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中國의 中醫藥雜誌의 刊行

[한의신문] 중국에서 중의약 관련 학술잡지가 간행된 것은 1904년부터로 잡는다. 이 시기에 간행된 잡지의 수량은 500여종에 달하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다채로운 편이다. 특히 1930년대에 전성시기를 맞았다고 평가된다.
중의학술잡지는 1935년 송대인, 심경범증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中西醫分野가 315종, 西醫分野가 178종, 中醫分野가 137종이며, 16개 省에 걸쳐서 간행되었다.
그 대표잡지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하 趙洪鈞 편저, 『近代中西醫論爭史』, 安徽科學技術出版社, 1989를 참조함)
① 『紹興醫藥學報』: 1908년 6월 何廉臣, 裘吉生이 紹興에서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중의약 관련 역사상 최장의 학술잡지이다. 紹興에서 출판되다가 1922년 12월부터 杭州로 옮겨서 출판하게 되었고, 잡지명도 『三三醫報』라고 바뀌었다. 裘吉生이 주편이 되었고 月刊에서 旬刊으로 바뀌었다. 『紹興醫藥學報』는 두 개의 방면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처기(1922년 이전)에는 이 학술잡지가 중의계의 학술교류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대다수 중의계 명가들은 이 잡지에 원고를 투고하였다. 張錫純같은 인물의 수많은 저작들은 이 잡지에 투고된 바가 있다. 여기에 투고된 원고들을 모아서 대량의 醫書들이 발간되게 된 것이다. 이 잡지를 통해 유명해진 인물로 何廉臣(1861∼1929), 裘吉生(1872∼1947), 曹炳章(1877∼1956) 등이 있다.
② 『神州醫藥學報』: 1913년 5월 上海에서 창간되어 1916년 10월에 停刊되었다. 余伯陶, 包識生이 主編이었다. 1923년 10월에 復刊되고, 1925년 4월에 다시 停刊되었는데, 이 때 包識生이 主編이었다. 이 잡지는 초기 중의학계의 논의를 담고 있는데, 특히 중의학계가 북양정부에 대해서 행했던 투쟁을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학술적으로는 中西匯通을 주장하고 있다. 이 잡지를 통해 유명해진 인물로 余伯陶가 있다.
③ 『醫界春秋』: 1926년 5월 張贊臣이 上海에서 創刊하였다. 이 잡지는 中西醫 論爭이 격화된 이후 중의학계를 대변하는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1926년부터 1937년까지 11년간 이 잡지는 계속 이어지면서 中醫學界의 입장을 대편하였다. 이 잡지로 유명해진 인물로 張贊臣 이 있다.
④ 『國醫正言』: 1934년 6월 陳曾源이 天津에서 창간하여 1937년 7월 停刊되었는데, 天津國醫硏究會에서 발간하였다. 이 잡지는 中西醫論爭이 격화되었을 시기 北方에서 나오는 중요한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여 “以保存國粹, 維護同胞健康, 喚醒迷信西醫之夢魂爲宗旨”라는 기치를 걸었다. 또한 主編인 陳曾源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大凡益世濟民之道古人創法於前必須有人護法於後, 其道方可長存……願爲岐黃護法之人.”

⑤ 『國醫砥柱』: 1937년 1월 楊醫亞가 北平에서 창간하여 1948년까지 이어지다가 停刊되었다. 楊醫亞는 1938년 華北國醫學院을 졸업하고 초기에는 中醫學의 完整性을 주장하다가 다중에 과학적 방법으로 중의학을 연구하자고 주장하는 경향성으로 바뀌기 시작한 인물이다.
⑥ 『中醫新生命』: 1934년 8월 上海에서 創刊되어 1937년 6월 정간되었다. 陸淵雷가 主編이었다.
⑦ 『復興中醫』: 1940년 1월 上海에서 創刊되어 1941년 6월 停刊되었다. 時逸人이 主編이었다.
⑧ 『光華醫藥雜誌』: 1933년 朱雲達(筆名 朱殿)이 上海에서 창간하였다. 主編은 朱殿, 編輯者는 任天石이었다. 이 잡지는 評論, 醫著, 醫藥消息 등을 중요시하였고, 西醫界의 일부 중의학에 대한 잘못된 비판에 반대하는 논지의 글도 많이 실려 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