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맞은 당뇨병 환자의 발가락 괴사가 한의사의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의 당뇨 치료를 담당했던 주치의와 사혈을 문제 삼아 소견서를 제출했던 양방사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파기환송이 사실상 피고인에 대한 무죄 판결인 만큼, 이번 소송은 침 등 한의치료가 당뇨 합병증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걸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괴사돼 절단된 피해자의 족부에서 배양된 균들은 통상 발견되는 것이어서 침 시술과정에서 감염된 균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피소된 한의사 김 모(41)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양방 병원에서 이전부터 당뇨병 치료를 별도로 받고 있었고, 해당 한의원에서는 통증 부분에 대한 치료만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1999년경부터 당뇨병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당뇨병 치료가 아니라 다리 통증의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내원했으며, 자신이 당뇨병 치료를 따로 받고 있다고 피고인에게 말했기 때문에 피고인으로서는 당뇨병에 대해선 피해자가 알아서 적절한 치료를 따로 받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피해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나 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특히 피해자의 족부를 절단했던 의사는 제대로 된 선후관계 파악이나 진단도 하지 않고, 2개월 정도 지속된 좌하지의 사혈로 인해 2차 감염이 당뇨족에 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작성했다. 제대로 된 한의약적 지식 없이 얄팍한 정보만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무분별하게 소견서를 작성한 것이다.
실제로 당뇨 병력이 있는 환자라도 시술 전에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자침 시에 너무 강하거나 깊게 찔러서 상처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거나 기타 조직을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게 표준이다.
따라서 발가락 괴사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한의사의 침 치료보다 오히려 한의원에 내원하기 전부터 피해자의 발에 있던 상처들이 확대되기까지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과정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 어떻게 봤나
침으로 감염됐다 보기 어려워…괴사된 부위와도 거리있어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의료사고에서 과실이 있다고 하려면 의료진이 발생할 결과를 예견할 수 있고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못한 게 인정돼야 하는데 피고인인 한의사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당뇨 병력이 있는 피해자에게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한 행위 자체만으로 어떠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이 침을 놓은 부위와 괴사된 부위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판단했다. 피해자가 서울대병원에 내원했을 당시 촬영한 피해자의 발 사진을 보면 왼쪽 발가락 부분에만 괴사가 돼 있는데 그 부위는 피해자가 한의원에서 치료 받기 전부터 상처와 일본에 다녀오면서 생긴 상처와 일치해, 피고인이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한 왼쪽 종아리 쪽이나 발등 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발가락 괴사의 원인을 사혈에서 찾아 소견서를 써 준 양방사의 의견이 틀렸음을 법원이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며, 결국 허위로 소견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족부 절단을 담당한 양방사가 수술에 앞서 한의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케 한다.
제대로 된 당뇨 치료는 한의원에서
장기간 당뇨병을 앓으면 다리의 혈관이 좁아져 당뇨족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혈당수치를 지속적으로 측정해 치료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왼쪽 발에서 기존 상처부위의 앞, 옆쪽 등 전체적으로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는 환자가 당뇨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한의원에서 치료를 했더라면 당뇨병이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원래 당뇨 치료를 하던 주치의나 중간에 소견서를 써준 의사가 제대로 된 진단을 하지 못해 병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애초에 환자가 한의원을 내원한 목적이 ‘당뇨병’ 치료가 아니라 ‘통증’ 완화 때문이었고, 두 가지 진료를 사실상 분리해 의료진에게 맡겼기 때문에 통합적인 치료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당뇨 합병증의 일종인 팔다리 저림의 경우, 양방에서는 단순히 진통제를 처방하지만 한의원에서는 말초 신경의 재생을 촉진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한의 치료를 통해 체질을 개선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면서 혈당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한의협, 전사적 차원에서 물심양면 지원
이번 소송 사건은 한의사라는 직역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한의사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한의계 전체가 나서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강했다. 협회 차원에서 앞장서 회원들이 탄원서를 제출한 이유다.
이에 대해 박정연 대한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환자의 가족들이 먼저 지속적으로 탄원서를 넣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법제위원회에서 검토를 거친 끝에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재판 결과가 한의사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뇨병으로 지병이 있는 환자가 여행을 갔다가 다리를 다쳐서 돌아왔고 회복이 안 돼 상처 난 분위가 잘못된 건데 침을 맞고 당뇨가 악화됐다는 식으로 비약이 될 수 있어 우려스러웠다는 것.
박 이사는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는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 괴사될 확률도 자연스레 높아지는데 모든 원인을 침으로 몰아간다면 한의사들이 당뇨 환자에게 침을 못 놓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의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한의약과 관련된 왜곡된 사실로 인해 억울하게 한의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고인 김 모 원장 인터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검찰조사 단계와 1,2심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침구학회에서도 발가락 괴사와 침 치료가 상관없다고 했는데 우리 쪽에서 제출한 자료나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법원에서는 주로 양방 쪽에서 제출한 자료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 일방적으로 상대가 유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한의계에서 탄원서를 보내준 덕에 대법원 심사 때는 사혈의 표준 등 한의계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었다.
-다음 재판을 앞둔 심정은?
아직은 끝난 게 아니니까 끝날 때까지 여러 선후배, 동료 한의사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을 했으니 이번에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협회,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소송은 협회장님부터 대의원들, 여러 회원들이 도와주셔서 이긴 거지 혼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본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한의사 전체로 봐도 다행스러운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판결 불복종 전의총, 법 위에 있나?
한의사의 의학적 수준 운운, 법리 무시… “한심”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전의총은 한의사의 의학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법적인 의무가 약하며, 앞으로 한의원 의료사고는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전의총은 한의사가 환자의 기본적인 질병상태와 세균감염의 기본개념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한의사들이 초음파와 레이저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불허하는 판결을 일관성 있게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 분명히 발가락 괴사와 한의 진료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시했음에도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나온 셈이다. 비약 정도를 넘어서 법리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성명서를 통해 이번 소송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불허를 끌어들임으로써 전의총 스스로가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 꼴이 됐다.
특히 성명서 중 ‘당뇨환자의 발가락을 절단케 만든 한의사에게 대법원이 무죄취지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마저 한의사는 의료인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라는 문구는 과연 전의총이 판결문에 쓰인 한글을 제대로 읽을 수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