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염을 한의학으로 100% 완치시키다”
동양의약대학보사 주최로 1963년 개최된 ‘盲腸炎統計診療座談會’서 밝혀

[한의신문] 1963년 4월20일 東洋醫藥大學(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에서는 東洋醫藥大學報社 주최로 ‘盲腸炎統計診療座談會’가 개최된다. 동양의약대학에서는 1962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부속 한의원에서 맹장염 통계조사를 해오던 중 그 효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나와 좌담회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맹장염 환자로서 종합병원진단서를 첨부한 자에 대해 수술하지 않고 한약만으로 치료하여 완치시킬 것을 목표로 100명에 한하여 統計診療를 해오던 중 100%의 실적이 나와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좌담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날 학교측에서는 한의학과장 권영준 교수·부속 한의원 부원장 채인식 교수·지도교수 윤길영 교수·조교 김완희 선생 등이, 연구생측은 한의학과 4학년 柳基遠·申東基·李昌馥, 동양의학대학 학보사측에서는 편집국장 허종섭·총무부장 송경무·취재부장 김윤수가 참석했으며, 速記者는 지영석이었고, 좌담회의 장소는 동양의약대학 부속 한의원이었다.
전 강원도한의사회장을 역임하신 임일규 선배님께서 기증하신 자료 속에 1963년 5월1일자 『東洋醫藥大學報』(제59호)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때 사용한 설문이 들어 있다. 설문은 다음과 같다. 본 연구에 참석한 학생들을 위한 설문지였을 것이다.

“1.언제부터 치료를 시작했으며, 몇 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조사하였는가? 2.현재까지 치료한 환자수와 완치한 인원수는? 3.급성맹장염과 만성맹장염과의 약효의 차이는? 4.맹장염의 증세와 진단방법은 어떠한가? 5.강의와 교제로서만 수강하던 것을 현재로 경험한 느낌이 실습 전과 후의 자신은? 6.보통 일반인식이 맹장염하면 꼭 수술로만 완치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하여 치료환자의 한방치료에 대한 신뢰감은? 7.환자의 사회적 계급, 연령, 성별은 어떤 比例인가? 8.이번 임상실습으로 인상 깊게 경험한 것과 소감은? 9.직접 실습에 참여치 못한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나 학교당국에 건의사항은?”
본 좌담회는 허종섭 편집국장이 사회를 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윤길영 교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100%에 육박하는 치료효과를 낸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하면서 앞으로 다른 유사한 내과적 질환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임하여 성과를 더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한의학과 4학년이었던 柳基遠(훗날 경희대 한의대 교수)은 좌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대개는 만성환자가 많이 내원하였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급성 환자에 약효가 더 빠르거든요.”, “보통 우리가 강의받고 있는 증상면에서 그리 차이가 없어요. M, C, B, U, N을 중심으로 통각이 있고, 胃部를 눌러도 통증이 있고 중증 환자는 M, C, B, U, N의 반대쪽 좌측에 통각이 오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 임상을 통해 맹장염이 위장장애에서 오는 주원인이 없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한의학과 4학년 申東基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맹장염하면 수술치료를 않고는 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서울대생이 왔었는데, 이들과 여러 가지 토론을 했어요. 무조건 학리적으로 어떤 면으로 보아 맹장을 수술치 않고 고칠 수 있느냐고 반박을 해오는 등 별의별 이론을 타 캐고 따지고 드는데 대개 젊은 학생층이 많아요.”
이와 함께 한의학과 4학년 李昌馥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장의 권유를 받고 온 환자가 백혈구 검사에서 24000이었어요. 이쯤 되면 무척 힘든 단계거든요. 부모에게 서약서까지 쓰고 그날 저녁에 5첩을 투약했으나 8시경 한첩은 달여 먹다가 한모금도 못먹고 다 토해버렸다지 뭐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급하기는 하고…코를 막고 넘겼지요. 그런데 자꾸 토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이 이야기를 申東基가 이어서 말한다. “차차 동정을 보니 좀 경과가 있어 보이더니 1시에서 3시까지 잠을 자더군요.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약물을 투입시 배에서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더군요. 그래서 새벽에는 한첩을 달여 뜨거운 것을 그대로 먹여도 잘 먹더군요. 그 후 일주일가량 되어서 완치시켰어요.”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