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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23일 (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1)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1)

부산광역시의 한의사 權五震의 세계 일주 여행
“1968년 한의학 세계 전파의 길을 떠나다”

김남일.jpg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權五震(1899∼1968)은 1899년 경남 마산시 진전면 오서리에서 출생한 후에 큰 뜻을 품고 日本으로 유학을 떠나 1919년에 日本 東京藥學校를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차별로 인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는 1920년 조선으로 귀국한 후 醫生免許를 취득하게 되었고, 이듬해에 경남 진주시의 일반성면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여 30년간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다. 그는 1947년 미군정청으로부터 限地醫師 면허를 받아 醫師도 겸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산부인과에 능력을 발휘하여 그의 손으로 받아낸 아기들만도 수백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의 삶의 철학을 집약해 놓은 것이 1959년 回甲을 맞아 親知들의 祝文과 祝詩 그리고 그의 글을 모아 놓은 문집 『三省家誡』이다. 여기에서 “三省”을 權五震은 “收身千金, 淸心寡慾, 交友常慎”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을 필자 나름대로 번역을 한다면 “몸을 천금처럼 소중히 거둠, 마음을 맑혀 욕심을 적게 함, 친구와 사귐에 항상 신중히 함”의 세가지 덕목일 것이다. 

 

그가 『三省家誡』에서 제일의 훈계로 삼는 것은 “臨淵羨魚는 不如退而結網이니라” 즉, “못에 다달아 고기를 욕심내기만 하는 것은 빨리 물러가서 그물을 뜨기만 같지 못하느니라”이다. 이 훈계는 權五震이 일본의 동경으로 가서 민족 차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上野公園不忍池에서 古人이 읊은 구절을 보고 子孫之誡로 삼고자 결심하여 집안의 훈계로 삼게된 내력이 있는 것이다.


김남일.png
1968년 7월 1일자 한의사협보에 나오는 권오진 선생 세계 일주 여행 관련 기사.

1968년 7월 1일 간행된 『한의사협보』(현 한의신문) 제39호에는 권오진 선생이 세계 일주의 장도에 나섰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당시 70세의 고령이었으며 1968년 당시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 국제 정치적 상황 등의 어려움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장도에 오른 것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몇 년 전에는 동남아시아를 순방하고 온 이후로 다시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부산시한의사회 김경수 회장이 한의사협보에 자료를 보내주어 기사화되게 된 것이다. 


권오진 원장은 미국 달라스시에서 개최되는 라이온스클럽 연차대회 참석차 6월 17일 오후 8시에 기차편으로 서울로 출발하였다. 그가 출발하는 부산시 기차역에는 부산시한의사회 회원 50여 명과 詩友同志 30여 명이 집합하여 축하의 화환을 증정하였고, 평안히 돌아오시라는 기원의 의미에서 만세삼창을 우렁차게 불러주어 성대한 환송을 하였다고 한다. 


권오진 선생의 이번 여행에서 미국 주요 도시와 8개국 및 구라파 각국과 동남아시아 약 12개국을 순방시찰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부산역에서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했다. 


“세계 여행의 선도의 역을 할 것이니, 여러 회원께서도 나를 따라 우리 한의학의 세계 진출에 노력하시기를 원한다.”

김경수 부산한의사회 회장은 이러한 권오진 선생의 말씀을 통해 “선생이 귀환하시며 세계 각국의 의학계 실태를 소상히 들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앞으로 우리 회원의 세계 여행이 자주 있으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라고 감회를 밝히고 있다. 


 

권오진 선생의 여행의 의의에 대해서 김경수 회장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서구에서 우리 동양 한방의학을 연구하고 또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이므로, 선생께서는 기회가 있는대로 한방의학의 신묘한 특수성을 충분히 계몽하시리가 믿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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