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석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한의학정책연구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 분과자문위원
치열했던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활동이 한창이다. 인수위는 선거 과정 중에 제안되고 발표된 공약 등을 다듬고, 보완해서 향후 5년 임기 동안 시행될 국정과제를 설정하는 곳이다.
우리 한의사 입장에서는 향후 보건의료정책과 한의 관련 현안과 정책들이 새정부 국정과제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인수위 사회복지문화 분과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큰 그림 부재와 의과 위주의 편중된 정책 설계 등으로 인하여 보건의료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대한민국 보건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몇 가지 개인적인 의견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미래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큰 방향과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자.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새정부 보건의료 정책은 정치방역 논란 등 기존 정부 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심층 검토하고, 향후 또 다른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제대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한의사라는 의료인력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의 참여가 원천 봉쇄되었다가 한의원들의 선제적인 참여로 겨우 문이 열려 신속항원 검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일부터는 코로나19 확진자 대면진료관리료가 신설되면서 한의의료기관 수가 등의 세부내용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참여할 수 있음에도 의사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한 차별적 제도 시행과 의과의 방해로 인하여 늦어지게 된 것이다.
팬데믹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활용 가능한 보건의료 자원을 총동원하고, 각 자원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국민 건강을 지켜낼 수 있도록 방역체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고민이 없이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특정 직역의 독점적 방역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또 비대면 진료와 원격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유독 의료에서만 예외다. 지금과 같은 보건의료는 비효율, 고비용의 구조다. 효율적인 치료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환자들을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있다. 화상을 통한 원격 진료, 비대면 진료 확대로 국민들을 더 적극적으로 케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의료법 전면 개정 및 종별 독립법 제정이 필요하다.
현행 의료법은 과거의 기준으로 제정되어 현재의 급변하는 의료환경과 의료에 대한 시대적·국민적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기존 의료체계와 내용의 비현실성과 비합리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 전반에 관한 상위법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의, 의사에 의한, 의사를 위한 의사 기득권 보호법이나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의사 중심의 편중, 불공정 체계이자, 의사 독점을 보호하고, 의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의사 독점 플랫폼이다. 운동장도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없다.
또 대한민국의 유일한 성역이다. 약사들은 의약분업을 이뤄내고 독립했고, 최근에는 간호사들의 독립법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의사들의 독립은 요원하다.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의사들과 보건복지부 의료정책 담당자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또 현행 의료법 체계로는 미래 보건의료 환경을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팬데믹 상황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정치권 로비를 통해 현행 의료법을 계속 유지, 고수하고 싶겠지만 이제 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의료법은 어떤 형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새정부의 철학인 공정과 상식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의료법 전면 개정을 포함한 의료법 체계에 대해 인수위에서 보다 적극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의계 입장에서는 공존과 상생의 틀을 유지한 채 의료통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의 공공의료인력 확충이라는 대안으로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학제 통합 논의는 출발선의 의도가 불순하다. 진정한 공생을 위한 제안이면 모르겠으나 자칫 현재 한의사 역할을 제한하는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의료통합을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 형식의 대타협으로 마스터플랜과 로드맵에 따라 단계적,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 공공의료기관 한의과 설치를 통한 협진 강화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해가야 한다.
셋째, 건강보험 체계 효율화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및 재정 위기 대비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케어의 실상은 건보재정의 불건전성만 확대되었다. 3.1조원을 투입해서 건보 보장률을 62.2%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20년까지 3년간 2조 6천억 원을 투입했음에도 보장률은 1.5% 올리는데 그쳤다. 또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퇴행성척추질환에 대한 MRI 검사 건강보험 적용은 향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의 무차별적 급여화 후유증으로 건보재정의 예측성은 불확실해졌고,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면서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또 의사 중심의 기존 틀에서 보장성만 확대하다 보니 직역 간 격차가 점점 확대되어, 직역 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직역 간 상생 발전을 외면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한마디로 의사 퍼주기나 마찬가지였다.
기존 불필요한 보장성 부분을 대폭 수정하는 등 문재인 케어와 차별화된 국민 중심, 휴먼 중심의 윤석열 케어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예방 중심의 일차의료,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의료 확대를 통한 만성질환 관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넷째, 공공의료 부분에서 한의과의 차별은 시정되어야 한다.
법으로 규정된 국립암센터 한방과 설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 않다. 세계 5대 암 치료기관으로 선정된 미국의 세계적인 암치료센터인 엠디앤더슨(MD Anderson Cancer Center), 메이요 클리닉(The Mayo Clinic)과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는 통합의학프로그램을 2000년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국민의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공익기관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도 한방과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 외 국립교통재활병원, 국립경찰병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과는 반대되는 행태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한의사가 차별 없는 의료 환경에서 보건의료의 한 축으로서 당당하게 진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섯째, 한약신약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한의약 육성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은 8조 달러다. 우리나라는 0.12조 달러(1.5%), 한의약은 0.056조 달러로 고작 0.07%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약신약이 개발될 수 있게 법제도 선진화와 더불어 한의약과 첨단과학이 결합한 스마트 한의약 R&D사업에 집중 투자하여 한의약 신기술이 개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토종 한약재를 한의약적 특성에 따라 우수하게 재배, 가공하는 기반을 구축하고, 독성과 안전성,유효성 및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신속평가 기술 개발 등이 필요하다.
허준 선생이 편찬한 《동의보감》은 전란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선조의 의지, 즉 국가의 보건정책에 따라 편찬된 책이다. 이는 애민·위민정신에 입각한 민본정치의 구현이자, 한국인에 맞게 치료 처방을 표준화·규격화·실용화한 책으로 조선의학의 독립선언이었다. 이런 앞선 경험과 전통을 지닌 한의학을 발전시켜 글로벌 의료시장에 진출하여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공유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는 지원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