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2026년, 대한희귀난치질환학회 제4대 회장이라는 소임을 맡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학문적으로는 하나의 전환점 위에 서 있다는 책임감을 먼저 느낍니다.
우리 학회는 ‘희귀난치질환’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건 한·양방 유일의 학회입니다. 이 명칭은 단순한 타이틀이 아닙니다. 이는 아직까지 해결능력이 부족한 질환군을 한의계가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동시에 의료의 사각지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간 1·2·3대를 이끌어 오신 김성철 전임 회장님(원광대 한의과대학 학장)께서는 프리모 시스템 연구를 비롯해, 루게릭병과 같은 중증 난치성 질환 진료를 통해 학회의 학문적 기초를 단단히 다지셨습니다. 연구 중심의 토대 위에서 학회는 ‘가능성’을 증명해 왔습니다. 또한 대한희귀난치질환 학회지 2025년판은 “Primo Special”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학문적 깊이와 연구적 성취면에서 저는 여전히 배움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임상의로서,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자리에서 학회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희귀난치질환은 특수 클리닉의 영역이 아닙니다. 진료실에서 우리는 원인 불명의 말초신경병증, 자가면역성 신경질환, 진행성 근위축, 만성 감각이상과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많이 마주치게 되는데, 환자들은 여러 진료과를 거친 뒤,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는 말을 듣고 한의원을 찾습니다. 그 순간 한의사는 ‘보완적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마지막 책임자가 되기도 합니다.
대한희귀난치질환학회를 임상 책임의 학회로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올해 서울과 부산에서 6회에 걸쳐 개설한 “말초신경 전문가과정”은 조기에 등록 마감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기 강좌가 아니라, 한의사들이 희귀난치질환을 더 이상 추상적 개념으로 두지 않겠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학회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첫째, 임상 중심 학회로 나아가겠습니다.
희귀난치질환은 이론만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실제 증례, 장기 추적 관찰, 치료 반응의 기록, 실패 경험까지도 공유되는 학회가 되어야 합니다. 진료실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학문으로 연결하고, 학문이 다시 임상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둘째, 말초신경계 질환을 전략적 연구 축으로 설정하겠습니다.
한의 임상에서 비교적 접근성이 높고, 환자 수요가 분명하며, 기능 회복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명확한 지표를 설정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말초신경계 질환입니다. 통증, 감각 이상, 근력 저하, 근위축 등은 환자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분야에서 표준화된 진단 접근, 치료 프로토콜, 예후 평가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학회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셋째,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2월28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는 상징적 날이기도 하며, 우리나라는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희귀질환의 예방, 진료 및 연구 등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시행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학회 역시 학술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희귀난치질환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연구자로서의 권위보다는, 임상의로서의 책임을 앞세우고자 합니다. 학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 회복이라는 구체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은 본래 난치와 허약, 만성과 복합병태를 다루는 데 강점을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그 강점을 보다 구조화하고, 근거화하고, 공유해야 할 때입니다. 임상에서의 고민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다시 환자의 삶을 바꾸는 선순환을 만들겠습니다.
대한희귀난치질환학회가 한의계 내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학회, 가장 치열하게 환자를 고민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