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24.7℃
  • 흐림23.7℃
  • 구름많음철원23.4℃
  • 흐림동두천24.2℃
  • 흐림파주24.1℃
  • 구름많음대관령21.1℃
  • 구름많음춘천23.7℃
  • 구름많음백령도24.6℃
  • 구름많음북강릉24.3℃
  • 구름많음강릉25.3℃
  • 구름많음동해24.4℃
  • 흐림서울26.1℃
  • 구름많음인천26.8℃
  • 구름많음원주24.8℃
  • 흐림울릉도26.1℃
  • 구름많음수원25.2℃
  • 구름많음영월23.0℃
  • 맑음충주23.7℃
  • 맑음서산23.6℃
  • 맑음울진25.1℃
  • 맑음청주26.8℃
  • 맑음대전26.0℃
  • 맑음추풍령22.7℃
  • 맑음안동24.9℃
  • 맑음상주24.2℃
  • 맑음포항27.9℃
  • 맑음군산25.3℃
  • 구름많음대구26.4℃
  • 맑음전주26.7℃
  • 맑음울산25.6℃
  • 맑음창원26.8℃
  • 맑음광주26.6℃
  • 맑음부산28.1℃
  • 맑음통영25.7℃
  • 맑음목포26.1℃
  • 맑음여수27.4℃
  • 맑음흑산도26.4℃
  • 맑음완도25.8℃
  • 맑음고창24.4℃
  • 맑음순천22.7℃
  • 맑음홍성(예)24.1℃
  • 맑음23.6℃
  • 맑음제주27.8℃
  • 맑음고산26.4℃
  • 맑음성산25.8℃
  • 맑음서귀포29.0℃
  • 맑음진주24.2℃
  • 구름많음강화24.3℃
  • 구름많음양평25.0℃
  • 구름많음이천24.6℃
  • 흐림인제22.7℃
  • 구름많음홍천24.3℃
  • 구름많음태백20.2℃
  • 구름많음정선군
  • 맑음제천22.8℃
  • 맑음보은23.0℃
  • 맑음천안23.6℃
  • 맑음보령25.2℃
  • 맑음부여24.7℃
  • 맑음금산24.3℃
  • 맑음24.7℃
  • 맑음부안25.6℃
  • 맑음임실23.4℃
  • 맑음정읍25.1℃
  • 맑음남원24.5℃
  • 맑음장수22.0℃
  • 맑음고창군23.8℃
  • 맑음영광군24.8℃
  • 맑음김해시26.8℃
  • 맑음순창군24.9℃
  • 맑음북창원27.1℃
  • 맑음양산시26.2℃
  • 맑음보성군24.6℃
  • 맑음강진군24.8℃
  • 맑음장흥24.1℃
  • 맑음해남24.0℃
  • 맑음고흥23.3℃
  • 맑음의령군24.0℃
  • 맑음함양군23.7℃
  • 맑음광양시26.2℃
  • 맑음진도군23.9℃
  • 맑음봉화21.4℃
  • 맑음영주22.0℃
  • 맑음문경23.1℃
  • 구름많음청송군22.6℃
  • 구름많음영덕23.5℃
  • 맑음의성23.8℃
  • 맑음구미25.0℃
  • 맑음영천24.0℃
  • 맑음경주시24.4℃
  • 맑음거창23.9℃
  • 맑음합천24.7℃
  • 맑음밀양26.9℃
  • 맑음산청24.2℃
  • 맑음거제24.6℃
  • 맑음남해25.6℃
  • 맑음26.1℃
기상청 제공

2026년 08월 26일 (수)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58)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58)

B0042015011949783-2.jpg

B0042015011949783-1.jpg

李奎報의 御醫撮要方論



李奎報(1168년∼1241년)는 고려 고종년간에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국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의 저술로 『東國李相國集』이 있다. 이 책에는 『御醫撮要方』의 서문이 들어 있다. 『御醫撮要方』은 1226년에 崔宗峻이 왕실에서 내려오던 처방들 중에서 긴요한 것들을 모아서 간행한 醫書이다. 그 서문은 아래와 같다.



“무릇 인생이 중히 여기는 것은 몸과 목숨일 뿐이다. 비록 死生, 壽夭가 다 하늘에 매인 것이라 하나, 만일 몸을 조섭함이 적절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질병이 침범하게 되어 좋은 方文과 묘한 약으로써 이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어찌 목숨을 橫失하는 자가 없겠는가? 이러므로 옛 성현이 『本草』, 『千金』, 『斗門』 『聖惠』 등 모든 방문을 저술하여서 만백성의 생명을 구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권질이 너무 호번하여 열람하기에 곤란하다. 만일 시일이 오래 갈 병이면 의원을 찾는 것이 가하고, 모든 서적을 뒤져서 그 방문을 찾는 것도 가하다. 그러나 만약 갑자기 위급한 중병을 얻었다면 어느 겨를에 의원을 찾고 서적을 뒤질 수 있겠는가?

아예 정밀하고 요긴한 것만을 채집하여 위급을 대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國朝에 茶房에서 수집한 약방문 한 질이 있는데, 수집한 지 오래라, 탈루되어 거의 유실될 지경에 이르렀었다. 지금 樞密相公 崔宗峻이 이것을 보고 애석히 여긴 끝에 그것을 인쇄하여 널리 보급할 것을 생각하고 이를 상께 아뢰니 상께서 흔연히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2권으로 나누고 또 모든 방문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만을 첨부하여 사람을 시켜 繕寫하게 한 다음 이름을 『御醫撮要』라 하고, 어명으로 西京留守官에 보내어 인쇄하여 세상에 유포하게 하였으니, 이 또한 聖朝에서 백성 보기를 赤子 보듯하는 어진 정책이며, 또 士君子가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뜻이기도 하다.

아, 좋은 점이 있으면 덮어두지 못하는 것은 나의 고집한 바인데, 공이 또 명하여 서를 쓰게 하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삼가 두 번 절하고 그 대략을 쓴다. 병술년(1226, 고종 13) 4월 일에 서한다.”(한국고전종합DB 참조함)



李奎報는 위의 글에서 의학의 중요성과 간편한 의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신난, 몽고와의 전쟁 등을 겪으면서 당시 고려에서 시급하게 생각했던 바였던 것이다. 崔宗峻은 고려시대 茶房이라는 의료기관에 근무했던 御醫로서 아마도 기관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차를 중심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가였을 것이다.



茶房이라는 기관은 최초로 설치된 시기가 분명하지 않지만 文宗代에 이미 설치되어 운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관에서는 왕실의 食用茶와 御藥을 끓여서 올리는 일뿐 아니라 외국사신과 백관들에게 연회나 의식 중에 차를 주는 일을 관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하루에 세번씩 차를 마셨고, 치료에 있어서도 차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茶房’이라는 이름의 의료기관을 궁중에 설치하여 운영한 것도 차를 치료에 많이 응용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게다가 이 기관의 관리인이 醫官이었다는 것은 御用茶를 藥으로 취급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다. 李奎報는 유학자이지만 의학에 조예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의 저작 『東國李相國全集』卷第十의 古律詩에는 ‘讀本草’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가 들어 있다.



“정치가 졸렬하니 마음 수고롭고 병이 기부에 파고든다. 세간만가는 팔뚝이 꺾일 만한 일을 당해야만 아는 법, 반백에 수령되니 마침내 아무 쓸데도 없도다. 약방문과 의경을 읽어서 노의가 되고프다.(政拙心勞病切肌。世間萬事折肱知。二毛作郡終無用。欲讀方經作老醫.)”



<-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