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2 (월)
서울 서초구 몸잘보는한의원 김삼태 원장
“힘들 땐 춤추듯이 가야돼”
100km에서는 갑장 소띠여자 정선이가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휴식처마다 만났다. 그녀는 횡단 9회 완주자이다. 61년 생으로 이번 회갑년도에 10회 기념 완주하려고 왔다. 61년 소띠 울트라마라톤 모임에는 전설의 마라토너들이 많다. 100kg 넘는 몸무게로 100km 마라톤 100회 완주한 동진이, 200회 완주한 여자 문정선, 부부울트라마라토너 춘근이 부부·허빈 부부 등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큰 전설들이 많다. 나는 늦게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초보라서 많이 모른다. 43명의 소띠 울트라마라토너들은 대부분 현역으로 달리고 있다.
2021년 횡단에도 8명의 소띠들이 참가했다. “힘들 땐 춤추듯이 가야돼. 달려지는 몸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인드 콘트롤을 하면 근육이 부드러워지거든. 힘들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 근육도 긴장돼서 달리기 어려워져.” 뛰는 속도로 걷는 정선이가 도움말을 준다. 멈추지 말고 눕지 말고 계속 가는 거야. 좋잖아. 우리 나이에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 그 자체가 행복이야.
100km지점에서부터 판단력이 흐려졌다. 둔내 시내를 걸어서 빠져나왔다. 황재고개를 넘어가면 된다. 이 고개는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다. 길은 편한데 날이 더워졌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지 않는다. 뛰면 땀이 너무 날듯해 고개까지 걸어갔다. 시계를 안 보면서 걸었으니 몸은 편했고 시간이 느려졌다. 내리막길에서도 더워 갓길에서 5분정도 누웠다. 다시 걸으려니 몸이 뻣뻣하다. “뭐해? 빨리 일어나 달려. 시간 없어. 뭐? 그만 할까해, 무슨 소리야, 일어나. 누우면 늘어지는 거야.”
혼이 나니까 영혼이 깨어났다.
“먼저 가 있어. 가 볼게”
진행요원 영화에게 연락해 포기하지 않고 150km까지 늦지 않게 가보겠다고 했다. 125km까지 남은 시간 1시간 30분. 거리는 20km, 몸이 가볍다.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붙는다. 평소 훈련하듯 잘 나간다.
이렇게 막 뛰다가는 다음 구간에서 더 빨리 지칠 수도 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125km 횡성부터는 섬강 자전거길이니까 천천히 9분 페이스로 가도 넉넉할 것이다. 빠르게 달려지면 그냥 달려보자. 신나게 달렸다. 2시간도 채 안 돼 도착한 듯하다.
중간 중간 영화가 탄 진행차량이 나만을 위해 오고가면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본다. 콜라도 주고 물도 주면서 힘내서 가라고 위로해준다. 고맙다. 마지막 꼴찌주자인 나의 안전을 돌봐주는 것이다. 횡성시내에서는 에스코트까지 해면서 125km 지점까지 안내한다. 시내구간도 빠르게 달려 나갔다. 저녁 7시 25분쯤이다. 150km까지는 4시간 35분 남았다. 시간당 6km정도로 가도 넉넉할 듯 했다.
캄캄한 섬강 자전거길을 손전등 비추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몸이 따라주니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기도가 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기도하며 달려야 하는데, 생각들이 잠깐 스쳐 나오곤 했지만 밤길의 안내판을 찾는데 신경을 써야했다. 안내판이 고개 쪽으로 그려져 있다. 예상 밖의 길이다. 오르막을 오른다. 캄캄한 밤길 오르막을 한발 한발 내 딛는다. 150km, 당연히 도착할 수 있다고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올라갔다. 거기까지였다.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도전해봐야 한 발짝 더 진전할 수 있다”
코발트블루의 동해바다를 뒤로 하고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가는 내 발목과 무릎의 숨결을 느낀다. 나이가 뭣이고 흰머리가 뭣이며 주름진 얼굴이면 어떤가? 내가 내 몸뚱어리의 힘만으로 저 바다와 이 산하를 펄쩍펄쩍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골 깊고 한없이 너른 회색 갯벌 서해바다를 보려고 무려 146km를 밤낮없이 달리지 않았는가? 30시간 동안 달궈진 내 몸과 심장과 혈관은 평생 그 기운을 뿜어내며 살 것이다.
마라톤은 내 팔과 다리의 힘으로만 달린다. 322km 마라톤 역시 혼자 해내야 한다. 도움을 기대해서는 실패하기 쉽다. 홀로 완주하려고 할 때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다가온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가 완주의 행복을 갖는 것이다.
달리는 건 혼자라도 달리게 해 주는 사람들 덕택에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기쁘고 벅찬 마라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이 허락하고 응원하였으며, 대회 주최 측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멀리서 찾아와 응원해 준 친구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나는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지치고 시간에 쫒기는 다급한 마음으로 휴식처의 진행자분들께 짜증낸 적도 있다. 돌아보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많이 부족했다. 부족함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했다. 회갑 기념이기도 했지만 도전해봐야 나의 한계를 알고 한 발짝 더 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지켜봐 준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
올해 회갑기념 마라톤 여행은 강릉기점 146km 원주 돼지문화원 앞에서 멈췄다. 여기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점이다. 내년 진갑 기념 때는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여 322km 인천 정서진까지 잘 뛰어가는 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