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이제원 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한의학이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고 생명 활동의 조화를 돕는 데 탁월하다면서,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물 의존을 줄이고 환자의 근본적인 건강 회복을 이끄는 일차의료 주치의로서의 생생한 임상 기록을 공유해 나갈 예정이다.
“셀 수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중요한 모든 것을 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브루스 캐머런(William Bruce Cameron)이 그의 저서 『비공식 사회학』에 남긴 문장이다. 현대 과학은 환원주의적 접근을 통해 인체를 ‘셀 수 있는 영역’으로 분해하며 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 ‘의료의 기계화 및 인간 소외’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혈액 검사 결과,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해요. 식단 조절과 운동을 통해 해결해 보려 했지만, 식욕 조절이 잘 안됩니다.”
35세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환자는 20대에 시행한 건강 검진에서 2cm 크기의 간낭종이 발견되어 추적 관찰을 하고 있었다. 최근 추적검사에서 약 4cm로 측정되었다는 소견을 들었고, 이에 관찰을 조금 더 자주 하게 됐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내원 약 6개월 전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고, 지질저하제 복용을 권유받았다. 일단 약물을 처방받지 않고 식단과 운동을 통해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원 약 2주 전 시행한 검사에서 수치는 더 상승했고, 의과 의료기관의 내과 진료에서 약물 복용을 다시 권고 받았다고 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약 2주 전 혈액 검사 결과를 살폈다. Fasting Glucose 71mg/dL, HbA1c 5.7%, Total Cholesterol 245mg/dL, Triglyceride 84mg/dL, HDL 67mg/dL, LDL 161mg/dL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환자는 뒷목 뻣뻣함, 식욕 조절 곤란, 잦은 배뇨, 상체 열감, 만성 피로, 생리불순 등 수치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증상을 복합적으로 호소했다.
이 병력 청취 내용을 바탕으로 체성분 검사, 혈액 검사, 연속혈당측정검사(CGM), 상복부 초음파 검사 등 도구를 활용하여 ‘셀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객관적인 검사를 시행했다.

그림 1. 포괄적 개입에 따른 연속혈당측정검사(CGM) 상 외래 혈당 프로필(AGP) 비교
좌측(Pre-Treatment): 평균 혈당 92.2 mg/dL, CV 22.2%로 전반적인 평균 혈당은 정상 범위였으나 상대적인 혈당 변동성이 관찰됨.
우측(Post-Treatment): 평균 혈당 77.5 mg/dL, CV 13.2%로, 혈당 변동 폭이 감소하고 최고 혈당이 낮아지는 양상을 보임. 다만 70 mg/dL 미만으로 측정된 시간은 증가하여, 평균 혈당 및 변동성 감소와 함께 저혈당 범위 노출 증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
CV, Coefficient of Variation; IQR, Interquartile Range, 사분위수 범위(25~75% 백분위수); Tx, Treatment, 치료.

그림 2. 복부 초음파 검사상 관찰된 간의 낭성 병변(Cystic hepatic lesion)
(A) 우측 늑골 하 스캔(Right subcostal scan): 간 우엽 하단에서 뚜렷한 경계선과 posterior acoustic enhancement를 동반한 무에코성 낭종(anechoic cyst)이 관찰됨. (병변 크기 4.64 × 3.34 cm)
(B) 종단면 스캔(Longitudinal scan): 동일한 간낭종의 종단면 영상. (병변 크기 3.89 × 4.01 cm)

그림 3. 체지방 감소 과정에서 관찰된 LMHR(Lean Mass Hyper-Responder) 유사 지질 패턴 및 지표 간 추세 비교
약 17주간의 포괄적 개입에 따른 대사 지표 변화. 상단 패널에서 LDL은 Baseline 대비 감소하지 않고 치료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상승한 후 치료 종료 시에도 Baseline보다 높은 수준을 보임. 반면 하단 패널에서 TG/HDL 비율은 0.5~0.7 범위로 유지되었으며, 체지방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함. 이러한 지질 패턴은 저탄수화물•케톤생성 식단을 유지하는 일부 사람에서 보고되는 LMHR의 지질 패턴과 유사함.
※ LDL은 Friedewald equation을 적용하여 산출함.
그 결과, BMI 25.4 kg/m²로 정상 범위를 초과한 상태였으며, 혈당 변동계수(CV) 22.2%로 확인됐다(그림 1). 혈액 검사에서는 Total Cholesterol 232mg/dL, Triglyceride 41mg/dL, HDL 73mg/dL, Calculated LDL 151mg/dL였다.(표 1)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간 우엽 하단에 직경 최대 약 4.6cm 크기의 무에코성 낭종이 관찰됐다.(그림 2) 환자의 舌質은 淡紅하고 齒痕이 관찰되었으며, 舌苔는 白•厚했다. 脈象은 沈•滑•弱•細했다. 舌淡紅•齒痕•脈弱細는 氣虛를, 舌苔白厚•脈滑은 濕痰의 병리적 특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층위의 정보를 종합하여 한의학의 전체론적 관점에서 ‘肝氣不足證’과 ‘濕痰證’으로 辨證 진단했다.
첩약을 기반으로 생활 습관 교정을 포함한 ‘포괄적 개입(Comprehensive Intervention)’을 시행했다. 지질저하제의 복용은 권고하지 않았다. 약 17주간의 치료 후 체지방률은 40.3%에서 31.6%로 감소했고, HbA1c는 5.3%에서 4.8%로 감소했다. HOMA2-IR은 치료 초기 0.94에서 0.35까지 감소한 후 다소 상승했으나, 치료 종료 시에도 0.83으로 Baseline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체중과 체지방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HbA1c와 HOMA2-IR이 개선되는 과정에서도 Total Cholesterol과 Calculated LDL은 감소하지 않고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표 1, 그림 3) 단일 지표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약물치료 대상으로 해석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표 1. 포괄적 한의 치료 과정에서 관찰된 체성분 및 주요 대사 지표의 변화
약 17주간의 포괄적 개입에 따른 환자의 데이터 변화. 체지방량과 인슐린 저항성(HOMA2-IR)이 뚜렷하게 개선되었으며, TG/HDL 비율은 전 기간 0.5~0.7의 낮은 수준으로 유지됨. 체지방량 및 인슐린 저항성 지표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LDL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은 LMHR(Lean Mass Hyper-Responder)에서 보고되는 지질 패턴과 유사한 양상으로 관찰됨. 이는 LDL 단일 지표만으로 치료 과정의 대사적 변화를 판단하기보다 체성분, 혈당 조절, 인슐린 저항성, TG/HDL 및 전체적인 심혈관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성을 보여줌.
체지방량과 인슐린 저항성 지표가 개선되는 동안 LDL이 오히려 높게 유지되는 이러한 양상은, 최근 저탄수화물•케톤생성 식단을 유지하는 일부 사람에서 보고되는 LMHR(Lean Mass Hyper-Responder)에서의 지질 패턴과 유사하다. LMHR은 낮은 TG, 높은 HDL, 상대적으로 높은 LDL이 함께 나타나는 지질 패턴으로 설명되며, 이를 체지방 감소와 에너지 대사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질 에너지 모델(Lipid Energy Model)로 설명하려는 가설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LDL 상승이 장기적인 심혈관 위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임상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슐린 저항성과 동맥경화성 이상지질혈증의 대사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TG/HDL 비율이 0.6에서 0.5로 낮아졌고, CGM에서 평균 혈당과 혈당 변동 폭이 감소한 점 등은 환자의 대사 상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다.(그림 1)
따라서 당시 확인된 임상 정보와 전반적인 대사 상태를 종합하여, LDL 상승만을 근거로 지질저하제 복용을 즉시 권고하기보다, 환자의 체성분, 혈당 조절, 인슐린 저항성, TG/HDL 및 전체적인 심혈관 위험도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치료 종료 후 환자는 BMI가 정상 범위에 도달했고, 체지방률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뒷목 뻣뻣함, 잦은 배뇨, 상체 열감, 만성 피로 등 처음 내원 시 호소했던 증상 대부분이 개선되었다.
LDL이라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단, 이 숫자가 환자의 전체적인 대사 상태와 심혈관 위험을 설명하는 유일한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환자의 체성분, 혈당 변동성, 인슐린 저항성, 생활 습관, 증상 및 전체적인 심혈관 위험도를 함께 살펴보면서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접근일 수 있다.
의학의 표준 지침에서는 LDL을 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한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는 이 수치만으로 환자의 모든 건강 상태를 설명하기 어려우며, 환자의 나이, 생활 습관, 동반 질환, 가족력 및 전체적인 심혈관 위험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과 진료란 단순히 검사지의 특정 숫자 하나를 교정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약물을 처방하는 행위가 아니다.
중요한 모든 것을 다 셀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며, 환원주의 과학이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하거나 사소하게 취급하는 “셀 수 없는 영역” 속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본질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한의사가 현대 과학의 도구를 활용하여 “셀 수 있는 영역”을 능숙하게 평가하면서도 그 결과를 환자의 증상•생활 습관•체질적 특성 등과 함께 전체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숫자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환자의 삶과 건강을 함께 바라보는 의학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