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14년 전 캄보디아로 생애 첫 해외 봉사를 떠난 적이 있다. 당시에 느꼈던 ‘작은 나눔이 주는 커다란 충만함’은 지금의 나를 다시 스리랑카라는 낯선 땅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기가 됐다.
“멀고 먼 이 나라에 와서 큰 도움을 주어서 고마워요. 당신의 삶에 복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빌게요”
진료소 마지막 날,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맞잡고 볼에 따스한 입맞춤을 건네던 할머니 환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맑고 깊은 눈빛과 함께 건넨 인사는 “아유보완(Ayubowan)”, ‘당신의 삶에 장수와 평안의 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이 싱할라어 인사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단순한 안부를 넘어 상대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기도와도 같았다.
그들의 진심 어린 기도는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이 일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한의학도로서 참여한 이번 첫 봉사는 사실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료소에 방문한 환자들이 건네는 순수한 신뢰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배워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WFK-KOMSTA 스리랑카 한의학해외의료 봉사, 실체적 가치를 전달하다.
3일간 운영된 갈레(Galle) 진료소에는 총 1,078명의 환자가 방문하여 한의학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내가 담당한 진료실에서만 262명의 여성 환자를 보았는데, 현지의 특징적인 질환 양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만성화된 건선 환자들이었다. 스리랑카 특유의 고온다습한 환경 탓에 병변 부위가 진균 감염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고, 이미 어둡게 착색되고 두껍게 각화된 병변을 가진 환자들이 많았다.
이승언 단장님께서는 병변의 현상보다 그 근본 원인을 정확히 보고 판단할 것을 강조하셨다.
단장님의 진료를 보조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진균 감염 환자들에게 자운고를 처방하시면서 별도로 유황 가루를 구해서 사용할 것을 지도하신 장면이었다.
유황은 항균 효과가 탁월하면서도 현지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재료라는 점에서, 지속성 있는 치료를 위한 최적화된 처방이었다.
단장님의 현지 맞춤형 처방에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떠나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환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는 최선의 치료가 진정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의자(醫者)가 되고 싶었던 나의 마음에 따뜻한 등대의 불빛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WFK-KOMSTA 한의학 학술 세미나 with 스리랑카’, 스리랑카 임상 데이터로 한의학의 유연한 가치를 확인하다.
이번 봉사 여정의 정점은 콜롬보 코리아 클리닉에서 개최된 ‘WFK-KOMSTA 한의학 학술 세미나’였다.
세미나는 침구 수업을 수료한 현지 아유르베다 의사 약 30여 명을 대상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나는 이승언 단장님의 ‘환자 유형을 진단하는 침 치료법’ 강의를 영어로 통역하며, 갈레 진료소에서 3일간 축적한 262건의 임상사례가 현지 의사들에게 어떻게 실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한의학이 진정 ‘살아있는 의학’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단장님의 강의는 설진(舌診)과 특정 경혈 자침 전후의 복부 촉진(腹診) 변화를 통해 사상체질을 감별하는 프로토콜을 주요 메시지로 전달했다.
사상체질 감별이 중요한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변하지 않는 '선천의 정(精)'을 파악하고, 신체를 생리적 방향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핵심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태음인이 1% 미만이고 양인(태양인·소양인)이 40% 이상이라는 스리랑카 현지의 놀라운 체질 분포 데이터는 현지 의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고온다습한 환경을 고려하여 비경(脾經)의 공손(SP4)혈 자침 시 나타나는 유의미한 효과와 더불어, 스리랑카인 한정으로 관찰되는 체질별 설진 포인트(태양인의 어혈성 자반 경향성, 소양인의 Crack이 많은 혀, 태음인의 옅은 분홍색 혀)를 진단 프로토콜에 포함하여 공유했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살아있는 데이터에 눈을 빛내며 몰입하는 현지 의사들을 보며 한의학의 유연한 확장성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이번 경험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한의학의 유연함’이었다. 한의학은 환자가 발 디딘 기후와 문화적 맥락에 맞춰 끊임없이 변주하며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의학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에서의 시간은 앞으로 어떤 한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나는 환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최선의 치료를 통해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자 한다.
스리랑카 봉사지에서 보낸 시간은 몸은 고된 과정이었지만, 마음은 충만해졌다.
그 시간들을 차분히 지나오며 스스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얻었다.
이번 봉사에서 마주한 한의학의 가능성을 마음 한구석에 잘 간직하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나눔의 현장에 참여하며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스리랑카에서의 기록은 그 담백한 진심을 향한 나의 발걸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이정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