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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7일 (수)

내게 한의학이란? 한의학의 가능성을 찾는 연구자의 성장 기록

내게 한의학이란? 한의학의 가능성을 찾는 연구자의 성장 기록

손주희 학생
(가천대 본과4년·한의혜민대상 장학증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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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희 학생

(가천대 본과4년·한의혜민대상 장학증서 수상)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한 한약을 만들 수 있을까?

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질문입니다.

120ml의 한약 팩을 들고 다니는 일, 한 번에 여러 알의 환약을 삼키는 불편함은 저에게도 익숙한 고민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 역시 “비싸고 먹기 불편해서” 한의치료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사람들이 한의치료를 더 쉽게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스스로 질문하게 됐습니다.

 

한약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연구

 

예과 시절 들었던 한의학원리론 수업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의치료가 국민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제도권 진입과 과학적 근거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건강보험 내에서 보장성을 높여야 가격 장벽이 낮아지는데, 여기에 과학적 근거 생산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배우게 됐습니다.

동시에 동양철학적 개념으로 설명되는 한의학을 현대 연구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본초학 수업에서는 한약이 쉽게 ‘작고 간단한 형태’로 바뀌지 않는 이유를 배웠습니다.

천연물 기반이기에 용량이 많고, 군신좌사의 배합 구조가 오랜 기간 사용되며 검증되어 왔기 때문에 성분과 비율을 임의로 줄이거나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한약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저에게 남아 있었고, 이 질문은 결국 본초학교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초학교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4년간 일하면서 여러 정부 기관 과제에 참여하였고, 특히 PCOS와 면역 연구는 제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연구 기획부터 소재 선정, 동물실험, 실험 결과 분석, 논문 작성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주저자 논문이 SCI급 저널에 게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동안의 시행착오와 노력들이 떠올라 감사함과 뭉클함을 함께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의학의 특성을 어떻게 연구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의학의 중요한 강점은 증후군 개념을 기반으로 한 맞춤치료라는 점입니다. 같은 질환이라도 기혈양허, 습담조체, 풍열 등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치료를 제공할 수 있고, 한약 역시 여러 성분이 다양한 표적에 작용하기 때문에 여러 증상을 동시에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연구에서는 난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첫째, 한의학의 변증 개념을 어떻게 생리학적 모델과 연결할 것인가.

둘째, 다성분 구조의 한약에서 어떤 성분이 핵심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밝힐 것인가.

그래서 저는 연구를 설계할 때 “한의학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실험인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면역 연구에서는 허로·기허·혈허 개념과 생리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동물모델을 찾기 위해 문헌을 여러 차례 검토했고, 교수님과 수차례 회의를 나누며 다듬었습니다.

연구실에서 그 모델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꼼꼼히 비교하고, 예비 실험을 반복하며 세부 조건을 맞춰 갔던 과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PCOS 연구에서는 한약 처방 중에서 핵심 본초 조합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안드로겐 생합성, 인슐린 저항성 등 현대적 병태생리를 기준으로 소재를 선정하되, 단일 본초군과 복합 본초군을 비교해 조합이 만드는 상승효과를 확인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한의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네트워크 약리학과 AI 등의 방법론을 활용해 분석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연구 확장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면역 분야 후속 연구로, 한약 성분의 분획별 특성과 면역 활성의 차이를 탐색하는 방법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분의 성질에 따라 생리·면역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한약의 작용 기전을 이해하고, 더 나은 조합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장기적으로 한약의 효능을 최적화하고 표준화하는 데 의미 있는 방향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손주희 장학생1.JPG

 

한약의 미래를 여는 기술들

 

한약은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형 연구를 통해 첩약을 분말, 엑기스, 젤 등 다양한 형태로 바꿔 복용 편의성을 높일 수 있고, 분획별 효능 비교나 조합 연구를 통해 핵심 본초만 남겨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천연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조합해 만든 복합 천연물 제제가 의약품으로 개발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런 성분 조합 약물은 작용기전을 설명할 수 있고 제형과 용량이 표준화되어 있어 천연물 기반 약물이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면역·성장·암과 같이 일부 분자 경로를 공유하는 질환군에서는 특정 적응증에서 효과가 확인된 한약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또 HPLC와 같은 분석기술을 이용하면 주요 성분을 규명하고 품질을 표준화할 수 있어 한약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와 기술을 통해 ‘더 먹기 편하고, 효과가 좋고, 품질이 관리되는 한약’이라는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바뀌어야 연구가 확장됩니다

 

한약 개발은 연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국가 연구사업 참여가 더욱 확대돼야 하고, 더 많은 사업이 열릴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의사가 개발한 천연물 약물을 한의사가 처방하는 사례도 많아져야 합니다. 약사법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에서 기존의 ‘생약제제’와 ‘한약제제’ 구분이 실무적으로 완화된 것은 한의약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천연물 기반 치료제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이 생겼는데, 이 역시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연구와 경험 속에서 찾은 나

 

저는 연구를 통해 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또 연구 과정에서 임상적 질문은 책상 앞이 아니라 환자 앞에서 생긴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임상에서 환자분들을 직접 만나고, 그 경험을 다시 연구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4년간 연구와 학업을 병행하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를 의심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약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한약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과정은 저에게 늘 즐거움이었습니다.

혹시 한의대에 입학한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저 같은 학생이 있다면, 다양한 활동에 직접 부딪혀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연구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열정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실 교수님들도 많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도전하다 보면 스스로의 흥미와 적성을 의외의 순간에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연구 외에도 여러 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중랑구청에서 한방의료 봉사활동을 하며 의료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고, 오히려 제가 더 큰 에너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한의약진흥원의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K-MEX와 전국한의학학술대회 같은 박람회에도 꾸준히 참석하며 한의학 연구와 산업의 흐름을 가까이서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 연구 활동은 ‘한약을 더 나은 약으로 만들고 싶다’는 평범한 질문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이 연구로 이어지고, 연구는 다시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결정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한의학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근거와 연구로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연구실 선배들과 동료들과 교수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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