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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4일 (월)

일제 탄압 속에서도 ‘의생’으로 명맥 지켜온 한의사, 오히려 독립된 조국에서 소외된 의료정책으로 외면

일제 탄압 속에서도 ‘의생’으로 명맥 지켜온 한의사, 오히려 독립된 조국에서 소외된 의료정책으로 외면

국민의료법 제정시 양의 출신 국회의원 및 정부관료, 한의학 말살 ‘기도’

한의계, 5인 동지회 등 중심으로 강력 대응해 이원화제도 구축 이뤄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체계의 모태가 되고 있는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당시 양방의사 출신 국회의원 등에 의해 의료인에 범주에 한의사를 배제하려고 시도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50년 2월 보사부는 보건의료행정법안을 국회 문교사회위원회에 내놓았다. 이 제출안은 제1장 총칙(의료인)에 의사·치과의사만 포함하고 한의사는 배제시켰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의약계는 크게 반발, 전국에서 12만통의 반대 진정서가 쇄도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에서는 한의약계의 유일한 대변자였던 조헌영이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보사부가 제출했던 한의말살 양의 단일법안이 폐기돼 한의말살 기도는 일단락됐지만, 그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



1951년 한의말살 양의 단일법안 추진



이후 ‘51년 1월15일 임시 국회의사당인 경남도청 회의실에서 제2대 국회가 개회돼 국민의료법안이 제출됐다. 당시 국회는 현재의 분과위원회 중심제와는 달리 본회의 중심제여서 같은 사안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법안이 몇 개라도 본회의에 회부될 수 있었다. 국민의료법안 역시 사회보건위원회에서 제안한 법률안과 한국원 의원 외 80명의 의원이 제출한 법률안이 동시에 회부됐다.



사회보건위원회의 법안은 제헌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한의사제도를 전면 부인하는 것이고, 또 다른 법안은 한의사 자격을 의사와 차별해 격하시킨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양의측은 일단 사회보건위원회측 안을 추진해 한의사제도를 배제하고 양의단일법을 제정하려 했다. 만일 이 시도가 여의치 못할 때는 제2안을 추진한다는 양면작전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제2대 국회에는 양의 출신 국회의원이 4명 있었으며, 행정부에도 보사부 장관 및 각 기관장 가운데 여러 명의 양의 출신 관료들이 있었다. 이와 달리 한의측에는 국회의원이나 행정관서의 장이 전무한 실정이었다. 이런 악조건에서 한의계는 법률안에 한의사제도를 포함시키고, 그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게 하는 이중의 짐을 져야만 했다.



이에 한의계에서는 정치적 로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당시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한의사 중 이우룡·윤무상·우길룡·권의수·정원희 등 5인 동지회가 모인 ‘한국의약회’가 주축이 돼 한의사제도의 법제화에 앞장섰다. 이들은 국회 사회보건위원회에 한의사제도의 입법을 위한 증언을 신청했지만 이 같은 시도는 양의 출신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부산에 피난 중이던 김영훈·방주혁·박호풍·박성수 등 한의계 중진들이 서울에 거주할 때부터 닦아놓은 정치적 기반과 재정적 뒷받침으로 적극적으로 국회의원들과 교섭을 벌인 끝에 마침내 국회 증언의 기회를 얻었다.



이에 따라 사회보건위원회는 먼저 양의계의 증언을 청취하고, 다음날 한의계의 증언을 듣기로 결정했다. 양의측에서는 한의학이 비과학적이어서 입법할 수 없다는데 증언의 초점이 맞춰졌으며, 이튿날 한의계에서는 윤무상·권의수·이우룡·정원희 네 사람이 증언에 나섰다.



이날 윤무상은 한의학이 양의학보다 임상치료에 있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권의수는 단군성조 이래 ‘동의보감’을 거쳐 사상의학으로까지 발전한 한의학의 전통을, 이우룡은 중국의 의료법령 제정시 일어났던 한·양의간의 격론을 상기시키며 한·양의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정원희는 한·양의가 공존하는 이원제 국민의료법이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할 것이며 한의학을 발전시켜 문화민족의 긍지와 주체성을 세계에 과시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증언이 끝나자 한·양의측을 모두 퇴장시킨 사회보건위원회는 회의를 속개, 위원회가 마련했던 양의 단일법안을 수정해 한의사제도를 포함시킨 법안을 채택했다. 다만 법조문상 의사 및 치과의사는 제1항, 한의사는 제2항에 넣어 차별을 두었다.



복지부 관계자부터 한의학 폐지 앞장



한의사제도를 포함한 국민의료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양의측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의사 출신 인사들을 총동원해 한의사제도의 입법에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는 보사부 장관을 비롯한 차관, 국·과장이 거의 의사 출신이어서 한의사제도의 입법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였다.



보사부 장관 외에는 발언권을 허용하지 않았던 국회 본회의에서 보사부 장관은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 우리나라가 세계보건기구의 가맹국이므로 의료법에 한의사제도를 두는 것은 국제적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한의계에 불리한 발언만을 청취하고 국회 본회의는 일단 회의를 마쳤다.



당시 한의학을 교육하고 한의사를 양성한 부산 동양의학전문학원은 이우룡이 취임·운영하면서 국민의료법에 한의사제도를 포함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국민의료법안 심의가 있던 날 방청석에는 동양의학전문학원 학생 100여 명이 학생회장 김영진의 지휘에 따라 한의사제도 입법에 열렬한 성원을 보냈고, 이들의 행동이 국회의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사회보건위원회 박영출 위원장이 국민의료법안에 한의사제도를 포함시킨 내용을 설명하면서부터 국회 본회의의 의료법안 심의는 시작됐다. 한국원 의원과 엄상섭 의원의 발언이 계속되고 한의사의 ‘師’자와 ‘士’자에 대한 공방이 오갔으며, 마침내 신익희 국회의장이 사회보건위원회가 제출한 수정안, 즉 명칭을 ‘漢醫師’로 하는 안을 표결에 붙인 결과 가결됐다.



다음 의제는 ‘진료소’를 ‘한의원’으로 고치자는 김익기 의원의 수정안이었다. 이에 한국원 의원은 진료소를 한의원으로 고치면 의원 수준이 저하되니 진료소로 그대로 두자고 했으며, 이용설 의원도 한의원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익기 의원은 “이용설 의원의 말 가운데 한의원을 법문으로 넣을 수 없다는 것은 대단히 모순되는 말”이라며 “한의사가 있으면 한의원이라 하는 것이 정당한 법문이며, 왜놈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냥 둔다는 것은 한의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하여 의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결과 수정안은 재석 113명 가운데 가 75·부 3으로 통과됐다.



“외국 흉내내지 말고 한의학 발전시켜야”



특히 이날 심의과정 중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이원제 국민의료법에 관한 의결과 관련 김익기 의원은 “전통있는 한의학을 보다 발전시켜 국민보건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의사·치과의사와 같은 제도 하에서 한의사의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국민이 안심하고 한의사에게 병 치료를 맡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홍 의원이 한의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시대역행이라고 반발했지만, 임영신 의원은 “우리 한국에서는 외국의 흉내만 내지 말고 한의학이 과학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김익기 의원 안에 찬동했다. 마침내 이원제 국민의료법안은 표결에 붙여졌고, 거수표결 결과 재석 116석 가운데 가 61·부 18로 이원제 국민의료법안이 통과됐다.



이렇듯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원제 국민의료법은 1951년 9월25일 법률 제221호로 공포됐다. 그러나 이 법률에는 현대 의료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일제강점기의 ‘조선의료령’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의료업자라는 호칭 하에 ‘제1종’ 의사·치과의사, ‘제2종’ 한의사, ‘제3종’ 보건원·조산원·간호원 등 모두 3종으로 업종을 구분해서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의료법이 공포되자 의료단체의 설립이 추진됐다. ‘51년 12월25일에는 국민의료법 시행세칙이 보건부령 제11호로 공포되었으며, 이어 ‘52년 1월15일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국가시험령이, 30일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 검정시험 규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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