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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6일 (화)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4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4

숨은 교육과정을 아십니까?
“한의학교육이 정말 인간 중심 의료와 전문직업성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교육과정 개편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교육 문화 자체를 돌아봐야”

한상윤 교수님(새 사진).jpg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교육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집중한다. 어떤 내용을 교육과정에 포함할 것인지, 어떤 교수법을 사용할 것인지,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가 교육 논의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의학교육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왔다. 학생들은 정말 우리가 가르치려는 것만 배우는가.


 의학교육에서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afferty라는 학자가 의학교육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 개념은 공식 교육과정과 별개로, 조직 문화와 제도, 인간관계 속에서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가치와 규범을 의미한다. 그는 숨은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전문직 사회화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쉽게 말해, 교육자가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이 학교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학습


 의학교육에서 숨겨진 교육과정을 분석한 최근 연구들은 학생들이 공식 강의보다 실제 교육 현장의 분위기와 상호작용 속에서 전문직업성을 강하게 학습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공감 능력, 의사소통 능력, 윤리적 민감성, 팀워크, 임상적 판단 태도와 같은 요소들은 공식 교과목보다 숨은 교육과정을 통해 더 강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JMIR Medical Education에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에서도 숨은 교육과정은 단순한 비공식 학습이 아니라 학생들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 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환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학생은 단지 의학 지식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환경 속에서 학습한다는 뜻이다.


 의학적 지식만 갖춘다고 의료인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숨은 교육과정이 중요하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동료와 협력하는 방식,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자세 같은 것들은 교과서 몇 장이나 수업만으로는 익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교육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체화된다.

 

한상윤 교수님2.png
AI 생성 이미지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학생 문화를 형성


 그러나 숨은 교육과정은 긍정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연구에서 숨은 교육과정은 위계적 문화, 질문을 억제하는 분위기, 감정 소진을 당연시하는 문화, 냉소적 직업관을 재생산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숨은 교육과정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환자 중심 의료를 말하면서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환자를 질환명으로만 지칭한다거나 효율적 처리의 대상으로 다룬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학생의 질문을 번거로운 것 혹은 수업 흐름을 방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학생들은 어떤 태도를 내면화하게 될까. 협업을 강조하면서 다른 직역에 대한 편견 섞인 언급이 자연스럽게 오간다면, 학생은 그것을 현실의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예민한 관찰자라 할 수 있다. 교수의 강의 내용을 받아 적는 동시에, 그 강의 내용이 실제 행동과 일치하는지를 본다. 환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지, 학생의 서툰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른 직역을 언급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존중을 잃지 않는지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종종 강의 내용보다 더 오래 남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숨은 교육과정이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끼리 공유되는 문화 역시 강력한 교육적 힘을 가진다. 2015년 『의학교육논단』에 실린 「의과대학의 잠재적 교육과정과 학생문화」에서는 숨은 교육과정을 단순히 교수 개인의 무심한 태도로만 보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학생 문화(student culture)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선배의 행동을 모방하고 집단의 암묵적 규칙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식적으로는 협력과 성찰을 강조하더라도 실제 학생문화가 경쟁과 침묵을 장려한다면,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가치일 수 있다. “이 과목은 이렇게 공부하면 된다”는 학습 전략뿐 아니라, “질문은 괜히 튀는 행동이다”, “실수는 들키지 않는 것이 낫다”, “힘든 것은 원래 참는 것이다” 같은 암묵적 메시지들도 학생 문화 속에서 전해진다. 공식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가치와 학생 문화가 충돌할 때, 학생들은 종종 후자를 더 현실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숨은 교육과정은 한의학교육에 중요한 화두


 이러한 숨은 교육과정은 한의학교육에도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된다. 한의학은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환자의 개별적 맥락을 중시하는 철학 위에 서 있다. 


그 발전 과정에서 진단과 치료의 기술만이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의료인의 품성 또한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한의학교육은 이러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면, 공식 교육과정뿐 아니라 숨은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그러한 가치가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을까.


 교육자는 흔히 강의안을 통해 교육을 설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오로지 강의를 통해서만 배우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보인 태도, 조직이 용인하는 문화, 선배 집단이 공유하는 규칙까지 모두 교육이 된다.


 한의학교육이 정말 인간 중심 의료와 전문직업성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교육과정 개편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교육 문화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만큼,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 필요하다. 강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지만, 교육 환경 속에서 학생이 반복적으로 경험한 태도와 문화가 더 강한 교육 효과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은 교육과정은 이름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향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우리가 가르치지 않았던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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