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考證醫學派의 흐름은 이렇다”
에도시대 日本 考證醫學派의 활동

[한의신문] 에도시대(江戶時代)는 日本 漢方醫學界는 考證醫學派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에 막부를 열어 통치를 시작해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주기까지인 1603년부터 1867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顧炎武, 黃宗羲, 戴震, 段玉裁, 王念孫, 王引之 등의 학자들이 옛 서적들을 교감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활발히 한 考證學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한방의학계에서도 이노우 킹가(井上金峨·1732∼1784) 같은 학자들이 이러한 연구방법론을 구사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이하 潘桂娟의 『日本漢方醫學』, 中國中醫藥出版社, 1994를 참조함).
강호시대에 한방의학의 고증학적 연구를 시행한 인물로 타키 겡캉(多紀元簡), 타키 갱잉(多紀元胤), 타키 갱켄(多紀元堅), 메구로 도타쿠(目黑道琢), 가리아 에키사이(狩谷棭齋), 이자와 란캔(伊澤蘭軒), 시부에 쵸사이(澁江抽齋), 키타무라쵸간(喜多村直寬), 모리 릿시(森立之), 야마다 교고(山田業廣) 등이 있다.
타키 겡캉(多紀元簡·1755∼1810)은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연구한 후에 부친의 학문을 계승해 의학 연구에 매진, 일본 근세 고증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대표작으로서 『素問識』, 『靈樞識』, 『傷寒論輯義』, 『脈學輯要』이 있다. 타키 갱잉(多紀元胤·1785∼1823)은 타키 겡캉(多紀元簡)의 셋째 아들로서 의서의 고증 방면의 거작인 『中國醫籍考』와 『難經疏證』등이 있다.
메구로 도타쿠(目黑道琢·1739∼1798)는 치료에 뛰어나 “편작이 다시 태어났다(扁鵲再生)”라고 불렀다. 1765년 躋壽館이라는 의학교육기관이 창립될 때 강사로 초빙되어 34년간 그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저작으로 『餐英館雜話』, 『餐英館治療雜話』, 『傷寒論集解』, 『驪家醫言』, 『驪家醫言續編』등이 있다.
가리아 에키사이(狩谷棭齋)는 『證類本草』에 의거하고 『本草和名』, 『千金翼方』, 『新修本草』등을 참고해서 1824년에 『神農本草經』의 복간을 완성했다. 이자와 란캔(伊澤蘭軒·1777∼1829)은 메구로 도타쿠(目黑道琢)의 지도를 받아 학술을 완성해 시부에 쵸사이(澁江抽齋), 모리 릿시(森立之), 야마다 교고(山田業廣) 등의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의 저작으로서 『蘭軒遺稿』, 『蘭軒醫談』, 『蘭軒醫話』, 『蕪尾雜記』등이 있다.

시부에 쵸사이(澁江抽齋·1805∼1858)는 10세부터 이자와 란캔(伊澤蘭軒)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21세부터는 가리아 에키사이(狩谷棭齋)의 문하로 들어가 연구하여 1844년부터 江戶醫學館의 교수로 활동했다. 그의 저술로 『醫籍訪古志』가 있고, 여러 학자들과 함께 『醫心方』을 교감했다.
키타무라쵸간(喜多村直寬: 1804∼1876)은 1821년에 江戶醫學館에 학생으로 들어가서 다음해에 고시에서 수석을 하고 이후에 醫學敎讀에 임명된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조선에서 임진왜란 기간 일본으로 넘어온 『醫方類聚』를 새로 聚珍板으로 간행한 인물로 유명하다.
모리 릿시(森立之·1807∼1885)는 1823년부터 이자와 란캔(伊澤蘭軒)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았다. 그는 먼저 『游相醫話』, 『桂川詩集』을 완성한 후에 『神農本草經』, 『靈樞』, 『素問』, 『傷寒論』, 『金匱要略』, 『扁鵲倉公傳』등을 고증했다.
야마다 교고(山田業廣·1808∼1881)는 19세부터 儒學을 공부하면서 이자와 란캔(伊澤蘭軒)에게서 의학을 전수받았다. 이자와 란캔이 죽은 후에는 다키 모토가타(多紀元堅)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1857년부터는 江戶醫學館의 교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제자는 300명에 달하며 저작이 38개나 된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