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seman은 표준용어의 영역화에 있어 전통의학이 융성한 나라의 역사, 문화적 배경을 존중하고, 전통의학의 용어를 보존하며, 서방세계의 독자들에게 전통의학의 진면목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Sourece-oriented 와 literal translation을 원칙적으로 고수하여야 하고, 가차나 definition based translation, target- oriented translation 및 병음을 사용한 translation은 최소한으로 하여 가급적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 각 국 별로 작은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철저히 준비되어 제시된 원칙에 대부분 동의하였고, 실무적인 부분은 둘째날 일정을 진행하며 논의하기로 하고 첫째 날의 일정은 정리되었다.
첫째 날은 기타사토 연구소 주최 만찬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만찬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양의학종합연구소의 견학이 이루어 졌다. 기타사토 연구소 동양의학종합연구소의 신관은 2001년(平成13년) 3월 26일 준공된 새로운 건물로 진료와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양의학종합연구소 건물을 들어서는 순간 여느 병원과 같은 구조인데 주위환경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1층이 외래라는 말을 듣고 의아하여 물어보니 이곳에서 한방처방(Kampo medicine)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약사의 안내로 약제실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약장이 한국에 비하여 매우 작았다. 또한 약장을 열어보니 약들이 잘게 썰어져 있었는데 이는 달이는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약들을 저온 보관되어 있었는데 약들 하나하나가 모두 정부 검사를 받아 고유 일련번호가 찍혀 있었다. 일본에서는 탕약이나 엑기스의 값이 거의 비슷하여 탕약의 마진이 없어 대부분 엑기스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였다. 특히 눈에 띠는 부분은 의사가 처방을 하면 이는 컴퓨터로 조제실로 전송되어 처방내용이 약 봉투에 자동으로 찍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탕약의 경우 첩약의 형태로 환자에게 주어 달여 먹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비닐자동포장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약제실 견학 후 2층의 동양의학 자료 전시실을 돌아보았다. 전시실은 항상 오픈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실 밖에는 생약표본, 침구와 관계된 자료 등이 전시되어 항상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전시실 안에는 동양의학 3천년, 일본의 천오백년 전부터 에도시대(江戶時代)까지의 한방의 역사, 메이지시대(明治時代)의 쇠퇴기로부터 쇼와(昭和)의 부흥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고의서와 사진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한방약에 관계된 역사적인 도구나 한방 선현의 서예 및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일반인이나 전문인이 함께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배려가 엿보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둘째 날의 일정은 오전에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각 국이 제출한 용어를 전 날 결정된 원칙에 의거 심의하여 표준용어를 선정하는 작업을, 다른 한 팀은 선정된 용어를 영어로 번역시 필요한 영역화의 원칙을 확립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필자는 한국 대표 중 혼자 번역 그룹에서 영역화 원칙을 정하기 위한 치열한 논의에 참가하였다. 필자를 포함해 Nigel Wiseman, Paul Unschuld는 Sourece-oriented 와 literal translation을 지지하였는데 필자는 Sourece-oriented 와 literal translation을 극대화해야 하며, 각각의 용어에 대해 간략한 definition을 붙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전에서는 전통의학용어의 대응사에는 반드시 Sourece-oriented 와 literal translation이 사용되어야 하며 서양의학의 병명을 사용하고자 하면 그것을 description에 포함시켜야 함을 주장하였고, 고전 문헌을 번역할 때에는 본문에는 Sourece-oriented 와 literal translation을 사용하고, 꼭 서양의학 병명으로 free translation을 하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footnote에 제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Sakiyama, Xiezhufan, Cai jingfeng은 free translation을 주장하였는데 Sakiyama는 번역회의의 의장으로서 두 개의 번역을 동시에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결과 3가지 방법 즉, literal translation, free translation, literal and free translation을 번역자에게 맡겨 가장 최적의 방법을 사용하게 한다는 점, 한 용어가 여러 개 concept이 있는 경우 여러 개 번역을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전날 이러한 용어는 배제하기로 한 부분이 있으므로 향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는 점, 일단 결정된 원칙에 따라 1차 번역이 끝난 후 다시 재검토하자는 점과 특정한 용어의 경우 비록 정확한 번역은 아닐 지라도 현재 많이 쓰고 있는 용어는 수용하되 다만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잠정적인 영역화의 원칙으로 정하였다.
오전에 표준용어선정 그룹에서는 1000여 개 이상의 용어를 선정하였다고 하였다. 점심 식사 후 다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며 번역에 대한 논란을 거듭하였는데 쉽게 결론이 나기는 어렵다는 점에 동의하며 기본 원칙을 재확인 한 후 번역 그룹의 논의를 마치고, 표준용어선정 그룹에 동참하였다.
김용석 교수님의 원활한 진행과 지재근 교수님의 탁월한 사회로 이미 3분의 2 이상이 진행되고 있었고, 본초나 처방의 명명법에 대해 논의가 이어졌다.
자신들이 관철하고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집요하게 끝까지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여 상충되는 부분에서는 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치열했던 회의는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내일을 기약하며 마무리되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치고, 배는 고파왔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 공식 만찬은 아니지만 일본 측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메구로역 맞은 편에 한 일본식당이었는데 신발을 보관함에 넣고 들어서자 다다미가 준비되어 있었고, 이미 일본의 젊은이 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시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본음식을 일본술과 맥주에 곁들여 만끽하였고, 일본인 들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하였다. 무르익은 분위기는 누군가의 입에서 ‘true friend’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가라오케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날,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는 일정이 여유가 없어 채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회의장으로 향했다.
전날 정한 번역원칙을 소개하고 검증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표준용어로 선정된 부분을 다시 검토하고, 더 논의해야 될 부분을 시간의 제약상 가능한 범위에서 논의한 후 다음 모임을 10월 20일부터 10월 23일 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동양의학학술대회(ICOM)에 열기로 잠정적으로 정하고 회의를 마무리하였다. 이날 결정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4,900여개 SR (selected reference. 전에 Chinese Standard Terminology, CST라고 부르던 것을 SR로 바꾸어서 부르기로 했음) 항목 중에서 한중일 간에 2개국 이상 찬성하면 WHO IST로 삼기로 원칙을 삼고 선정한 결과 약 3,116 개가 선정되었다.
2. 여기에 각 나라별로 약 100여 개 항목을 추가하기로 하였고, 추가분은 2 주 이내에 심범상 교수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3.한약과 처방 분야는 많은 논란 끝에 FHH의 작업을 기다리기로 하고,그때까지는 SR처럼 appendix로 존치하기로 했다. 여기서 일본측이 처방 이름의 발음을 넣으려고 정말 집요하게 노력하였으나 최승훈 박사가 WHO측의 정신을 설명하며 국가적인 표준안에서 발음을 넣기를 권고했다.
마음속으로 이번 회의를 평가해 보니 성공적이라고 자평할 수 있었고, 한국 측의 준비가 충분했고, 한국 대표단의 뛰어난 역량과 팀웍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눈치를 살펴보니 대표단 모두 긍정하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