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직장인 김 모씨(46)는 최근 헌혈의집을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헌혈 전 실시하는 전자문진(헌혈기록카드) 항목에 ‘최근 6개월 이내 침술이나 부항(사혈)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마침 김 씨는 허리가 좋지 않아 최근 2~3개월 전 한의원을 자주 내원해 치료를 받았던 터였다. 이에 그는 “해당 항목에 체크를 하게 되면 헌혈 참여가 불가한 것이냐”고 간호사에게 물었지만, “해당 항목에 체크하더라도 헌혈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보통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침의 굵기가 평균 0.25mm에 불과한 것으로 아는데 6개월 전 침 치료나 부항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해당 항목이 왜 존재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서 “해당 항목에 대한 수정 작업이 빨리 이뤄져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진항목 개선 건의에도 ‘묵묵부답’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헌혈 참여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원활한 혈액 수급을 위해서는 헌혈기록카드 상 문진항목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및 대한적십자사, 일선 헌혈의집 등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이내 침술이나 부항(사혈) 시술 여부’를 묻는 항목이 헌혈 전 실시하는 전자문진 항목에서 여전히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한의협이 지난 1월 원활한 혈액 수급을 위해 헌혈기록카드 상 문진항목 개선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에서는 아직까지도 문진항목 수정이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의협은 헌혈 전 전자문진 항목에 ‘최근 6개월 이내 침술이나 부항(사혈) 시술 여부’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어 ‘6개월 이내’라는 문구를 ‘일주일 이내’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공문을 발송했다.

이와 관련 한의협은 현재 출혈이 없는 부항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당일 헌혈 참여가 가능하고 일회용 도구를 사용한 침술 및 부항(사혈)치료를 받은 경우는 치료일로부터 3일 후, 한약재 추출물을 주입하는 약침치료를 받은 경우는 치료일로부터 7일이 지나면 충분히 헌혈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1회용 사용여부와 관계없이 6개월 이내 ‘침술, 부항(사혈)’ 시술 여부를 별도의 항목에서 체크하도록 되어 있어 헌혈을 제한하는 형태로 인식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유사행위인 의과 ‘주사’의 경우 똑같이 인체 내 약물 투입을 목적으로 하고 침술 및 부항(사혈)보다 더욱 침습적인데도 ‘1주일’로 구분돼 있다. 침습적 행위를 포함하는 모든 치과치료 행위에 대해서도 ‘1개월’로 표기돼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역시도 접종일로부터 7일이 지나면 헌혈이 가능하고, 확진자도 완치 후 4주가 지나면 헌혈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이진호 한의협 부회장은 “현재의 헌혈기록카드 문진항목은 전문 의료인의 판정기준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감염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의료기관의 의료행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가 혈액 수급관리에 지장을 줄 수 있어 문진항목에 대한 조속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코로나 여파로 국내 혈액 보유량 ‘경고등’
한편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헌혈자가 대폭 줄어들면서 국내 혈액 보유량은 계속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만성화된 혈액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코로나19로 헌혈량이 매우 부족합니다’라는 내용의 동절기 안정적 혈액수급을 위한 대국민 헌혈 동참 안내문자까지 발송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확산세가 지속된 지난달 헌혈자는 16만명으로 지난해 21만8000명 대비 약 25%가 감소했다.
그 결과 대한적십자사 혈액보유현황에 따르면 14일 오후 기준 혈액보유량은 3.4일분으로 ‘관심’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2022년 1월초 7.6일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 토막 이상이 줄어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