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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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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1>

연재를 시작하며…
기후 위기의 시대, 한의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김태호.jpg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화두’(話頭)의 변화는 흥미롭다. 변화하는 내용 자체도 그러하지만, 변화의 양상도 인상적이다. 2020년 초반까지 ‘4차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관련 언어들 즉, 빅데이터, 에이아이(AI) 등이 지면과 화면을 뒤덮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4차산업혁명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4차산업혁명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기보다는, 4차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하나의 화두가 급격한 방식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이제 관련 언어들, 즉 탄소중립, 인류세, 지구온난화, 친환경, 생태주의 등이 지면과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발간되는 일간지에서도, 기후위기에 관한 기사나 칼럼이 게재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드물 정도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인 코로나위기도 기후위기와의 연결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화두는 ‘빨리빨리’ 변화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근현대라고 부를 수 있을 지난 100여 년의 시간 동안 급격하게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주제의 빠른 변화는 예상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에서 ‘기후위기’로의 전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동안의 ‘경제발전’, ‘세계화’, ‘복지’ 등의 화두들이 더 잘사는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였다면,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변화는 ‘중요한’ 문제에서 ‘심각한’ 문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 심각함은 우리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다양한 종들을 절멸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함이다. 더 잘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 문제다. 그러므로 ‘4차산업혁명’에서 ‘기후위기’로의 변화는 ‘세계화’, ‘복지’에서 ‘4차산업혁명’으로의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이다. 

기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인류세’(Anthropocene)이다. 인류세는 지구환경까지 변하게 하는 인류의 강력한 영향력의 시대를 지칭한다. 현세를 지칭하는 기존의 지질시대는 ‘홀로세’(Holocene)이다. 홀로세를 포함해 자연의 변화에 의해 지금까지 전개된 지질시대와 달리, 인간이 지질까지 변하게 하는 전대미문의 시대가 인류세이다. 땅에는 수많은 닭뼈들이 묻히고,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섬을 이루고, 대기 중에는 인간활동에 의해 과도하게 배출된 탄소가 흡수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시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문과 방송의 내용을 장악한 기후위기는, ‘갑자기’라는 부사를 무색하게 하는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종말적 징후의 시대는 정부, 기업, 단체, 조직, 학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을 맞닥뜨려야 할 주체에서 한의학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 글 시리즈는 <인류세의 한의학>이라는 제목 아래 기후위기의 시대에 한의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기후위기는 한의학과 거리가 먼 주제가 아니다. 우리 자녀 세대나 손자 세대가 경험하게 될, 우리 세대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차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다음 세대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아닐 수도 없다). 태평양 바다 건너 캘리포니아 산불로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한의학의 임상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당장, 기후 상승으로 인한 질병의 변화에 한의학은 대비해야 한다.

 

김태호1.jpg

 

예를 들면, 서(暑)라고 하는 외감에 대한 노출의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또한 서의 정도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도의 강력함이라면, 그것이 몸과 질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본초와 약재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일부 약재 가격의 폭등이나, 혹은 아예 수급이 불가능한 약재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약성(藥性)이 기후·환경의 체화라면, 기후변화가 약성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와 관련해서 ‘인류세의 한약’에 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해야 하는 때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한의학이 수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은 기후위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논의의 장에서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의 근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관점과 차별화되는 다른 사유의 방식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단지 탄소세1)를 지불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제시되거나 다시 소환되는 인류세, 가이아(Gaia),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자연 개념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의 전통 사유에서 기원한 생각들, 인도 전통사상에서 유래한 관점들이 논의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사유를 간직하고 있는 한의학 또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할 말이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보다, “사시음양은 만물의 근본(四時陰陽者萬物之根本)”이라는 내경의 표현이 시의적절한 시대는 없었다. 기후위기는 사시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사시의 순조로운 흐름이 흐트러지는 위기이다. 종국에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로 사시의 흐름이 단절된다면, 만물도 근본을 잃을 수 있는 위기이다. 침묵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후위기 시대에 시의적절한 내용이 한의학에는 다수 존재한다. 그러한 내용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해야할 소명이 한의학에게는 있다.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의 문제는 고전이 쓰여질 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문제이고, 지금의 위기이다. 고전의 논의를 가져온다면, 어떻게 기존 논의를 지금의 위기 상황에 맞는 논의로 가져올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류세의 한의학>이라는 글 시리즈 제목에 이러한 모색의 의미를 담았다. 앞으로의 글들은 한의학에 내재한 동아시아의 사유를 다수 참고하겠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내용이 이미 그 사유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이 지금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현대의학이듯이,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준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세의 한의학>의 글들은, 기후위기는 한의학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 초유의 위기에 한의학이 어떻게 대처하고,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회자되고 있는 여러 논의 주제들을 가져올 것이다. ‘인류세’뿐만 아니라 ‘가이아’, ‘공생’, ‘쑬루세’(Chthulucene)2), 하나가 아닌 ‘자연’ 개념 등 최근 기후위기에 관련된 논의들을 호명하며, 그 논의들과 한의학의 내용이 갖는 관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그러한 논의는 기후위기의 최근 논의들과 함께 호흡하는 한의학을 위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최근 논의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 한의학의 사유가 가진 기여의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진료와 환자상담과 같은 구체적 상황에 있어서 기후위기 시대의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고찰할 것이다.

이 글 시리즈에는 공동저자들이 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한의사들, 그분들의 진료에 녹아 있는 한의학의 논리들이 이 글들을 준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므로 이 글은 현장의 임상가들과 같이 쓰는 공동 저작의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작성하면서도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와 같은 초유의 위기에 응대하기 위해서는 같이 토론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이 작은 지면에서나마 그러한 함께하는 작업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1) 탄소 배출에 부과되는 세금. 탄소 배출 억제 효과는 있을 수 있다.

2) 세계적 문화비평가이자 사상가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교수가 인류세의 대체 개념으로 제안한 용어이다.

김태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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