Integr Cancer Ther. 2018 Dec;17(4):1137-1143. doi: 10.1177/1534735418786797. https://pubmed.ncbi.nlm.nih.gov/30009652/ ◇KMCRIC 링크 https://www.kmcric.com/database/ebm_result_detail?cat=RCT&access=R202102046 -
회갑기념 강릉-인천 322km 마라톤 도전 후기 下서울 서초구 몸잘보는한의원 김삼태 원장 “힘들 땐 춤추듯이 가야돼” 100km에서는 갑장 소띠여자 정선이가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휴식처마다 만났다. 그녀는 횡단 9회 완주자이다. 61년 생으로 이번 회갑년도에 10회 기념 완주하려고 왔다. 61년 소띠 울트라마라톤 모임에는 전설의 마라토너들이 많다. 100kg 넘는 몸무게로 100km 마라톤 100회 완주한 동진이, 200회 완주한 여자 문정선, 부부울트라마라토너 춘근이 부부·허빈 부부 등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큰 전설들이 많다. 나는 늦게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초보라서 많이 모른다. 43명의 소띠 울트라마라토너들은 대부분 현역으로 달리고 있다. 2021년 횡단에도 8명의 소띠들이 참가했다. “힘들 땐 춤추듯이 가야돼. 달려지는 몸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인드 콘트롤을 하면 근육이 부드러워지거든. 힘들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 근육도 긴장돼서 달리기 어려워져.” 뛰는 속도로 걷는 정선이가 도움말을 준다. 멈추지 말고 눕지 말고 계속 가는 거야. 좋잖아. 우리 나이에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 그 자체가 행복이야. 100km지점에서부터 판단력이 흐려졌다. 둔내 시내를 걸어서 빠져나왔다. 황재고개를 넘어가면 된다. 이 고개는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다. 길은 편한데 날이 더워졌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지 않는다. 뛰면 땀이 너무 날듯해 고개까지 걸어갔다. 시계를 안 보면서 걸었으니 몸은 편했고 시간이 느려졌다. 내리막길에서도 더워 갓길에서 5분정도 누웠다. 다시 걸으려니 몸이 뻣뻣하다. “뭐해? 빨리 일어나 달려. 시간 없어. 뭐? 그만 할까해, 무슨 소리야, 일어나. 누우면 늘어지는 거야.” 혼이 나니까 영혼이 깨어났다. “먼저 가 있어. 가 볼게” 진행요원 영화에게 연락해 포기하지 않고 150km까지 늦지 않게 가보겠다고 했다. 125km까지 남은 시간 1시간 30분. 거리는 20km, 몸이 가볍다.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붙는다. 평소 훈련하듯 잘 나간다. 이렇게 막 뛰다가는 다음 구간에서 더 빨리 지칠 수도 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125km 횡성부터는 섬강 자전거길이니까 천천히 9분 페이스로 가도 넉넉할 것이다. 빠르게 달려지면 그냥 달려보자. 신나게 달렸다. 2시간도 채 안 돼 도착한 듯하다. 중간 중간 영화가 탄 진행차량이 나만을 위해 오고가면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본다. 콜라도 주고 물도 주면서 힘내서 가라고 위로해준다. 고맙다. 마지막 꼴찌주자인 나의 안전을 돌봐주는 것이다. 횡성시내에서는 에스코트까지 해면서 125km 지점까지 안내한다. 시내구간도 빠르게 달려 나갔다. 저녁 7시 25분쯤이다. 150km까지는 4시간 35분 남았다. 시간당 6km정도로 가도 넉넉할 듯 했다. 캄캄한 섬강 자전거길을 손전등 비추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몸이 따라주니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기도가 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기도하며 달려야 하는데, 생각들이 잠깐 스쳐 나오곤 했지만 밤길의 안내판을 찾는데 신경을 써야했다. 안내판이 고개 쪽으로 그려져 있다. 예상 밖의 길이다. 오르막을 오른다. 캄캄한 밤길 오르막을 한발 한발 내 딛는다. 150km, 당연히 도착할 수 있다고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올라갔다. 거기까지였다.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도전해봐야 한 발짝 더 진전할 수 있다” 코발트블루의 동해바다를 뒤로 하고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가는 내 발목과 무릎의 숨결을 느낀다. 나이가 뭣이고 흰머리가 뭣이며 주름진 얼굴이면 어떤가? 내가 내 몸뚱어리의 힘만으로 저 바다와 이 산하를 펄쩍펄쩍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골 깊고 한없이 너른 회색 갯벌 서해바다를 보려고 무려 146km를 밤낮없이 달리지 않았는가? 30시간 동안 달궈진 내 몸과 심장과 혈관은 평생 그 기운을 뿜어내며 살 것이다. 마라톤은 내 팔과 다리의 힘으로만 달린다. 322km 마라톤 역시 혼자 해내야 한다. 도움을 기대해서는 실패하기 쉽다. 홀로 완주하려고 할 때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다가온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가 완주의 행복을 갖는 것이다. 달리는 건 혼자라도 달리게 해 주는 사람들 덕택에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기쁘고 벅찬 마라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이 허락하고 응원하였으며, 대회 주최 측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멀리서 찾아와 응원해 준 친구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나는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지치고 시간에 쫒기는 다급한 마음으로 휴식처의 진행자분들께 짜증낸 적도 있다. 돌아보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많이 부족했다. 부족함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했다. 회갑 기념이기도 했지만 도전해봐야 나의 한계를 알고 한 발짝 더 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지켜봐 준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 올해 회갑기념 마라톤 여행은 강릉기점 146km 원주 돼지문화원 앞에서 멈췄다. 여기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점이다. 내년 진갑 기념 때는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여 322km 인천 정서진까지 잘 뛰어가는 나를 그려본다. -
맹탕 국감 아닌 진국의 국감 기대“코로나19의 효과적인 대처를 위해 한의사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등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 “혈액·소변 검사기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신설해야 한다”, “국립암센터·건보공단 일산병원·보훈병원서 한의진료 확대해야 한다.” 1년 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한의약을 육성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보건복지위 위원들이 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질의한 내용들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답변들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 등으로 귀결됐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국정감사 시즌이 돌입했다. 이미 지난 6, 7, 8일에 걸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대한 감사가 실시된데 이어 이번 주에도 13일 국민연금공단, 14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한국한의약진흥원,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감사를 받을 예정이다. 특히 이번 보건복지위 국정감사는 대한한의사협회 제44대 집행부가 첫 맞이하는 감사로써 내부적으로 한의약 보장성 강화, 한의 의료선택권 확대, 한의사 차별 개선, 한의 일차진료 참여 확대, 약무 관련 제도 개선 등 각 부문별로 개선 방안을 이끌어 내는데 집중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국정감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집행부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한의약 육성 방안 질문을 모두 꺼내 놓고, 실제 제도와 정책으로 반영된 것은 무엇이며, 지속적으로 검토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세심히 살펴 정부의 의료정책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이슈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실손 의료보험의 한의 비급여 보장, 한방물리요법의 ICT· TENS 건강보험 급여 적용,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 개선 등 한의계의 중요한 현안이 제기될 수 있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정감사의 핵심은 풍성한 지적만큼이나 실효적인 결실을 거두는데 있다. 따라서 국정감사에 임하는 각 보건복지위원들은 의욕적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 못지않게 지난해 자신이 지적했던 각종 문제점들이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를 반드시 점검해야만 한다. 그 이행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 관계부처에 조속한 개선 조치를 촉구하는 한편 새롭게 문제시되는 부분들을 지적해 맹탕 국감, 저질 국감, 호탕 국감이 아닌 진국의 국감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