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진료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료변호사협회(이하 의변)는 지난 26일 서울변호사회관에서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관련 대법원 전합판결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미영 의변 의약품의료기기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발제자로, 한홍구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과 김진환 대한영상의학회 법제이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 한의사들, 현대 진단기기에 대한 전문성 충분
먼저 발제를 맡은 김경수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진단용 의료기기를 진단의 보조목적으로 사용할 때에 관한 것으로, 진단용 의료기기라도 그 외의 경우나 치료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까지 이번 대법원 판결의 판시내용이 직접 적용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진환 법제이사는 “초음파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초음파 진단기기는 서양의학을 기반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홍구 부회장은 “인터넷 등에 보면 이번 한의사 초음파 관련 대법원 판결 사건의 당사자인 한의사가 오진해 해당 환자가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들이 간혹 보이는데, 재판 전 단계에서 검사는 의료과실 내지 업무상과실치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했고 해당 환자가 한의원 내원 당시 산부인과에도 방문해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을 한 바 있다”며 “법원에서 논의가 된 부분은 그와 별개로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한의사의 업무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였으며, 작년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진료했더라도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한홍구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한 부회장은 이어 “초음파 진단기기 등 의료기기를 사용하게 되면 진단의 객관화를 이룰 수 있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 부회장은 “현재 한의사들은 대학에서 예과 1년∼본과 2년 총 4년 동안 약리학·해부학·생리학·조직학·예방의학·법의학·생화학·진단학·방사선학 등 많은 자연과학, 기초의학을 학습하고 이는 국가고시에도 포함돼 있는 영역”이라며 “졸업 후 진료 현장에서도 환자들에게 설명의무와 주의의무를 다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연과학, 기초의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한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된 진단기기를 사용하는데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 부회장은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 대한민국의 환자들이 서양의학 치료를 받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효과가 없을 때 한의학은 그러한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있다”며 “건강과 생명은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치료 기회를 한 번 더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물론 한의사들의 그러한 치료에는 매우 막중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의료 중첩영역,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한홍구 부회장이 질문하고, 발제자였던 김경수 변호사가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부회장은 “의료인은 그 대상이 사람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진찰·진단·치료 등 업무 영역에 있어서 중첩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대 의료 기술 내지 도구가 급격하게 다양화되고 있으므로 그 중첩영역도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 변호사는 “법적으로 한 번 허용된 영역은 다시 돌리기 어렵다고 본다”면서 “이번 한의사의 초음파 허용 대법원 판결도 있었지만, 적어도 형사법적 관점에서 보면 즉 무면허의료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관점에서 보면 중첩영역은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고 답했다.
이어 한 부회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갈수록 환자 본인이 셀프 측정할 수 있는 진단기기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셀프 측정 진단기기들이 많아지는 것이 국민들의 건강관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김 변호사는 “결국 데이터를 최종 분석하는 것은 의료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최근 스마트워치에서 심박동을 체크하는 것처럼 평상시 건강을 관리하고 위험시 경고하는 기능을 하는 셀프 진단기기들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물론 이러한 셀프 진단기기가 의료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부회장이 셀프 측정 진단기기를 한의사들이 의료기관 안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김 변호사는 “금번 한의사의 초음파 허용 대법원 판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의 진료와 연결된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부회장은 진단 영역에 있어서 한의사가 본인이 진찰한 환자에게 기존의 ‘어혈요통’, ‘담음요통’ 식의 진단명이 아닌 ‘요추의 염좌 및 긴장’, ‘상세불명의 추간판장애’ 등과 같은 진단명을 작성해 진단서를 발급하는 것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질의했다.
김 변호사는 이에 “한의사는 한의 진단명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양의 진단명을 사용하는 것은 전원 조치 등 필요한 경우에 최종 진단이 아닌 의증의 형태로 사용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재 대한민국 한의사들은 지난 2009년 7월 통계청에서 공고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한의)’ 고시에 의거해 2010년부터 의사와 동일한 상병명으로 진료 기록을 하고 진단서를 발급하고 있다.
황건순 대한한의사협회 총무이사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관한 황건순 대한한의사협회 총무이사는 “1990년대 대한민국에 초음파 진단기기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함께 연구 목적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왔다”면서 “대표적으로 1995년 한의사가 출간한 초음파 진단에 관한 서적이 지금도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 총무이사는 이어 “전문의나 일반의에게 기대하는 주의의무의 수준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고, 시설이 더 좋은 대학병원 의사와 지역 의원급 의사에게 기대하는 주의의무의 수준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며 “지역 의원급 의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문의와 지역 의원급 한의원에 근무하는 한방부인과 전문의가 자궁 등 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암 등 중요한 질환을 놓치고 전원 조치를 안할 확률이 차이가 날 것이라고 보시는지 발제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질의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결국은 개인별 숙달 내지 숙련도가 중요할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